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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에 공개된 사업장 369곳 분석 수도권·대도시도 10회 이상 유찰돼 매각 일정 잡지 못한 사업장도 155곳

금융당국의 경·공매 플랫폼에서 매각을 진행 중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중 절반이 1회 이상 유찰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매각 일정을 잡지 못한 사업장이 전체 물량의 40%를 넘어서는 등 PF 사업장의 경·공매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금융당국은 금융기관에 유찰된 사업장의 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도록 하고 매각 속도가 지연된 사업장에 대해서는 현장점검을 강화하기로 했다.
대도시에도 10회 이상 유찰된 악성 매물 나와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경·공매 플랫폼에 공개한 사업장은 총 369개, 익스포저 규모는 6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1월 공개된 195개 사업장(3조1,000억원)에 이어 지난달 28일 추가로 공개된 174개 사업장(3조2,000억원)을 합산한 수치다. 공개된 사업장을 분석한 결과, 1차례 이상 유찰된 곳은 178곳으로 전체 경·공매 사업장의 48%에 달했다. 3회차 이상 유찰된 사업장은 총 57곳으로 이 중 저축은행이 대주단의 대표 금융사(대리금융기관)인 사업장은 21곳(36.8%)이었다.
다회 유찰 사례를 보면 서울에서는 논현동 근린생활시설 사업장이 8회 유찰됐다. 10회 이상 유찰된 악성 매물은 5곳으로 집계됐다. 최다 유찰은 경기 용인시의 한 다세대주택 사업장으로 이제까지 13차례 유찰됐다. 해당 사업장은 공사가 일부 진행됐음에도 매각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2차례 경매를 진행한 경남 김해시 물류센터 사업장은 아직 착공도 하지 못했다. 최저입찰가는 1,112억원에서 423억원까지 내려갔다. 이 외에 부산, 대전 등 대도시에서도 10차례 유찰된 사업장이 나왔다.
아직 입찰 일정을 잡지 못한 사업장은 155곳으로 전체 물량의 42%를 차지해다. 이 중 새마을금고가 대리금융기관인 사업장이 44개로 가장 많았고, 저축은행 40개, 상호금융(농협·신협·산림조합) 34개, 증권사 25개 순으로 나타났다. PF 사업장 매각 지연은 금융기관의 재무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의 연체 규모는 9조1,000억원으로, 3년 전인 2021년 말(2조5,000억원)에 비해 264% 급증했다. 업계에서는 저축은행의 연체율이 급증한 이유로 부실 PF 정리가 지연된 탓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 부실 사업장 구조조정 전방위 압박
부실 PF가 금융기관의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킨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자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5월 PF 사업성 평가 기준을 개편하고 부실 등급 사업장을 경·공매 등을 통해 정리하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지난해 9월에는 전 금융권에 '유의' 또는 '부실 우려' 등급 사업장에 대한 재구조화·정리 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당시 금감원은 부실 사업장 정리에 속도를 내기 위해 이행 완료 예정일을 제출일로부터 6개월 이내로 설정하도록 했으며 이에 따라 올해 2월까지 부실 PF 정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탄핵 정국 등으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지난해 연말부터 정리 속도가 둔화했다. 경·공매로 정리된 물량을 월 단위로 보면 지난해 9월과 10월에는 각 1조2,000억원 규모가 처리됐지만 11월 5,000억원, 12월 6,000억원이 추가되는 데 그치며 증가폭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금융당국이 경·공매 대상이라고 판단한 사업장 익스포저는 12조5,000만원으로 당초 지난해 연말까지 이 중 4조5,000억원 규모를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실제 정리된 규모는 3조5,000억원에 그치면서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매각 지연 사업장에 대해 현장검사 실시 예정
이에 금융당국은 올해 1월 PF 부실 사업장 경·공매를 지원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조성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캠코)의 공매 플랫폼 '온비드'와 유사한 형태로 건설사·시행사·투자자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도록 사업장별 권리관계와 연락처 등 상세 정보를 수록해 접근성을 높였다.
금융당국은 PF 경·공매 플랫폼 구축 이후 매각이 활발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1월 9개 업권별 금융협회를 통해 정보를 공개한 이후 2월 21일까지 한 달간 40여 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80건의 상담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지방소재 물류센터와 연립주택 등 2개 사업장은 매매 계약이 체결됐다. 서울 소재 빌딩과 지방소재 오피스텔 등 2개 사업장은 매수 의향서를 제공했고, 6~7개 사업장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가격 협상을 하고 있다.
금감원은 "공매가가 하락하면서 플랫폼을 통해 다수의 매수 의향자가 적극적으로 매수를 추진하고 있다"며 "대주단 대출금액 대비 72% 수준에서 매매계약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매각 추진 PF 사업장 12조5,000억원 중 지난해 말까지 정리된 4조5,000억원에 더해 3억원가량의 추가 매각이 진행되면서 이달 말까지 누적 기준 7조4,000억원이 정리될 것을 예상한다. 아울러 올해 상반기 중 부실 사업장을 모두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경·공매 유찰 시 가격을 실질적인 채권 회수 가능 금액과 담보 가치를 반영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하도록 했다. 이는 저축은행·캐피탈·상호금융 등 각 금융사의 부실채권 매각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다. 이와 함께 플랫폼 공개 이후에도 매각이 지연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이달 중 현장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금감원도 올해 상반기 저축은행의 PF 여신 프로세스 적정성 등을 집중 점검하기 위한 공동 검사를 실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