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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등 강남권 신고가 행진
소득 및 자산 불균형 ‘역대급’
치안 불균형에 사회적 비용 증가

고가 아파트와 저가 아파트의 가격 차가 갈수록 확대되는 양상이다. 서울 동북권의 구축아파트 가격이 2010년대 중후반으로 회귀한 반면, 강남 등 주거 선호 지역의 15년 이하 준신축 아파트는 연일 신고가를 새로 쓰고 있다. 다주택자 규제에 따른 ‘똘똘한 한 채’ 선호와 건축비 급등에 따른 매물 품귀 현상이 맞물리는 가운데 집값 양극화 추세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중·저가 아파트 수요 관망세-고급 아파트 거래 활발
21일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매매동향에 따르면 2월 셋째 주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와 강동구가 포함된 서울 동남권의 10년 이상∼15년 이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전주 대비 0.12% 상승한 113.77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잠실 등 대단지 준신축 아파트 밀집 지역이 많은 송파구의 상승세(0.14%↑)가 가장 가팔랐다. 2008년 입주해 준신축으로 분류되는 잠실엘스 (전용 84㎡)는 지난 5일 28억1,000만원에 거래되면서 2주 전 기록한 직전 신고가(27억3,000만원)를 뛰어넘었다.
반면 노원·도봉·강북구 등 동북권 20년 초과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91.72로 전주 대비 0.02% 하락했다. 2022년 전 고점에서 2023년 폭락기를 거친 이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한 이들 지역 구축 아파트 시세는 7년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노원구 대표적 재건축 아파트로 꼽히는 상계주공 5단지(31㎡)의 경우 지난 1월 4억8,400만원에 실거래되면서 2021년 기록한 전 고점(8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소득 격차 갈수록 확대
시장에서는 이 같은 가격 양극화 원인으로 주택 시장의 불안정 흐름 속에서 상급지 갈아타기 등 똘똘한 한 채를 찾는 수요자들의 증가를 꼽았다.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대출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중·저가 아파트 수요자의 관망세가 짙어지고, 반대로 자금 여력이 있는 자산가들은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고가·저가 아파트의 격차 확대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집값 양극화 현상의 또 다른 배경으로는 소득 및 자산 불균형이 꼽힌다. 소수의 시장 참여자가 부(富)를 독식하면서 여타 소비자들의 지출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와 국가통계포털(KOSIS)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 가구 소득 상위 10%(10분위)의 연평균 소득은 2억1,051만원으로 집계됐다. 재산소득이 전년보다 459만원(24.7%) 급증하면서 소득 증가를 주도했고, 근로소득(572만원·4.1%)과 사업소득(262만원·7.5%) 또한 증가했다.
소득 하위 10%(1분위)의 연평균 소득은 1,019만원으로 전년보다 65만원(6.8%) 늘었지만, 소득 격차를 좁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소득 상하위 10% 간 소득 격차는 2억32만원으로 2017년 이래 처음 2억원을 넘겨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소득 격차는 곧 자산 양극화로 이어졌다. 지난해 소득 상위 10%의 자산은 16억2,895만원으로 소득 하위 10%(1억2,803만원)보다 15억원 이상 많았다.
한국조세정책연구원(조세연)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됐다. 지난해 조세연이 발간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고찰: 양극화 완화를 위한 조세정책에서 정치철학까지’ 보고서에서는 소득 상위 1%가 부의 25.4%를, 상위 10%는 58.5%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소득 하위 50%가 차지하는 부의 비중은 5.6%에 불과했다.

계층이동 차단에 이상 동기 범죄 증가 우려
집값 및 소득 불균형은 또다시 치안 양극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위 ‘부촌’이라 불리는 지역에는 고급 주택들이 몰리면서 골목과 주택 안팎을 감시하는 폐쇄회로TV(CCTV)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면, 외곽으로 갈수록 그 분포도 또한 희미해지는 것이다. 이는 외곽으로 이동할수록 거주자들의 신체와 재산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이 같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가 지난해 12월 국무조정실의 의뢰로 실시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 분석’ 연구에서 1990년부터 2022년까지 계층 갈등으로 발생한 경제적 비용은 192조원에 달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범죄심리학회장을 지낸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계층이동이 쉽지 않을수록 사회에 대한 불만이 다수에 대한 폭력으로 분출되는 이상 동기 범죄 유형도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의 소득 이동성이 꾸준히 하락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우려를 키운다. 통계청이 집계한 소득이동 통계 개발 결과 한국의 소득 이동성은 △2018년 35.8% △2019년 35.5% △2020년 35.8% △2021년 35.0% △2022년 34.9%로 꾸준히 우하향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극소수의 사람만 계층 이동이 가능하고 재력을 이용해 계층을 대물림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사회적 분노를 가진 이들이 생긴다”고 꼬집으며 “이런 감정이 범죄로 이어지고, 범죄자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하게 판단하는 이유가 된다”고 말했다. 소득이 낮더라도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