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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고통 받는 동안 은행 배만 불려 가계대출 규제 명목으로 금리인하 막아 수익↑ 금융위, 대통령 '이자놀이' 경고에 금융권 소집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금리 인하기에도 불구하고 올해 상반기에 4대 금융지주가 ‘이자 장사’로만 21조원 넘게 벌어드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각계에서는 금융당국의 관치(官治)가 은행들의 이자 놀이를 조장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지난해 본격적인 금리 하락기에 들어섰음에도 은행들이 정부의 가계 대출 규제 기조에 따라 대출금리를 천천히 내리면서 이자 수익으로 직결되는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가 커졌다는 지적이다.
4대 은행 순이자마진 역성장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사(KB·신한·하나·우리금융)의 합산 이자이익은 21조92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0조8,106억원)보다 2,818억원(1.4%) 증가했다. 신한금융(5조7,188억원), 우리금융(4조5,138억원), 하나금융(4조4,911억원)에서 작년 동기 대비 각각 1.4%, 2.7%, 2.5%씩 늘었다. KB금융(6조3,687억원)만 0.4% 줄었다.
이자수익성을 보여주는 지표는 순이자마진(NIM)인데, 통상 시장금리가 하락기에 접어들면 은행 수익성이 나빠지지만 금융지주의 순이자마진은 지난해 말보다 대체로 상승했다. 올해 2분기 기준 순이자마진은 신한금융(1.90%), 하나금융(1.73%), 우리금융(1.71%) 모두 지난해 말보다 0.04%포인트가량 확대됐다. KB금융만 이 기간에 1.98%에서 1.96%로 줄었다.
금융지주들은 금리인하기에도 저비용성 예금 증가, 조달비용 축소를 통해 수익성을 방어했다고 설명한다. 박종무 하나금융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24일 상반기 컨퍼런스콜에서 “보통예금 중심으로 핵심저금리 예금이 6조원 이상 늘었다"며 "또 공공기관이 연초에 사업 집행하면서 유입된 자금이 5조원 이상이고, 개인 부문에서 급여통장 등 결제성 통장으로 유입된 자금이 1조원 이상”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만들어 준 ‘이자 장사’ 기회
은행 측은 보통예금(요구불) 증가를 꼽고 있지만, 올해 상반기에 은행 예금이자와 대출이자 사이의 금리차가 크게 벌어진 것이 이자수익 증가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은행연합회 포털에서 4대 은행의 ‘서민금융 제외 가계예대금리차’(가계대출금리-저축성수신금리)를 살펴보면, 신한은행은 지난해 상반기 평균 0.54%포인트에서 올해 1~5월 평균 1.45%포인트로 올랐고, 같은 기간 하나은행은 0.53%포인트에서 1.39%포인트로, 국민은행은 0.69%포인트에서 1.38%포인트로, 우리은행은 0.77%포인트에서 1.32%포인트로 크게 벌어졌다.
이는 금리인하기에 예·적금 등 저축성예금금리는 시장금리 동향에 맞춰 크게 떨어지고 있으나,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 금리는 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 억제 및 가계부채 관리라는 명분 아래 대체로 높은 수준을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관치 금융으로 은행의 예대마진이 커지며 이자 장사를 손쉽게 하게 된 측면이 있다는 의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규제를 받는 은행들로서는 금융 당국의 가계 대출 조이기에 적극적으로 부응할 수밖에 없다”며 “주담대 한도를 6억원까지로 막는 6·27 대출 규제 이후로 이런 분위기가 더 심해졌다”고 전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도 “기준금리가 내려가는 상황에서 부동산 대출 규제를 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목표가 상충됐다”며 “주요 은행이 독과점하고 있는 구조도 이자 놀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라고 했다.
이자 놀이 지적에 금융권 “100조 AI 펀드 조성 협력”
이에 은행들은 이자 장사 꼬리표를 떼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첨단·벤처·혁신기업 투자를 위한 100조원 규모 펀드 조성에 적극 협력하고, 서민 금융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2차 추가경정예산 사업으로 시행될 장기연체채무자 지원 프로그램과 소상공인을 위한 새출발기금 확대에도 적극 동참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소상공인에 대한 금융지원을 확대하고, 서민금융상품도 공급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은행권은 “예대마진과 부동산 중심의 영업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많은 점을 잘 알고 있다”며 그간의 영업관행에서 탈피해 생산적 자금 공급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도 건전성 지표 중 기업 대출의 위험가중치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8일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이 같은 내용의 논의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자리는 지난 24일 이 대통령이 이자 놀이라고 은행권을 비판한 이후 금융권 의견수렴 차원에서 마련됐다.
당국은 벤처 투자 등에 자금이 흐르도록 유도하기 위해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권 부위원장은 “위험가중자산(RWA) 제도 등 건전성 규제를 포함해 전반적인 업권별 규제를 조속히 개선할 것”이라고 전했다. RWA는 은행의 대출 분야별로 위험도를 평가해 그에 따라 자본을 추가로 쌓도록 하는 건전성 관련 규제다. 현재 주담대의 RWA는 기업대출의 약 3분의 1 수준이라 은행들이 주담대만 선호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건전성 규제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기업대출을 꺼린다는 뜻이다. 금융위는 이를 손질하기 위해 향후 금융감독원·금융계·전문가 등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