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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명분 측면에서 주목받는 농협 통매각은 시장이, 분리매각은 노조가 반대 거듭된 매각 무산에 농협 부담론 확대

홈플러스 최대 주주인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가 매각 주관사와 함께 본격적인 홈플러스 매각 절차에 나섰다. 자산가치 기반 매각 전략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유통기업이 인수를 고사하며 통매각은 사실상 무산됐고, 일부 점포 중심의 분리매각 역시 노동조합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동력을 잃는 모양새다. 민간 자본이 모두 물러선 가운데, 업계에선 공공성을 갖춘 농협만이 유일한 인수 가능성으로 주목받는 양상이다.
‘농업계 유통망 확대·소비자 접근성 제고’ 기대
3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매각 주관사 삼일PwC는 최근 유통업 시너지가 있는 대기업 등 전략적 투자자(SI)들을 중심으로 투자안내문(티저레터)을 배포했다. 지난달 20일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에 대해 스토킹호스(stalking-horse) 방식의 인가 전 인수합병(M&A) 추진을 허가한 지 약 한 달 만의 일로, 인수 조건은 청산가치(3조6,816억원)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고 홈플러스를 통째로 인수하는 내용이다.
스토킹호스 방식은 인수 희망자가 인수의향서(LOI) 제출 등 절차를 밟는 대신 매각자와의 사전 협의를 통해 조건부 인수 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후 공개입찰 경쟁을 통해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원매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단계를 거친다. 이때 사전 계약자보다 높은 가격을 써낸 원매자가 있다면, 사전 계약자에게는 동일한 조건으로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 이 권리를 행사하면 사전 계약자가, 포기면 최고가 입찰자가 최종 인수자가 된다.
문제는 지금까지 뚜렷한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홈플러스의 적자 행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만큼 섣부른 투자가 독이 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일관된 시각이다. 이런 가운데 농협이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농협 하나로마트 대부분이 지방에 분포해 있어 수도권 홈플러스를 인수해 직거래 장터로 활용하면, 매우 높은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농업계 유통망 확대와 소비자 접근성 제고 측면에서도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다만 농협의 공적 성격을 감안할 때 홈플러스 인수는 사업 확장보다는 ‘국민경제 안정화’라는 명분 아래 추진될 공산이 크다. 최근 유통계는 물가 불안정과 고용 불안 등 여러 문제가 맞물리면서 기업의 역할론이 매우 강조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농협이 홈플러스를 인수할 경우, 고용 유지와 물가 안정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설득력이 확보된다.
결국 농협이 홈플러스 인수 후보로 주목받는 데는 시장 논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홈플러스 매각 국면에서 유일하게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매각 주체의 조속한 엑시트(투자금 회수) 의지, 시장 내 대안 부재, 공공성과 유통 역량을 겸비한 농협의 특수성, 하나로마트와의 시너지 등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 현재의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에 대해 농협 측은 “현재 홈플러스 인수 관련해 구체적 논의는 하고 있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노조는 고용 불안 우려
매각 주체인 MBK는 당초 전체 자산을 한꺼번에 넘기는 통매각 방식을 고집한 것으로 전해진다. 7월 초 기준 홈플러스는 전국에 126곳의 점포를 운영 중이며, 이 가운데 58개 매장은 홈플러스가 직접 부동산을 보유한 상태다. 여기에 남은 68곳의 임차 점포에서도 협상을 통해 임대료를 약 40% 절감했다. MBK는 홈플러스 실적 부진의 주요 원인이었던 임대료를 절감함으로써 사업수지가 개선될 것으로 봤다. 여기에 부동산 자체로서의 가치도 상당한 만큼 통매각이 어렵지 않을 것이란 기대였다.
그러나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오프라인 유통업 특성상 수익성 확보가 어려운 데다, 점포당 고정비 부담이 크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장의 냉담한 반응에 직면했다. 전통적인 유통 대기업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민간 자본을 추가 투입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는 게 시장 전반의 평가다. 이 때문에 롯데와 이마트, GS, 쿠팡 등 기존 유통 대기업들은 모두 홈플러스 인수전에 참전할 의사가 없다고 선을 그은 상황이다.
결국 MBK는 통매각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분리매각을 고려하는 모양새다. 일부 점포를 부동산 중심으로 매각하거나, 수익성이 높은 점포만 선별해 매각하는 방안 등이 검토 대상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강한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 홈플러스 노조는 지난해 홈플러스 매각이 처음 가시화했을 때부터 “분리매각은 고용 구조를 분절시킬 가능성이 크고, 종국엔 ‘고용 불안’을 야기할 것”이란 입장을 견지해 왔다. 현재 홈플러스 직원은 직접고용 인원만 1만9,000여 명에 달한다.
유통업에서 등 돌린 민간 자본
농협이 홈플러스의 유력 인수 후보로 부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홈플러스 매각이 처음 추진됐을 당시, 기업형슈퍼마켓(SSM)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인수 의사를 타진한 복수의 유통 업체 중 농협이 거론된 바 있다. 당시 농협이 서울 영등포농협 관할 구역에 있는 지점들을 눈여겨봤단 전언이다. 이는 전체 인수 부담을 줄이면서도 도심 상권 확보를 노린 전략으로 풀이됐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형태의 분리매각이 기존의 통매각 또는 사업부별 분리매각 시나리오에 비해 실현 가능성이 더 높다는 분석도 나왔다. 익스프레스 점포는 대형마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상권 침투력이 높아 특정 원매자 입장에선 매우 매력적인 매물이란 평가다. 특히 아파트 단지 중심의 입지를 고려하면, 생활밀착형 유통채널 확대를 노리는 기업에는 적합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주된 시각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홈플러스는 “익스프레스 매장 일부 매각은 사실무근”이라며 이 같은 소문을 일축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익스프레스가 홈플러스 전체 전략과 분리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이 부각됐다. 애초 분리매각은 통매각이 불가능할 경우를 대비한 절충안 차원에서 추진됐지만, 이를 다시 점포 단위로 쪼갠 거래에서는 홈플러스가 서둘러 발을 빼면서 전반적인 매각 논의 또한 동력을 잃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민간 자본을 통한 인수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고, 농협이 다시 유력 인수 후보로 주목받는 배경이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