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스텁허브, 내주 예정된 IPO 계획 연기 상장 코끝 클라르나·차임 등도 시장 예의주시 투자자 "관세 자체보다 불확실성 더 큰 문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폭탄 여파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치솟으면서 세계 각국 기업들의 사업 확장 움직임도 멈춰 섰다. 시장 상황 악화로 기업들의 자금 조달과 투자 여력이 줄어드는 가운데, 향후 경기 둔화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투자자 외면에 IPO 계획 연기하는 기업들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글로벌 주식시장 급락으로 기업들의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 등이 잇따라 무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티켓 거래 플랫폼 스텁허브는 다음 주 예정했던 IPO 계획을 연기했다. 투자자들이 설명회에 참여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거나 시장 혼란으로 투자에 집중하기 어렵다며 난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스텁허브는 부활절 이후까지 시장 상황을 지켜본 뒤 IPO 설명회를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올 초 규제 당국에 상장 서류를 제출하며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준비해 온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도 같은 이유로 IPO를 무기한 연기했다. 여기엔 목표로 했던 150억 달러(약 22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반영됐다. 또 다른 핀테크 기업 차임도 재무 정보 공개 제출을 미루며 IPO를 연기했고, 헬스케어 기업인 힌지헬스는 이달 말 예정한 IPO를 앞두고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상황이다.
작년 글로벌 기업 자금조달, 8조 달러 '사상 최대'
시장에서는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만큼 투자 결정을 하기가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은다.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금리가 조정될 가능성이 높고 기업가치 평가가 더 어려워진 만큼 어떤 거래도 마무리 짓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정책이 베일을 벗기 전부터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로 미국 내 M&A 거래가 1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국제 로펌 에버셰즈서덜랜드의 M&A 파트너인 앤서니 월시는 “관세 그 자체보다는 관세로 경영진이 느끼는 불확실성이 더 큰 문제”라고 짚었다. 투자를 철회한 영국 런던의 한 사모펀드(PEF) 관계자도 “이번 주는 도저히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며 “무역전쟁에 유럽이 어떻게 반응할지, 매크로 환경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주식 자본시장 부문을 총괄하는 필립 주스 골드만삭스 대표도 “대규모 IPO가 최근 들어 성사되지 않고 있다”며 “지난 수요일 밤 이후 IPO 시장의 분위기는 한층 더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여기에 지난해 이미 기업들이 대규모 자금 마련에 나선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기업들의 자금조달 규모는 사상 최대인 8조 달러(약 1경1,700조원)를 돌파했다. 이는 전년 대비 33% 급증한 수치다. 금융정보업체 LSEG 데이터를 보면 2024년 회사채 발행과 레버리지 대출 규모는 7조9,3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하 기대감,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인한 정책 불확실성 해소, 글로벌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수익 추구가 맞물린 결과였다.
지난해 기업들의 자금조달 전략도 진화했다. 작년 미 제약사 애브비는 이뮤노젠과 세레벨 테라퓨틱스 인수를 위해 150억 달러 규모의 투자등급 채권을 발행했으며 시스코, 보잉, 홈디포 등도 대규모 자금조달에 동참했다. 정책 방향성이 명확해지자 기업들은 올해 자금조달 계획까지 앞당기며 유리한 금융 조건을 선점하기도 했다.

韓 기업도 자금조달 수요 위축
국내 기업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티메프(티몬·위메프), 홈플러스, 발란 등이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하면서 금융기관의 자금조달이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825조2,09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대비 2조4,937억원(-0.3%) 감소한 수치다.
통상적으로 기업대출 규모 축소는 사업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연말에 이뤄지는데, 올해는 오히려 연초부터 대출이 감소해 이례적이란 평가다. 기업은 신년 새 사업을 추진하거나 새 설비 투자를 위해 은행 대출을 확대한다. 그러나 최근 대기업들의 법정관리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금융권은 물론 기업들도 대출에 신중한 분위기가 조성된 까닭으로 보인다.
국내 산업 생태계의 정점인 대기업부터 씀씀이를 줄이면서, 그 투자를 받는 하도급 중소기업과 기술 기반 스타트업도 영향을 받게 됐다. 실제 지난해 대기업 출자 벤처투자(CVC)는 전년 대비 9%가량 감소했는데, 올해는 추가로 더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2024 한국의 CVC들: 현황과 투자 활성화 방안’ 리포트에 의하면 지난해 국내 CVC 투자금액은 전체 스타트업 투자의 32%를 차지했다. 이는 글로벌 평균(26%)과 미국(29%)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3분기까지 글로벌 CVC 투자규모는 전년 대비 10% 증가했지만, 국내는 9% 감소했다. 글로벌 산업계에서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인수합병 및 투자 유치가 한창이지만, 국내는 그 혜택을 보질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민감국가로 지정받으면서 국내 인공지능(AI), 원자력 관련 기업은 해외로부터 투자금을 받기 더 힘든 형국이 됐다. 최근 AI는 글로벌 제조업, 유통 서비스, 보건산업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한 가치를 증명하면서 전 세계 차세대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IT 강국으로 소문난 우리 업계는 특히 보건의료 AI를 중심으로 글로벌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으로 인해 국내 기업은 미국과 우방국으로부터 배제당할 위험에 노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