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에 30조원 투자 나선 삼성, SK하이닉스 따라 경쟁력 키우겠다는데 “오히려 제 발목 잡을지도”

HBM 투자에 '맞불' 놨나, 점유율 압박에 투자 확대 시사한 삼성
업계선 여전히 '물음표', "연내 수익성 회복도 불확실한데"
매출 대비 R&D 비중 높이는 SK하이닉스, 쫓아가는 삼성은 '불확실성'만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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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삼성전자 DS부문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해 메모리 반도체에 30조원(약 224억 달러) 가까운 자본적투자(CAPEX)를 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가 올해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면서, 업계 내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만한 투자를 이어나갈 만한 여력이 삼성전자에 남아 있는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또한 과격한 투자를 통해 산재한 기술적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을지에도 여전히 물음표가 남았다.

삼성 “메모리 반도체에 약 30조원 투입할 것”

20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 DS부문은 메모리 반도체에 전년과 유사한 28조~29조원 수준의 투자를 계획 중이다. 지난해 삼성전자 DS부문이 투입한 CAPEX는 약 50조원. 여기서 메모리 반도체 및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에 각각 29조원, 11조원가량의 자금이 들어갔다. 당초 삼성전자 내부적으로 산출한 올해 메모리 반도체 CAPEX 규모는 10조~28조원 사이였지만, 엔비디아 수주가 시급한 만큼 HBM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재무 안정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부딪히며 범위가 넓어졌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결국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이 직접 나서 메모리 반도체 투자를 전년 수준으로 유지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이 4세대 HBM(HBM3E) 신경전에 뛰어들며 경쟁이 과열된 게 투자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다만 삼성전자의 투자 확대에 업계의 우려가 높다. 연내 수익성 회복이 가능할지 여부에 물음표가 떠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삼성전자는 위축한 현금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ASML 등 관계사 지분을 대거 매각하며 유동화에 나섰다.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차입하기도 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추가 차입에 나설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경쟁사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HBM 투자로 맞불을 놔야 한다는 게 경계현 사장의 결론인 것 같다”며 “주지해야 할 건 삼성전자는 투자를 늘릴 만한 여건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새롭게 기틀을 다지는 입장에 서 있는 삼성전자가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는 투자를 대폭 확대한다는 게 불안한 건 역시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공격적 투자와 거리 두던 삼성, 갑자기 왜?

당초 삼성전자는 이토록 공격적인 투자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여왔다. 물론 투자 확대를 고려하는 움직임은 있었다. 지난 1월 한진만 삼성전자 미주총괄(DSA) 부사장은 “올해 HBM에 대한 설비투자를 지난해 대비 2.5배 이상 늘리겠다”며 “지난해 경쟁사들이 투자를 줄이는 기간에도 삼성은 투자를 유지해 왔고 그 격차가 올해부터 본격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최소한 HBM에 한해선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한 셈이었다. “삼성전자의 HBM 경쟁력이 점점 향상될 것”이라며 관련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을 투자 확대 근거로 설명하기도 했다.

한 부사장은 “AI 가속기가 요구하는 메모리 성능이 점점 늘어나면서 지금은 HBM이 각광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저전력 소형 D램(LPDDR)이나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등 차세대 메모리가 더 주목받게 될 것”이라며 “이미 고객사들 사이에서 새로운 메모리 아키텍처(설계)에 대한 요구가 나오고 있어 2~3년 내에는 고객들의 수요를 맞출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어떤 블랙스완(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일단 발생하면 큰 위기가 발생하는 사건)이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지만 이런 변수만 없다면 올해 반도체 시장은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반등 신호가 나타나고 있고 ‘온디바이스 AI’ 컴퓨터들도 서서히 출하되는 등 반도체 전반에서 수요가 살아나고 있는 모습”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렇듯 삼성전자 측에서 지속적으로 투자 가능성을 언급하긴 했지만,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담보된 안정성이 근거하지 않는 한 과격한 투자를 이어가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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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뒤쫓는 삼성, 산재한 문제 뛰어넘을 수 있을까

실제 삼성전자 또한 당초엔 투자 축소까지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재무안정성을 위해서라도 메모리 반도체 투자를 줄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말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 합계는 2018년 이래 처음으로 100조원 아래까지 떨어진 바 있다. 그런데도 삼성전자가 본격 투자 확대를 시사하고 나선 건, SK하이닉스가 올해 CAPEX 규모를 전년 대비 2배 수준인 14조원으로 상향하는 강수를 둔 탓이다. 업계 내에서 HBM 선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투자 확대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매년 압도적인 자금을 쏟아부으며 업계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연구개발비로 4조1,884억원을 투자했다. 당해 SK하이닉스의 매출액이 32조7,657억원이었음을 고려하면 매출액 대비 R&D 비용 비중은 12.8%에 달하는 셈인데, 이는 SK그룹을 편입한 2012년 이래 최고치다. 공격적인 R&D 투자를 바탕으로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를 넘어 HBM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올해 1월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지난해 주력 제품인 더블데이터레이트(DDR)5와 HBM3 매출이 전년 대비 각각 4배, 5배 이상 증가했다”고 강조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여전히 산재한 과제 속에 파묻힌 상태다. 가장 큰 건 수율이다. 외신 등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HBM3 수율이 60~70% 선일 때 삼성전자의 HBM3 수율은 10~20% 수준에 불과하다. 발열도 문제다. 삼성전자 HBM이 경쟁사 대비 발열에 취약하다는 건 이전부터 꾸준히 지적되던 사안 중 하나다. 특히 지난해 10월엔 엔비디아 측에 HBM3 납품 계약을 요청했으나 제품 품질이 기준을 넘지 못했다며 사실상 퇴짜를 맞은 바도 있다. 

결국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었던 셈이지만, 상술했듯 불안 요소가 적지 않다. 단순 자금 문제 외 기술적 문제도 있다. 삼성전자는 앞서 HBM에 ‘비전도성필름(NCF)’ 대신 ‘몰디드언더필(MUF)’을 도입하려다 포기한 바 있다. 빠른 시일 내 공정 환경 구축이 어렵다는 게 이유였지만, 결과적으로 발 빠르게 MUF를 적용한 SK하이닉스 대비 다소간 아쉬운 결과임엔 틀림없다. 이후 삼성전자 측에서 “LG화학과 협업해 NCF 고도화를 이루겠다”는 방침을 내놓긴 했지만 이 또한 가능할지 여부에 확신이 없다. 불확실성과 불확실성을 거듭거듭 뛰어넘어야 할 삼성전자의 과대투자에 업계의 불안은 높아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