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공모주 배정 편법 여전, 금감원 ‘유명무실 수요예측제도’ 다시 손질한다

기관투자자들 '묻지마 풀베팅'으로 공모가 왜곡
기업 가치 분석도 패스, 상장 직후 매도로 수익 실현
공모가 뻥튀기 현상 확산에 개인투자자 피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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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기업공개) 공모주 수요예측제도가 다시 수술대에 오른다. IPO 시장의 건전성을 제고하려던 금융당국의 조처가 되려 기관투자자들의 묻지마 투기를 유도하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지적이 쏟아지면서다. 공모주는 리스크 가능성을 염두에 둔 고난도의 투자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지만, 정부 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차익 규모와 안정성 측면에서 안전 투자처로 탈바꿈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고액자산가가 직접 기관으로 변신하는 등 ‘무늬만 기관’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며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허수성 청약 방지’ 시행했지만 무소용, 추가 개선 검토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IPO 주관 업무 혁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한 금융감독원은 올 하반기 중으로 수요예측제도의 개선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지난달 IPO를 주관하는 증권사가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하지 않도록 수수료 구조를 개선한 데 이어 ‘ 뻥튀기 상장’의 핵심 문제로 지목되는 수요예측제도에 추가로 칼을 대는 것이다.

이번 제도 개선은 지난 2022년 금융위원회가 ‘허수성 청약 방지 등 IPO 건전성 제고 방안’을 내놨음에도 공모주 시장이 여전히 과당경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당시 금융위가 내놓은 수요예측 내실 강화 방안은 ‘LG에너지솔루션 사태’가 기폭제가 됐다. 지난 2022년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은 ‘단군 이래 최대 IPO’로 불리며 수요예측 경쟁률이 자그마치 2,023대 1을 기록했고, 전체 청약 규모 1경5,203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이 몰렸다.

그러나 당시 기관투자자가 수요예측에서 적어낸 금액은 그들의 실제 납입 능력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당시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의 무려 86%가 최대 주문 물량인 9조5,625억원을 써냈다. 그중에는 순자본금 5억원, 순자산 1억원을 보유한 기관투자자도 포함돼 있었다. 자기 자본금의 2만 배에 달하는 숫자를 써낸 것이다. 일반 청약과 달리 기관은 수요예측에 참여할 때 증거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에 금융위는 향후 주관사가 금융투자협회가 정하는 기준에 따라 주금납입 능력을 확인하지 않고 공모주를 배정할 경우 불건전 영업행위로 간주해 과태료 부과 등 제재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주관사의 허수성 청약 방지와 수요 관리 책임을 강화한 것이다. 또한 지난해 7월부터 수요예측 기간을 기존 2일에서 5일로 늘리고, 마지막 날 주문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1~4일차 주문을 넣는 기관에 대한 가점을 부여(초일가점 제도)하는 가이드라인도 포함했다. 이밖에 △주가 급등락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상장 당일 최고가를 공모가의 2.6배에서 4배로 확대 △의무보유 확약(공모주를 받아도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 물량에 대한 최우선 배정 원칙 △주관사에 기관 주금납입능력에 대한 확인 의무 부여 등도 신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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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일가점 제도가 낳은 부작용

하지만 수요예측 기간을 늘리자 첫날 참여한 기관이 공모주를 배정받는 데 유리해지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당초 금융 당국이 첫날 참여 기관에 인센티브를 주기로 결정한 건 해당 기업의 ‘적정 주가’를 스스로 판단한 기관은 공모주를 배정할 때 우대해 주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기관들은 공모주를 더 받기 위한 통로로 수요예측제도를 악용했다. 첫날 상장 준비 기업의 공모가 희망 밴드보다 높은 가격으로 대량의 주문을 내면 공모주를 먼저 배정받기 유리하다는 점을 이용해 가중치를 노린 것이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들어 IPO를 위해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한 일반 기업 19곳 모두 희망 밴드 상단을 8~33% 초과해 공모가를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차전지 제조 기업 코칩의 경우 공모가를 1만8,000원에 확정했다고 공시했는데, 이는 밴드(1만1,000~1만4,000원) 최상단을 28.6% 넘긴 가격이다. 당시 수요예측에는 국내외 2,207곳의 기관투자자가 참여했고 99.23%가 밴드 상단보다 높은 가격에 주문서를 써냈다. 1만8,000원보다 더 비싼 가격을 부른 기관투자자도 86.82%에 달했다.

지난 3월 상장한 오상헬스케어 역시 희망 밴드(1만3,000원~1만5,000원) 상단보다 30% 높은 가격인 2만원에 최종 공모가가 결정됐다. 오상헬스케어의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참여 건수는 총 2,007건으로, 이 중 1,975건이 희망 밴드 상단을 넘어서는 가격을 제시했다. 밴드 상단의 75%~100%(1만1,250원~1만5,000원) 사이를 제시한 수요예측 건수도 8건 있었지만 하단이나 그 아래 가격을 제시한 기관은 한 곳도 없었다.

무지성 공모주 청약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되려 가격 왜곡의 온상이 된 것은 물론, 과열 경쟁을 더욱 부추긴 꼴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모든 공모주는 상장 첫날 단 한 번도 공모가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상장 첫날 매도하고 나가면 무조건 수익을 얻었다. 이렇다 보니 IPO 수요예측에는 매일같이 기관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해 말 2,000여 곳이었던 수요예측 참여 기관 수는 지난달 2,200여 곳으로 불어났다.

그런데 이들은 정상적인 자산운용사가 아닌 무늬만 기관인 투자사가 대부분이다. 고액자산가들이 투자자문사 또는 사모펀드 전용 운용사를 직접 설립하거나 인수하는가 하면, 운용사들이 특정 고액자산가 전용 펀드를 만들어 운용하는 일도 빈번하다. 기존에 발행된 주택저당증권(MBS)이나 채권 등을 임시로 빌려와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사례도 있다. 여기에 올해부터 공모주 우선 배정 물량이 10%로 증가한 코스닥벤처펀드나 하이일드펀드를 비롯해 최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로 갈 곳 잃은 부동산 전문 운용사들까지 공모주 시장에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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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가 뻥튀기’의 온상으로 전락한 IPO 시장

결과적으로 물량 확보에만 중점을 둔 기관들이 높은 공모가를 제시하면서 개인투자자들 대부분은 공모주를 희망 가격보다 비싸게 매입하게 됐고, 이에 따라 IPO 기업들의 몸값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수요예측 당시 기관투자자들이 희망 밴드 범위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한 데 대한 합리적인 근거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들이 신규 상장기업에 어느 정도의 신뢰를 가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의무보유확약조건(락업‧Lock Up) 비율이 전반적으로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 이후 상장한 기업 66곳의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11만749건 중 최소 15일부터 최대 6개월까지 의무보유확약을 하겠다고 한 수요예측 건수는 1만3,749건(12.6%)에 불과했고, 나머지 87.4%(9만7,000건)는 미확약으로 확인됐다. 대부분의 기관투자자들이 최소 기일만 보유하다 즉시 매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해당 기업의 가치만 높게 부풀려 놓고 정작 주식은 보유하지 않겠다는 모순적인 행태이자, 공모주를 단타 종목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투자자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IPO 기업 주가는 상장 이후 큰 변동성을 보이기 일쑤다. 상장 첫날 오버슈팅한 뒤 시간을 두고 제 가격을 찾아가면서다. 지난해 하반기 수요예측에서 흥행해 상단 이상에서 공모가를 확정한 IPO 기업 41곳 가운데 절반은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았으며, 상당수가 상장 첫날 100% 넘는 주가 상승률을 보인 뒤 급락했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 6월부터 공모주 가격 제한폭을 기존 90~200%에서 60~400%로 확대하면서 더욱 극대화됐다.

실제로 올 들어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를 살펴보면 절반 이상이 공모가 대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크게는 절반에 가까운 손실을 내고 있는 공모주들도 있다. 포스뱅크가 대표적이다. 지난 1월 상장한 포스뱅크는 희망밴드(1만3,000~1만5,000원)를 웃도는 1만8,000에 공모가가 결정됐지만 주가는 20일 종가 기준 1만80원으로 40% 이상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HB인베스트먼트와 스튜디오삼익, 이에이트, 오상헬스케어 등도 두 자릿수 이상의 손실률을 기록 중이다. 적정 가격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지만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속은 쓰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개인투자자들은 따블이나 따따블(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4배 상승) 시나리오를 기대하며 여전히 공모주 청약에 몰려들고 있어 우려가 커진다. 지난 5월까지 상장을 마친 기업들의 개인투자자 평균 청약 참여 건수는 45만6,417건으로, 2021년 37만2,684건에 대비 크게 증가했다. IPO 시장 침체기였던 2022년(19만9,394건), 2023년(20만8,782건)과 비교하면 2배를 상회하는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