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은 총재 “한국 생활물가 타국보다 높아, 구조개선 필요”

한은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
이창용 "높은 생활비, 통화정책만으로 해결 어려워"
식료품·의류 물가는 구조개혁 사안, 수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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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한은 별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 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향후 물가가 완만하게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우리나라가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생활물가 수준이 높아 국민들에게 부담이 된다며 구조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향후 기준금리 결정과 관련해서는 금융통화위원회가 독립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플레이션’ 통화정책만으론 한계

이 총재는 18일 오후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전반적인 물가 오름세는 완만한 속도로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2%를 기록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월에는 2.7%로 낮아졌다. 근원인플레이션율도 같은 기간 2.8%에서 2.2%로 낮아지는 등 기조적인 물가지표들도 하향 안정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향후 물가는 최근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 둔화를 감안할 때 5월 전망과 부합하는 완만한 둔화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지정학적 리스크, 기상여건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만큼 물가가 예상대로 목표에 수렴해 나갈지를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농산물 가격을 낮추는 방법으로 수입 확대를 제시했다. 그는 “수입하지 않을 때는 농가를 보호하는 입장에선 좋은 정책일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며 “그래서 수입 다양화를 추진하는 게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수입 수준·속도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결정할 문제라며 정책 결정 권한은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이 총재는 구조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근원 인플레이션이 2.2%까지 떨어졌는데도 물가 수준은 여전히 높아 (사람들이) ‘한은은 뭐하냐’라고 (지적)한다”면서 “구조적 문제는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는 데는 제약이 있다. 정부 부처에서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중장기적으로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향후 물가 전망을 묻는 말에는 “5월 수정경제 전망에서 말했던 것과 같은 경로로 가고 있다”며 “다만 물가가 완전히 목표수준에 수렴했다고 할 수 있을지는 여러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7월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한은은 5월 경제 전망에서 올해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4%로, 내년 하반기는 2.1%로 전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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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OECD 대비 주요 품목군별 가격 수준/출처=한국은행

‘의식주’ 생활비 높고, 공공요금은 낮아

실제 한국의 물가 수준을 들여다보면 주요국과 비교해 품목별 편차가 상당히 큰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한은 조사국은 ‘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의식주 물가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비싸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물가 수준은 3가지 특징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소득수준 감안 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중간 위치에 있지만, 품목별로는 △가격이 현저히 높거나(의식주 비용), 크게 낮은(공공요금) 품목이 많은 편이다. 게다가 해당 품목의 주요국 대비 가격 격차가 과거보다 확대되는 식이다. 물가 수준은 전반적인 품목별 가격 추이를 말하는 것으로, 인플레이션과는 다른 개념이다.

한국의 전반적인 물가 수준은 비슷한 소득의 선진국과 비교하면 평균 정도로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체감도가 큰 의식주로 들어가 보면 ‘고물가’ 상황이 뚜렷했다. 한은이 영국 경제분석기관 EIU 통계를 분석한 결과 의류·신발, 식료품, 주거비 물가 수준(지난해 기준)은 OECD 평균을 각각 61%, 56%, 23%씩 웃돌았다.

특히 사과와 돼지고기, 티셔츠와 남성 정장 등의 물가는 OECD 평균의 두 배를 상회했다. 반면 전기·도시가스, 대중교통 같은 공공요금은 매우 낮게 나타났다. 아울러 생필품과 공공요금의 전반적인 가격 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국내 식료품·의류 가격은 1990년 OECD 평균의 1.2배에서 지난해 1.6배로 눈에 띄게 오른 반면, 공공요금은 같은 기간 0.9배에서 0.7배로 내려갔다.

물가 편차를 해결하려면 근본적 해법 필요

이 같은 ‘양극화’엔 한국의 특성이 반영돼 있다. 국내 농업은 농경지 부족, 영세한 영농 규모 등으로 생산성이 낮고 생산 단가는 높은 편이다. 또한 유통 비용이 적지 않은 데다 수입을 통한 과일·채소 공급도 주요국보다 제한적이라 가격이 높게 형성됐다. 의류 가격이 비싼 데는 소비자의 유명 브랜드 선호가 강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고비용 유통 경로에 편중돼 있고, 재고가 많은 것도 비용 압력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대로 공공요금이 낮은 데는 가계 부담 경감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에너지 충격 완충을 내세운 정부 정책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전기·가스요금은 생산 비용에 못 미치는 상황이 나올 정도로 저렴한 편이다. 특히 한은은 ‘필수 소비재’ 의식주 비용이 높게 지속되면 취약층 가계 부담을 가중한다고 짚었다. 향후 고령화로 국가 재정 여력은 줄고 기후변화 등으로 생활비가 늘어날 가능성이 큰 만큼, 물가 편차를 해결하려면 재정투입 같은 단기 대응보다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공공요금은 지속가능성을 위해 단계적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취약계층 선별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임웅지 한은 물가동향팀 차장은 “공공서비스 적자를 계속 놔두면 투자가 안 되고, 서비스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가격이 낮으면 과다소비를 부추기고 미래 세대가 적자를 갚아야 하는 세대 간 불평등 문제도 있는 만큼 정상화를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