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출입은행에 2조 현물출자, K방산 수출·중동 수주전 지원

기획재정부, 수은에 2조원 출자 집행
수은, 대출 등 10조원 여력 추가 확보
중동 플랜트 수주 및 방산 수출 지원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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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삼성E&A와 GS건설이 72억 달러에 달하는 공사를 따낸 사우디아라비아 파딜리 가스플랜트공단 전경/사진=GS건설

정부가 한국수출입은행(수은)에 현물 출자 방식으로 2조원을 추가 투입했다. 정부가 당초 예상보다 시일을 앞당겨 출자를 집행한 것은 중동에서의 인프라·플랜트 수주와 방산 수출 등을 신속하게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증자로 수은은 대출·보증 등 10조원가량의 금융지원 여력을 추가로 확보했는데, 우선적으로 사용될 곳은 방산 수출이 될 전망이다.

정부, 한국수출입은행에 2조원 추가 지원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3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지분을 현물 출자하는 방식으로 수은에 약 2조원을 추가 투입했다. 당초 6~7월께 현물 출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조기에 집행되면서 기업 지원도 앞당길 수 있게 됐다.

수은은 이번 증자를 통해 10조원 가량의 대출, 지급 보증 여력이 생긴 것으로 분석된다. 대출 여력이 늘어난 수은은 중동 등에서 중국 업체와 인프라·플랜트 분야에서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는 기업들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제2중동붐’에 편입하려는 국내 기업들에게 맞춤형 투자가 가능한 재원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전 세계 건설 및 인프라 시장의 성장세는 2030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IHS 마킷(Markit)에 따르면 세계 건설시장 규모는 올해 14조4,333억 달러에서 2030년 21조1,000달러(약 2경9,00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고유가 기조 및 초대형 프로젝트 발주가 지속됨에 따라 중동 건설시장은 작년에 비해 10%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한국 기업에 큰 기회가 생긴 것이다.

‘K-방산’ 수출 지원 위한 실탄 역할

아울러 수은에 대한 정부의 출자 계획은 우리나라의 대규모 방산 수주 계약을 당락 지을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은다. 국내 방산업체들은 2022년 폴란드와 124억 달러(약 16조6,900억원) 규모의 1차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현재 2차 계약으로 300억 달러(약 40조3,800억원) 규모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폴란드는 이 2차 계약을 실제 성사하는 과정에서 한국 당국이 보장하는 금융 지원을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무기 계약 건별로 6월(K-9 자주포)·11월(천무) 등 금융 계약 보증 시한도 달아둔 상황이다. 이에 올해 2월 국회에서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정책지원금 자본 한도를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늘렸지만, 수출 규모만 40조원이 넘는 폴란드 수출을 온전히 지원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다.

이런 가운데 정책금융 한도를 높인 수은의 자본금은 1차 계약 때 이미 대부분 소진된 탓에 2차 계약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증액이 결정된 자본금은 1년에 2조원씩 5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늘어난다. 또한 기획재정부 자본도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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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 자주포’/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폴란드 수출 2차 계약 실행 기대

우리나라는 수은이 주요 대출기관이기 때문에 자금 여력이 떨어지면 그만큼 국내 기업이 수출을 할 기회를 잃게 되는 구조다. 실제로 2022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KAI), 현대로템 등이 폴란드에서 수주한 무기 계약이 문제가 된 바 있다. 이들 기업은 K9자주포와 K2전차 등에 대한 17조원 규모 1차 계약을 체결했으나 30조원 물량의 2차 계약을 앞두고 계약 이행에 걸림돌이 생겼다. 돈을 빌려주는 수은의 대출 한도가 바닥이 나면서다.

수은은 특정 대출자에 대한 신용제공 한도를 자기자본의 40%로 제한하고 있어 한 곳에 빌려줄 수 있는 최대 한도가 7조3,000억원에 그치는데, 이미 1차 계약 때 수은이 폴란드에 6조원을 빌려줬기 때문에 남은 대출 한도가 1조3,000억원에 불과했다. 사실상 2차 계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업계에서 폴란드 2차 수출이 좌초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돌자 여야를 막론하고 수은의 법정자본금 자체를 높이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국민의힘 박진·윤영석 의원은 각 50조원과 30조원, 더불어민주당 정성호·양기대 의원은 각 25조원과 35조원으로 증액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기재위는 경제재정소위 논의를 거쳐 이 중 25조원 안을 채택했다.

이후 수은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폴란드에 추가적으로 4조원 신용공여가 가능해졌다. 무역보험공사와 함께 수은이 지원할 수 있는 총 금액은 8조원가량이다. 현재 폴란드가 요구하는 금액에는 못미치지만 기본 여건은 갖춰져 다시 협상할 여력이 생겼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다만 이번 정부 출자 계획표가 업계가 요구하는 ‘속도’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논란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정부가 올해 현물출자 방식으로 2조원 규모를 추진 중인 것을 두고서도 방산업계에서는 “충분하지 않다”며 연간 4조원 규모 출자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번 1조원 현금출자 추진안 역시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되는 것이어서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정부도 사정은 있다. 현금출자 방식은 재정 여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현재 세입 여건이 좋지 않은 정부로서는 무작정 한꺼번에 현금 지원을 늘릴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미 내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을 통해 재량 지출의 10% 이상을 감축하겠다며 ‘건전 재정’ 기조를 예고한 바 있다. 특정 국가를 위해 정책 금융 지원을 몰아주는 것이 적절한 방향인 것인지 역시 논란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