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금리·금융안정 언급한 이창용 한은 총재, 고금리 장기화에 ‘뉴노멀’ 제시했나

이창용 한은 총재 "금융안정 고려하면 중립금리 더 높아져"
중립금리 논쟁 이어가는 학계, 골자는 중립금리 상승 여부
여전한 물가상승률에 요원해진 금리 인하, '금융안정' 언급한 진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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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토마스 요르단 스위스 중앙은행 총재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4년 BOK 국제컨퍼런스’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사진=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안정을 고려해 중립금리를 추정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안정을 고려하면 물가안정만 고려한 것보다 중립금리가 더 높게 나타날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 금리 인하가 지연되는 상황을 일종의 ‘뉴노멀’로 생각해야 한다는 시선이 내포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창용 총재 “금융안정 고려해 중립금리 추정할 것”

이 총재는 30일 ‘BOK 국제콘퍼런스’에서 토마스 요르단 스위스 중앙은행인 스위스국립은행(SNB) 총재와 대담을 갖고 “금융안정도 고려해 중립금리를 추정하려고 한다”고 언급했다. 중립금리란 직접 관측할 수 없는, 이론상으로 존재하는 금리로 경제 성장과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인 이른바 균형 상태의 금리를 뜻한다.

한은의 중립금리 추정 과정도 간단히 소개했다. 이 총재는 중립금리를 추정하는 데 4∼5가지 모형을 가지고 있다며 “중립금리는 범위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실질금리가 중립금리 범위 위쪽이면 긴축적, 아래쪽이면 완화적이라고 판단한단 것이다. 중립금리 추정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근원 인플레이션 움직임을 보거나 금융상황지수(FCI) 등 지표를 활용한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그러면서 “중립금리 추정 과정에서 환율과 경상수지, 자본이동 같은 국제적 요인을 도입하려고 하면 추정치의 변동성이 상당히 커진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기준금리에 대해선 “중립금리보다 높은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의 기준금리가 3.5%고 중립금리는 그보다 낮은 2~3%에 추정돼 긴축 상황으로 진단하고 있단 의미다. 금융안정까지 고려해야 하는 한국 상황도 설명했다. 부채 증가나 자산가격 거품 붕괴 가능성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물가안정만 가정했을 때보다 중립금리가 높아진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아울러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 상황에서 중립금리 추정이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중립 금리가 추세적으로 하락세지만, 환율과 무역 등 글로벌 금융 상황을 반영하면 추정치의 등락이 있다”면서 “문제는 환율, 경상수지, 자본 이동성 또는 이동성과 같은 글로벌 요인을 도입하려고 할 때마다 모델 추정치가 상당히 많이 변동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요르단 총재는 “중립금리는 통화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준거가 되지만 추정치의 불확실성이 크다”며 “국가별로 이자율이 많이 다르고, 무역 발전 등에 따라서 (중립금리는) 많이 바뀔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결국 정책에 활용하려면 신뢰할 만한 추정치를 도출하는 게 중요하다”며 “다양한 추정방식과 모형을 활용해야 하고, 교차 확인 등 절차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팬데믹 이후 불붙은 논란, “통화정책 긴축적인 것 맞나”

이 총재가 언급한 중립금리는 이전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국가별로 중앙은행들이 중립금리 수준을 추론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니만큼 정확한 중립금리 수준을 확인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중립금리 논란은 더욱 커졌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가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린 가운데 미국의 경제 지표가 고강도의 통화긴축 이후에도 탄탄한 모습을 보인 탓이다. 실제 팬데믹 이후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오히려 반등했고, 고용시장도 견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2022년 1.9%, 지난해 2.5%에 이어 올해도 2.1%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정책금리가 높은데도 지표가 견조하게 나오자 시장에선 “현재 통화정책이 충분히 긴축적인 게 아닐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중립금리 자체가 크게 올라 ‘긴축의 기준’이 달라졌을 수 있단 지적이다. 예컨대 기준금리 5.3%의 환경에서 중립금리가 2.5%일 경우 경제에는 2.8%p의 금리 부담이 가해진다. 반면 중립금리가 3%로 상승했을 경우 실제 경제가 받는 부담은 2.3%p에 그치게 된다. 긴축 정책이 효과를 보기 위해선 중립금리가 높을수록 더 높은 수준의 긴축이 필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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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서도 ‘격론’, 이 총재가 중립금리 언급한 이유는

학계에서도 중립금리를 두고 격론이 끊이지 않는다. 중립금리의 상승과 유지를 이견이 거듭 표출되면서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 등 인사들은 중립금리가 상승했다는 데 무게추를 달았다. 그는 “미국 물가 상승률이 좀처럼 2%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중립금리 때문일 수 있다”고 언급하며 미국의 명목 중립금리를 3.5%~4% 정도로 추론했다. 그러면서 “(중립금리가) 현재 기준금리인 5.25~5.5%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만큼 현재 통화 여건이 그렇게 긴축적인 상황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미 연방준비제도(Fed) 차기 의장 후보로 거명되는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중립금리가 오를 순 있지만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미국채 공급의 증가량이 수요를 앞지르기 시작하면 채권금리가 오르고, 중립금리고 상방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면서도 “자본시장의 자유화와 세계화, 주요국의 외화보유액 확대 추세, 국부펀드의 수요 등으로 미국채의 수요가 증가했고 이에 따라 중립 금리가 오랜 기간 내림세를 보여왔다”고 역설했다. 중립금리 추정 모델을 개발한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중립금리는 여전히 꽤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이 총재가 ‘금융안정을 고려한 중립금리 추정’을 언급하고 나서자 시장에선 “고금리 상황을 새로운 표준(뉴노멀)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금리 위험 변수 추가로 인한 이자율 상승 수순을 금융안정에 활용할 수 있으리란 시선에서다.

결과적으로 높은 물가상승률·견조한 경제성장률이 이어지면서 금리 인하가 요원해진 상황에 대한 새로운 전략을 제시한 셈이란 평가도 일각에서 나온다. 실제 앞서 지난 23일 한은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석 달 전 2.1%에서 2.5%로 상향조정한 바 있다.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2.6%로 석 달 전 전망을 유지했으나, 이 총재가 “올 하반기 월평균 물가상승률이 2.3%를 기록해야 금리 인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혀 왔음을 고려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다만 유의해야 할 건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률에 고금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과 이 총재가 언급한 ‘금융시장 안정’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이 총재가 “한국은 고령화라는 독특한 요인이 있다”며 한국의 중립금리 하락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는 만큼 이후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