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증시 뭉칫돈 물리는데 국내 증시만 역행, 밸류업 효과는 언제?

국내 투자자들, 미국·일본 증시에 뭉칫돈
미국 기술주 상승에 닛케이 호황 겹쳐
국내 투자는 파킹 목적 채권 위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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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에 개별주식뿐 아니라 펀드에도 적극 투자에 나서며 해외 주식형 펀드 설정액이 4조원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상대적으로 제자리걸음에 머무른 코스피 영향에 코스피와 코스닥에 투자하는 국내 주식형 펀드는 같은 기간 8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해외펀드 4조원 vs 국내펀드 842억원

27일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국내 주식형 펀드 1,018개(상장지수펀드(ETF) 포함))의 전체 설정액은 지난 24일 기준 47조3,831억원으로 연초 47조2,988억원 대비 842억원 늘었다. 최근 한 달로 범위를 좁혀보면 3,550억원 증가했지만, 최근 3개월 순감액이 1조1,042억원에 달한다.

반면 해외 주식형 펀드 1,037개의 전체 설정액은 연초 37조2,377억원에서 출발, 올해 들어서만 4조522억원이 증가해 24일 기준 41조2,899억원을 기록했다. 반년 만에 4조원 넘게 자금이 몰린 영향으로 올해 초 10조612억원에 달했던 국내 주식형과 해외 주식형 펀드 설정액 차이는 현재 6조932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좁혀졌다.

해외 주식형 펀드의 급성장을 주도한 것은 역시 미국 증시 투자 펀드였다. 빅테크를 중심으로 한 미국 증시 상장사에 주로 투자하는 북미 주식형 펀드 설정액이 연초 대비 3조634억원 늘었는데, 이는 같은 기간 해외 주식형 펀드 설정액 전체 증가분의 75%를 차지한다. ‘포스트 차이나’로 주목받으며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투자금을 빨아들인 인도 증시에 투자하는 인도 주식형 펀드 설정액도 4,891억원 증가했고, 일본 주식형 펀드 설정액이 775억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그렇다고 펀드 투자자들이 국내 투자를 아예 기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식이 아니라 채권에 몰린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국내 채권형 펀드 335개의 설정액은 연초 42조3,624억원에서 현재 51조546억원으로 올해 들어 8조6,922억원이나 급증했다.

이는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 증가분(842억원)의 103배가 넘으며, 주식과 채권을 섞은 국내 혼합형 펀드 설정액 증가분(7,696억원)보다도 11배 더 많다. 채권형 펀드는 대부분 고수익보다는 유휴 자금을 보관해 두는 용도로 활용되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새로 유입된 국내 펀드 투자자들은 ‘파킹’형 상품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내 증시 이끌만한 모멘텀 없어

해외와 국내 주식형 펀드의 설정액 쏠림이 극단으로 갈린 것에는 결국 수익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연초 이후 국내 주식형 펀드 전체의 평균수익률은 4.06%로 해외 주식형 펀드 12.89% 대비 3분의 1 수준에 머물러있다.

같은 기간 16.67%를 거둔 북미 주식형 펀드와는 격차가 더 크다. 1년 투자수익률로는 국내 주식형 펀드가 9.61%, 해외 주식형 펀드 전체와 북미 주식형 펀드는 각각 19.16%과 36.04%로 국내 펀드만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국내 증시의 상승을 이끌만한 확실한 모멘텀이 생기지 않는 이상 해외 펀드로의 쏠림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참여하는 기업에 대한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하루빨리 확정해 기업들의 가치 제고와 주주환원 노력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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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정책, 변화 촉발하기엔 ‘기대 이하’

실제로 올해 한국 코스피지수 성장률은 아시아 주요국가 주가지수 가운데 꼴찌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4일 코스피지수는 전장보다 34.21포인트 떨어진(-1.26%) 2687.60에 장을 마쳤다. 코스피는 올해 첫 거래일 2,669.81(종가)을 기록해 24일까지 1.59% 오르는 데 그쳤는데 같은 기간 대만, 일본, 베트남 증시가 두 자릿수 상승을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아시아 증시는 지난 1분기 미국의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훈풍을 맞았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지난 4월 내수회복을 위해 부동산 분야 ‘이구환신(신제품 구매 시 보조금 지원)’ 정책을 추진한 이후 코로나19로 위축된 증시에 회복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좋은 시장 상황에서도 한국 증시는 상장회사의 ‘낮은 성장성·주주환원율’에 따라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시각에서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운용 중기 자산배분안(2018~2022년) 결정 관련 회의록을 보면 “가장 최적의 자산배분안은 국내 주식은 아예 0으로 가져가는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렇다 보니 국내 투자자 이탈도 커졌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부문의 해외증권투자에서 국내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잔액 기준)은 2019년 7.3%에서 2023년 20.0%까지 올랐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주식시장 저평가)’ 현상 해소를 위해 정부가 기업 밸류업 공시 기준을 확정해 공개했지만 변화를 촉발하기에는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