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옵션 FMV 두고 교보생명-어피너티 격돌, 9월 2차 중재 발표로 ‘5년 악연’ 끝맺나

2015년 상장 실패한 교보생명에 어피너티, 주당 41만원에 풋옵션 행사
신 회장 "FMV 너무 과해, 저출생·고령화 여파에 따른 성장 약화 고려해야"
SSG닷컴 두고도 풋옵션 분쟁 벌이는 어피너티, 분쟁관리 역량에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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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모습/사진=교보생명

투자원금 1조2,000억원을 두고 5년간 이어져 온 교보생명 풋옵션(투자한 지분을 되팔 수 있는 권리) 분쟁 2차 중재 결과가 이르면 오는 9월 발표된다. 강제성 있는 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지 않은 만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재무적투자자(FI) 간의 강대강 대치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업계에선 장기전으로 갈수록 어피너티 측이 열세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부정 의혹이 나온 데다 최근 신세계와의 풋옵션 분쟁을 연달아 노출하면서 약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거듭되는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 2차 중재 결과 발표는 9~10월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 2차 중재 결과는 오는 9~10월 발표될 예정이다. 해당 분쟁은 2012년 교보생명 지분 24%에 1조2,000억원(주당 24만5,000원)을 투자했던 어피너티컨소시엄(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 PE, 베어링PEA, 싱가포르투자청 컨소시엄·FI)이 2018년 풋옵션을 행사할 당시 신 회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벌어졌다. 주요 쟁점은 풋옵션 행사 가격이다.

어피너티가 풋옵션을 행사하고 나선 건 교보생명이 2015년까지 상장을 하지 못할 경우 풋옵션이 가능하도록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이후 교보생명은 약속 기간이 지나도록 상장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어피너티는 안진회계법인을 통해 2018년 주당 40만9,912원(총 2조122억원)에 풋옵션을 행사했다. 기업가치를 8조원대로 추정한 것이다.

그러나 신 회장 측은 이를 거부하고 나섰다. 저출생·고령화 여파로 성장 여력이 약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피너티 측이 교보생명 주식을 매입하던 당시 가격의 2배에 가까운 수준을 요구하는 건 과도하다는 것이다. 실제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1~11월 기준 국내 생명보험 신계약 규모는 월평균 24조8,154억원(2020년)에서 19조6,473억원(2023년)으로 감소했다. 교보생명의 영업이익도 2014년 6,537억원에서 2023년 6,190억원으로 10년 새 되레 줄었다. 신 회장 입장에선 어피너티의 공정시장가격(FMV)에 반발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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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옵션 계약이 ‘주주 간 거래’? 업계선 “오너 지키기냐” 비판도

문제는 어피너티와의 풋옵션 계약이 교보생명 기업 차원이 아닌 신 회장 개인 차원에서 이뤄진 주주 간 거래였다는 점이다. 사실상 교보생명은 풋옵션 계약에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어피너티와의 분쟁에서 주요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신 회장의 입을 자처해 온 교보생명은 업계로부터 볼멘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오너 지키기 아니냐”는 힐난이 쏟아졌다. 결과적으로 회장과 다른 주주 간 문제에 기업이 끼어드는 모양새가 된 탓이다.

이처럼 부정적 기류가 흘러나옴에도 신 회장이 교보생명을 거듭 끌어들이는 건 신 회장 입장에서 이번 풋옵션 사태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신 회장의 교보생명 지분은 33.78%로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모두 합해도 37%가 채 안 된다. 어피너티가 소유한 지분 24%가량이 다른 곳을 향할 경우 신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결국 교보생명 풋옵션 사태는 어떻게든 싼 가격에 지분을 사들이고자 하는 신 회장과 어떻게든 비싼 가격에 팔고자 하는 어피너티가 격돌한 결과인 셈이다.

열세 점쳐지는 어피너티, 연이은 신세계 분쟁에 약점 노출도

이런 가운데 시장에선 어피너티가 풋옵션 분쟁에서 상대적으로 열세라는 평가가 나온다. 어피너티의 주도 아래 안진회계법인이 고객의 부정 청탁대로 가치평가를 하고 대가를 챙겼단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지난 2022년 어피너티 주요 임직원과 안진회계법인 회계사들에 대한 항소심 4차 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들의 회계사법 위반 혐의 정황이 담긴 244건의 이메일 증거를 제출했다.

이메일엔 어피너티와 안진이 “어차피 소송으로 갈 확률이 높으니 가능한 유리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결괏값을 높이자”고 상호 합의한 내용이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피너티는 안진에 이메일을 보내 가치평가방법 등의 수정을 지시했고, 그 결과 교보생명 1주당 풋옵션 행사 가격이 시장가치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높아졌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아울러 최종 풋옵션 가격 결정 과정에서 어피너티가 안진 회계사에 평가 방법별 풋옵션 가격을 적어주면 내부적으로 논의해 결정하겠다는 등 가치평가를 주도한 점도 드러났다. 어피너티 측이 “내부적으로 논의해 결정하겠다”는 이메일을 보냈고 이에 안진 회계사들은 어피너티 측에 “컨펌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회계법인이 제공하는 유가증권, 유형자산, 무형자산 등에 대한 ‘가치평가 서비스 수행 기준’에 따르면 가치추정업무는 가치평가서비스와 가치산정서비스로 나뉜다”며 “해당 수행 기준의 상호 이해 대상은 용역 범위가 어떻게 되고 그 가치평가 용역을 통해서 어떤 보고서가 산출되는지 등에 관한 것으로, 여기엔 평가 방법과 인자, 최종 단가를 협상하라는 내용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어피너티가 신세계와의 풋옵션 분쟁을 노출한 것도 어피너티의 평가를 낮추는 요인이 됐다. 거듭 갈등을 내보이면서 풋옵션과 관련한 분쟁관리 역량에 물음표가 드리운 것이다. 앞서 지난 4월 어피너티는 SSG닷컴을 두고 신세계와 풋옵션 요건 협상을 진행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한 바 있다. SSG닷컴 총거래액에 상품권 거래액이 포함된 건 과다 계상이라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신세계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다.

업계에선 신세계 건에 대해서도 어피너티 측이 과도한 요구를 내세웠단 의견이 지배적이다. 총거래액에 상품권 거래액이 포함되는 건 업계 내 관례인 데다, FI도 이를 알고 투자했으면서 갑작스럽게 말 바꾸기를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다는 지적이다. 어피너티 입장에선 사실상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