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커머스 공습 속 이커머스-FI 간 ‘풋옵션’ 갈등 격화, 이제 시작일 뿐

쓱닷컴, FI 측과 풋옵션 조건 놓고 협의
11번가, 지난해 콜앤드래그 계약 행사
기업가치 반토막 난 컬리도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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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그룹과 SSG닷컴(쓱닷컴)의 재무적투자자(FI)가 풋옵션(매수청구권)을 놓고 갈등을 겪으면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국내 이커머스 기업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이커머스 기업과 투자자 간의 갈등이 이제 시작 단계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다음 타자로 리테일 테크기업 ‘컬리’가 거론되고 있다.

SSG닷컴 vs FI, 풋옵션 관련 주주간 계약 유효성 논의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현재 쓱닷컴 FI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Affinity Equity Partners)·블루런벤처스(BRV)캐피탈과 풋옵션 관련 주주간계약의 유효성에 대해 협의를 벌이고 있다. 2018년과 2022년 신세계그룹이 두 차례에 걸쳐 양사로부터 총 1조원의 투자를 유치할 당시만 해도 쓱닷컴의 실적 개선 기대감과 기업공개(IPO) 성공이란 장밋빛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현시점 쓱닷컴은 적자 상태다. 지난해 적자 규모가 전년과 비교해 100억원가량 줄긴 했지만 여전히 1,000억원 이상의 영업 적자를 기록 중이다. 쓱닷컴 부진의 여파는 고스란히 모회사에 미쳤다. 이마트는 지난해 창립 이래 처음으로 적자(470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AA였던 신용등급도 최근 AA-로 한 노치 강등됐다. 

쓱닷컴이 활로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 가장 불안한 건 역시 쓱닷컴의 FI들이다. 업계에 따르면 어피너티와 BRV 등 FI의 지분율은 30%며, FI가 투자할 당시 책정한 기업가치는 약 3조3,000억원이다. 투자 당시만 해도 FI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FI들은 쓱닷컴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조건은 △2023년까지 총 매출(GMV) 기준 5조1,600억원 이상 달성 △IPO위원회가 선정한 복수 IB의 IPO 가능 의견 제출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런데 이미 해당 조건이 충족돼 FI의 풋옵션 행사 가능성은 사라진 것으로 파악된다. 

만약 해당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해 FI가 풋옵션을 행사했다면 이마트는 1조원이 넘는 자금 출혈을 감당해야 했다. 지금의 그룹 재무 여력을 감안하면 근간이 흔들리는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현재 양측은 풋옵션 관련 주주간계약의 유효성을 두고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FI 측은 쓱닷컴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해 신세계그룹이 주식을 되사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총거래액에 상품권 거래액 등이 포함돼 과다계상된 데다 단순 상장 주관사 선정을 IPO가 가능한 ‘의견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신세계그룹은 이미 해당 조건들을 충족했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신세계그룹은 타협 차원에서 기존 FI의 일부 투자금을 돌려주기 위해 최근 복수의 FI와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1번가, IPO 불발로 강제 매각

11번가도 지난해 9월 30일까지 IPO를 완료하지 못하면서 콜앤드래그(call and drag) 계약이 행사됐다. FI가 SK 지분까지 함께 매각할 수 있도록 하되, 드래그얼롱 이전에 SK그룹이 지분을 되살 수 있는 권한(콜옵션)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11번가의 2대 주주이자 FI인 나일홀딩스는 11번가 지분 100% 매각가로 최소 5,000억원에서 최대 6,000억원까지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000억원은 나일홀딩스가 투자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최소 몸값으로 통한다. 나일홀딩스는 H&Q코리아와 이니어스프라이빗에쿼티, 그리고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등이 11번가 투자를 위해 조성한 컨소시엄으로 지난 2018년 2조7,500억원 기업가치에 5,000억원을 투자했다.

당초 나일홀딩스는 11번가 상장에 맞춰 투자금 회수에 나선다는 방침이었지만, 상장이 불발됐다. 쿠팡의 독주 속 이커머스 시장 경쟁 심화로 11번가는 지난해만 1,25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여기에 11번가 모회사인 SK스퀘어마저 콜옵션을 포기하면서 매각만이 회수 수단이 됐다. 당시 업계에서는 SK스퀘어의 결정을 두고 논란이 가중됐다. 자본시장에서 콜옵션 행사는 암묵적인 관행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일홀딩스는 수익성 제고 후 매각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수익성 제고라는 방침 자체가 독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 업체의 국내 진출이 이어지면서 11번가의 오픈마켓 경쟁력마저 약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용 절감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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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컬리

업계, 다음 타자로 ‘컬리’ 지목

국내 이커머스 기업이 투자자 측과 잇달아 갈등을 겪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다수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음 주자로 2022년부터 IPO를 추진 중이지만 상장이 미뤄지고 있는 컬리가 꼽힌다. 컬리는 2022년 8월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해 지난해 2월까지 상장을 완료해야 했지만 같은 해 1월 자진 철회했다. 2022년부터 증시 부진으로 공모주가 잇달아 흥행에 실패한 데다 기업가치가 사실상 반토막 났기 때문이다.

컬리는 현재 투자자인 앵커프라이빗에쿼티(PE, 10.87%), 힐하우스캐피탈(10.32%), 세콰이어캐피탈(8.85%), DST글로벌(8.83%) 등 FI가 주요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김슬아 대표이사는 컬리 지분 5.91%를 보유하고 있다. 2021년 11월 앵커PE 등 FI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당시 컬리의 기업가치는 4조원으로 평가됐다. 지난해 2조5,000억원의 몸값에 1,200억원의 자금을 수혈받아 두 번의 투자 유치 당시 앵커PE로부터 인정받은 기업가치의 평균치는 3조원대 초반이다.

그러나 컬리의 현재 기업가치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기준에서도 밀려났다.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인 서울거래비상장에 따르면 컬리의 20일 기준 추정 시가총액은 6,122억원이며 주당 거래가격은 1만4,500원이다. 상장 추진을 시도했던 2021년 12월 10일 주당 11만9,000원에 거래되던 것을 고려하면 기업가치가 대폭 쪼그라든 것이다. 컬리는 또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 1,969억원의 순손실을 내는 등 좀처럼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결손금은 2조2,615억원에 달한다. 현실적으로 컬리 FI의 투자금 회수가 어려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