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부동산 PF ‘이중고’, 저축은행 1분기 연체율 9% 육박

올해 1분기 기준 저축은행 연체율 8.8%, 지방은 더 심각
금감원, 자본조달계획 마련 주문 및 NPL 매각 채널 확대
카드론 전년比 2조원 증가, 저축銀 대출 강화의 풍선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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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에 따른 업황 악화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위기까지 겹치면서 저축은행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연체 채권 매각을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서는가 하면 업계 차원에선 대출 문턱을 높이는 등 건전성 관리에 집중하고 있지만, 서민들의 급전창구인 카드론의 잔액이 역대 최대를 경신하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연체율이 치솟은 저축은행들이 대출을 조이자 중·저신용자들이 대안책으로 카드론을 찾은 결과다.

꺾일 줄 모르는 저축은행 연체율, 연내 10% 임박 우려

1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저축은행 연체율은 약 8.8% 수준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6.55%에서 한 분기 만에 2.25%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저축은행 연체율은 2021년 2.51%, 2022년 3.41%로 매년 상승폭을 키우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저축은행 연체율이 연내 10%대를 찍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방 저축은행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미 일부 지방 저축은행은 지난해 말 8%대 연체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광주·전남·전북 지역 저축은행 연체율은 8.1%로 전년(4.3%) 대비 3.8%포인트 올랐다. 평균 상승치를 고려하면 10% 대 연체율을 기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저축은행의 연체율 상승세는 고금리 기조하에 현금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과 자영업자가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주거래대상이 서민층 및 중소상공인인 저축은행의 특성상 경기 침체 영향이 금융업권 중 가장 빠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부동산 PF에 따른 부실도 연체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의하면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비중은 17%가 넘는다. 이는 증권사(4.1%), 여신전문금융사(7.4%)보다 무려 3~4배나 높은 수준이다. 부동산 PF 연체가 지속되면서 대출 잔액은 10조원에 육박했다. 이들 모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대출이다. 특히 시중은행이 대출을 거부한 불안정한 사업장에 빌려준 돈은 돌려받을 기약조차 없는 상황이다.

연체율 상승은 대규모 적자로 이어졌다. 국내 저축은행 79곳의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5,559억원으로 1년 전(당기순이익 1조5,622억원)에 비해 순익이 2조원 넘게 줄어들었다. 저축은행 업계가 연간 적자를 낸 것은 2013년 이후 처음이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의 추가 충당금 적립 규모도 크게 확대됐다.

아울러 지난해 부동산 PF 익스포저(부동산 PF대출과 브릿지성 토지담보대출의 합산) 충당금 적립률도 7.1%로 전년(3.5%) 대비 두 배 이상 올랐다. 이로 인해 쌓아야 하는 대손충당금만 3조3,000억~3조9,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저축은행이 한 해에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많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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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도 비상, 저축은행 경영 정상화에 총력

저축은행 업권 전반에 건전성 위기가 고조되자 금융당국도 비상이 걸렸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초 저축은행 10여 곳에 ‘비상시 자본조달계획 마련’을 주문한 데 이어 연체채권 정리에 소홀한 일부 저축은행에 대해 현장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금감원은 먼저 부동산 PF 사업장 경·공매 활성화 방안과 개인사업자 연체채권 매각 현황 등을 함께 점검할 계획이다. 낙찰 가격이 낮게 형성될 경우 손실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 저축은행 등 대주단이 PF 사업장 경·공매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던 만큼, 경·공매 촉진을 통한 PF 재구조화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더불어 저축은행들의 개인사업자 연체 채권 매각을 지원하기 위해 새출발기금으로 한정돼 있던 매각 채널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또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부실채권(NPL) 전문투자회사로 확대했다. 저축은행중앙회는 저축은행들로부터 개인사업자 연체채권 매각 의사를 최종 확인해서 이달 NPL전문투자회사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2개 저축은행이 개인 신용대출 부실채권 약 1,000억원을 우리금융F&I에 매각한 바 있다. 금융위원회는 NPL을 취급하는 자산운용사로 매각 채널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6개월 이상 연체가 발생한 부동산 PF 사업장에 대한 경·공매도 진행한다. 그동안 저축은행들은 연체 발생 사업장을 공매로 넘기더라도 최저입찰가격을 원금 수준에서 정한 탓에 대부분 유찰됐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들이 최저입찰가격을 낮추지 않는 방식으로 사실상 경·공매를 무산시키고 있다고 판단하고, 저축은행중앙회 표준규정을 개정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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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대출 막히자 카드사로, 3월 카드론 잔액 최고치 경신

금융당국의 이 같은 기조는 부동산 PF 연착륙뿐 아니라 저축은행 경영 상태를 빠르게 정상화시켜 중·저신용자들의 ‘대출 창구’ 물꼬를 터주기 위한 조처다. 최근 저축은행들이 부실을 줄이기 위해 신규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카드론 이용 금액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롯데·BC·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NH농협카드 등 9개 카드사의 카드론 금액 합계는 39조9,64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지난 2월(39조4,744억원) 대비 4,900억원 늘어난 수치다. 1년 전인 지난해 3월(36조8,000억원)과 비교하면 자그마치 2조원 넘게 증가했다.

지난달 카드사별 카드론 평균금리를 보면 롯데카드가 15.58%로 가장 높았다. 이어 우리카드(14.87%), BC카드(14.79%), 하나카드(14.70%) 순으로 대체로 15%에 육박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5%대 금리는 한 곳도 없었다. 이 역시 저축은행권이 대출 문턱을 높이자 저신용 차주의 카드론 수요가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카드론을 돌려막는 대환대출도 증가세다.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은 3월 말 기준 1조7,800억원으로 1년 사이 6,000억원 늘었다.

중저신용자들의 대출 수요가 몰리면서 연체율도 급증하는 추세다. 국내 5개 카드사(신한·국민·삼성·우리·하나카드)의 지난 1분기 평균 연체율은 1.47%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말(1.31%)보다 0.16%포인트 오른 수준이다. 하나카드의 연체율은 지난해 말 1.67%였지만 지난달 말 기준 1.94%로 0.27%포인트 오르며 2%에 육박했다. 업계 1위 신한카드의 연체율은 지난해 말 1.45%에서 1.56%로 0.11%포인트 올랐다. 신한카드는 금융권의 연체율이 상승하던 지난해에도 연체율이 1.5%를 넘은 적 없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리카드는 1.22%에서 1.46%로 0.24%포인트 올랐고, KB국민카드는 1.03%에서 1.31%로 0.28% 오르며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연체율 상승에 따라 재무 건전성 우려가 확대되면서 카드사들의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도 늘게 됐다. 5개 카드사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충당금은 총 8,070억원으로, 전년 동기(7,652억원) 대비 6% 증가했다.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는 충당금으로 각각 2,247억원, 1,944억원을 적립했고, 삼성카드는 1,753억원을 쌓았다. 우리카드와 하나카드의 적립액은 각각 1,220억원, 906억원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