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에서 ‘긴축’으로,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소재 사업 매각 나서나?

그간 유동성에 기대 투자 확장했지만 차입 부담 커져
IPO 추진 중인 SK온, 올해만 7조5,000억 투자 계획
S&P 신용등급 하락에 자회사 매각 등 긴축기조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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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이 자회사 SK온의 부진으로 휘청이고 있다. 신용등급 하락 등 차입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유동성 확보를 위해 SK그룹이 배터리 사업을 비롯한 그린 포트폴리오 재점검에 들어가면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재 사업 처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배터리 셀 분야에 집중, SKIET 등 소재 사업 매각 가능성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소재 사업의 매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배터리 사업에만 연간 7조원 이상을 투입하는데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SK온의 배터리 셀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현재 SK이노베이션 내부에서는 SKIET 등 배터리 소재 사업이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배터리 분리막을 생산하는 SKIET를 비롯해 음극재 사업, 전고체, 차세대 소재 등 지분 투자한 사업까지 모두 묶어 매각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재 사업의 매각은 차입 부담을 완화하고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이 연내 상환 또는 차환해야 하는 차입금은 28조7,151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자금 조달 여건이 예전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지난달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투기 등급인 ‘BB+’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의 글로벌 신용등급은 한때 ‘BBB+’였지만 2019년 ‘BBB’, 2020년 ‘BBB-‘로 떨어진 데 이어 이번에 또다시 하락한 것이다.

S&P가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하향한 지 사흘 만인 지난달 22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이노베이션의 주요 사장단과 마라톤 회의를 열어 본격적인 계열사 구조 개편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SK온과 윤활유 업체 SK엔무브(전 SK루브리컨츠)를 합병한 뒤 상장하는 방안과 배터리 분리막 업체인 SKIET의 지분을 일부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는 방안 등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SK온은 IPO 앞두고 자금력 좋은 SK엔무브와 합병 검토

올해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에만 7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계획하고 있는 투자 규모에 비해 보유하고 있는 투자 재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외부 차입 조건까지 악화되다 보니 자산 매각 등을 통한 투자금 확보 방안을 검토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다음 달 중 SKIET에 I/E소재 R&D 관련 자산과 인력을 양도하기로 한 것도 배터리 소재 사업의 매각을 염두에 둔 결정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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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다만 SKIET는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은 데다 매출의 80%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SK온의 부진으로 위기에 빠진 상태다. SKIET는 2019년 4월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물적 분할된 이후 유상 증자 규모만 1조2,000억원에 육박한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SKIET 지분 61.2%를 보유하고 있으며 SKIET의 장부가액은 지난해 말 기준 6,000억원 수준이다. SKIET와 함께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지분 투자 회사로는 리튬 배터리용 음극재 제조업체 ‘창저우BTR뉴머티리얼테크놀로지’와 가스 분리막 전문기업 ‘에어레인’이 있다. 해당 회사에 대한 지분 투자액은 각각 1,075억원, 53억원으로 집계됐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업체 SK온과 SK엔무브를 합병한 후 상장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SK온의 기업공개(IPO) 시기가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윤활유 생산 업체로 현금 창출 능력이 뛰어난 SK엔무브와 합병해 시장에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겠다는 전략이다. SK엔무브는 지난해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했다. 현재로서는 SK엔무브가 SK온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다만 인수합병이 현실화되더라도 내부 임직원의 반발, 업종 차이로 인한 시너지 창출의 문제 등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룹 전반에 유동성 위기론, 사업 구조개편 작업 이어질 듯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부가 분사해 설립된 SK온은 공장 1곳당 최소 수조원대의 초기 투자 금액을 확보하기 위해 모회사를 비롯해 다양한 투자처로부터 지분 투자와 차입 등을 통해 자금을 유치했다. SK온은 앞서 상장 전 프리IPO 당시 기업가치가 2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최근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면서 2022년 1조727억원, 2023년 5,818억원 영업적자를 냈다.

올 하반기 흑자 전환이 예상되고 있지만 실적이 IPO의 최대 걸림돌로 꼽히고 있다. IPO 시점도 문제다. IPO를 조건으로 외부 투자자를 유치했지만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IPO 시점도 미뤄지고 있어서다. 그 사이 차입금이 치솟으며 SK이노베이션의 연결 기준 총부채도 2020년 23조 원에서 지난해 50조8,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그룹 내부에서는 이대로 가면 배터리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상당하다는 전언이다.

중국이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연간 1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는 SK엔무브와의 합병을 검토하고 있는 배경에도 중국에 맞서기 위해선 든든한 자금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전략이 숨어있다. 앞서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SK온의 IPO 시기에 대해 “외부 투자자 유치 당시 약속한 IPO 시점은 2026년 말”이라며 “상황에 따라 1년 내지 2년 정도 상장 시점을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SK그룹에 대한 유동성 위기 가능성은 지난해 초부터 거론됐다. 오랜 기간 쌓아온 네트워크와 재무 역량을 바탕으로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사업에 신중해야 한다는 기조가 강해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자산 효율화 작업이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배터리 소재 사업의 거취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만 배터리 소재 사업의 매각은 근본적인 구조 개편 작업인 만큼 최적의 결론을 도출하기까지는 큰 진통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연초에 사업 포트폴리오를 점검하고 재조정하는 통상적인 경영활동의 일환”이라며 “확정된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