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장기화 전망에 ‘미 국채 금리’ 급등, 2007년 이후 최고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FOMC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Fed

3일(현지 시간)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연 4.8%를 돌파하며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국제유가 급등 및 미 정치권발 불확실성 등 당초 예상보다 고금리 정책이 오랜 기간 지속될 거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면서다. 이에 따라 달러화 가치가 연중 최고치 경신을 이어가고 있으며, 미국 주식시장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글로벌 채권 시장 금리가 상승하는 가운데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대외여건 변화에 따른 변동성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5%’를 향해 가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

미 전자거래 플랫폼 트레이드웹(Tradeweb)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날 오후 3시 30분(미 동부시간 기준) 무렵 4.81%을 기록했다. 이는 하루 전 같은 시간보다 13bp가량 급등한 수치다. 같은 시간 3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도 4.95%를 기록하며 5%선 돌파를 눈앞에 뒀다. 이 역시 2007년 10월 이후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채권 금리 급등은 고금리가 예상보다 더 오래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위 관계자들이 지속해서 매파적인 행보를 이어가면서 채권시장 참가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로레타 메스터 미국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전날 “올해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릴 필요가 있다”면서 “연준의 작업이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셸 보먼 연준 이사도 “인플레이션을 제때 2%로 되돌리기 위해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할 것으로 계속 예상하고 있다”면서 연준의 매파적 정책 기조에 힘을 실었다.

최근 발표된 고용 지표도 채권 금리 급등에 영향을 미쳤다. 이날 미국 노동부가 공개한 구인 이직보고서에 따르면 8월 민간기업 구인 건수는 961만 건으로 전월보다 7.7% 증가했다. 이는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돈 수치로 여전히 미국 노동시장이 과열돼 있음을 시사하며 연준의 긴축 정책이 오래 지속될 거란 전망에 무게를 보탰다.

국채 금리를 급등의 또 다른 요인들

고유가와 미 정치권발 불확실성 등도 국채 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먼저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41센트(0.46%) 오른 배럴당 89.2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브렌트유도 0.45% 오른 91.12달러를 기록하면서 올 초부터 시작된 상승세가 지속됐다.

국제 유가 상승은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지속하도록 만드는 만큼 이에 따라 고금리 장기화 전망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OPEC 등 원유 업계에서도 일일 평균 원유 수요가 늘어나면서 고유가 상황이 상당 기간 이어질 거란 전망을 내놓는 점도 채권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이날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원의장직에서 해임되면서 정치권 불안이 심화된 점도 채권 금리 상승을 부채질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미 하원은 전체회의를 열고 매카시 하원의장 해임결의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해 찬성 216표, 반대 210표로 해임 결의안을 가결했다. 하원의장을 다시 선출해야 하지만, 공화당 내에서는 유력한 후보가 마땅히 없는 상황이다.

지난 1년간 미 국채 10년물 금리 추이/출처=FRED

‘미 국채 금리 상승’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미 국채 금리 급등은 글로벌 금융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날 독일과 영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도 각각 16bp, 27bp씩 상승하는 등 전반적인 오름세가 나타났다.

달러화 가치도 연중 최고치 경신을 이어가고 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반영한 달러화 인덱스는 이날 오전 107.35까지 상승하며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 특히 전 세계 채권금리의 기준이 되는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우리나라의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의 대출금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은 전반적인 시장 금리 오름세를 유발해, 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면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기업과 가계는 사실상 금리가 오른 것과 같은 부담을 지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행도 글로벌 채권금리가 상당 폭 상승한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은은 4일 오전 유상대 부총재 주재로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추석 연휴 기간 국제 금융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국내 금융·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을 논의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연준의 고금리 기조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채권 금리가 상당 폭 상승하고 있는 데다, 국제유가도 높은 수준을 지속하는 등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다”면서 “국내 금융·외환시장도 대외여건 변화에 따라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각별한 경계감을 갖고 국내 가격 변수, 자본 유출입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필요시 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