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연 10개월 머리 맞댄 ‘산업대전환 제언’, 암울한 우리 경제의 미래 신산업 발굴에 도움 될까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지난 1월 ‘제1차 산업대전환 포럼 좌장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사진=산업통상지원부

국내 첨단산업 발전을 통해 우리 경제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자는 경제단체와 산업연구기관의 제언이 나왔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민간·정부·학계·연구소가 한마음 한뜻으로 미래 먹거리 산업을 발굴해야 한다는 게 해당 제언의 주요 골자다.

실제 우리나라는 반도체 산업 이후 미래 경제를 이끌어 갈 신산업이 전무한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2060년 잠재성장률은 역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배적이다. 심지어 현재 우리나라의 기술력 수준도 여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인 데다, 최근엔 중국이 기술 굴기를 내세우며 한국 경제를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신성장 동력 찾기 위한 ‘산업대전환 제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경제계 및 산업연구기관 소속 80여 명의 민간 전문가들과 10개월간 고민한 ‘산업대전환 제언’을 18일 정부에 전달하겠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1월부터 우리 경제가 저성장을 극복하고 우리 산업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 산업대전환 포럼을 구성해 논의의 장을 마련한 바 있다. 이번 산업대전환 제언에는 6대 미션(△투자·금융 지원 △인재 확보 △생산성 혁신 △기업 성장 촉진 △대외전략 △신비즈니스 발굴)이 포함될 예정이다.

아울러 정부가 전액 출자하는 형태의 ‘국가투자지주회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 주도의 글로벌 첨단산업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우리 정부도 전략적·장기적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막대한 투자금이 들어가는 첨단산업과 기업의 자금 사정을 고려해 정부가 공장을 건설하고 기업이 이를 대여해 임대료를 내는 방식의 ‘역 민간투자사업(Reverse-BTL)’ 도입도 논의됐다. 이어 첨단산업에서 정부의 과도한 규제에 따른 피해를 줄이고자 ‘글로벌 스탠다드 규제 준칙주의’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나아가 글로벌 기업이 속한 철강, 가전, 이차전지, 자동차 산업을 대상으로 ‘인공지능 기반 공급망 선도 프로젝트’를 추진함으로써 스마트 공장을 넘어선 개별 기업의 ‘인공지능 팩토리’ 구축을 정부가 주도해줄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인의 영주여건 개선과 신속 입국 지원을 제공하는 ‘우수인재 레드카펫’ 제도와 투자 세액 공제를 국가 기여도에 맞춰 제공하는 ‘성장 촉진형 인센티브’ 제안도 나왔다.

반도체 산업 이후 갈 길 잃은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 산업

대한상의를 비롯한 간사 기관들은 이번 산업대전환 제언 배경에 대해 “우리 경제의 현 상태는 성장을 기대하기는커녕,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선진국 추격형, 중간재·대중국 수출 위주의 성장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젠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위해 본질적인 실력을 키우자는 의미다.

같은 맥락으로, 최근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반도체 산업 이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아날로그 생산시대의 여러 부문에서 경공업, 중공업,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으로 이어지는 혁신을 통해 성장을 꾀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경제의 부가가치 원천이 디지털 중심으로 급속하게 변화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반도체 산업에 얽매인 우리나라가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못해 되레 역성장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 지난 8월 한국경제학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2030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1.68%를 기록한 뒤 2040년엔 0%대(0.97%)로 추락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후 2050년, 2060년 예상 GDP도 각각 0.89%, 0.44%로 더욱 낮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심지어 물가 상승을 일으키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경제 성장률이자, 국가 경제의 기본 실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도 GDP 성장률 못지않게 추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잠재성장률은 2010년대 3.09%에서 2020년대는 1.89%까지 줄어든 뒤 2030년대는 0.69%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2050년에는 -0.03%로 본격적인 역성장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공통 견해다.

여타 선진국보다 기술력 부진한 한국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기술력 수준 또한 여타 선진국에 못 미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특히 지난 2021년 과학기술정부통신부가 11대 분야 120개 중점 과학기술에 대해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과 한국을 비교·분석한 결과, 미국을 100%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한국은 일본, EU를 앞선 분야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기술 격차는 일본은 2년인 반면, 한국은 중국과 함께 3.3년으로 평가됐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기초 과학 분야에서 한·일 간 기술 격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우주·항공·해양 분야(일본 83.5%>한국 68.4%) △기계·제조 분야(일본 90.3%>한국 80.7%) △소재·나노 분야(일본 97.6%> 한국 80.8%) △에너지·자원 분야(일본 91.0%> 한국 80.2%) 등 4개 분야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기초 과학의 기술적 우위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해 경제 전문가 A씨는 “반도체 파운드리를 주 먹거리 사업으로 영위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반도체 제조 핵심 장비들은 물론 각종 주요부품도 일본, 네덜란드를 포함한 여타 선진국에서 대부분 수입해 오고 있다”며 “한국이 공장을 지으면 일본에서 소재, 기계, 부품까지 전부 사 오고 기술비용까지 지불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들어선 정부가 ‘7대 미래 먹거리’로 꼽은 핵심 산업 중 AI·방산·우주항공·에너지바이오 등 다섯 분야의 기술력도 중국에 뒤처졌다는 분석 결과마저 나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래 군사·안보 경쟁력을 책임질 한국의 AI 기술 수준은 중국에 0.5년 뒤졌고, 우주항공 분야의 격차는 3.5년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우리나라가 앞서 있다고 자부했던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도 클라우드·자율주행차·블록체인·빅데이터 등 18대 중점 기술이 2018년 중국에 역전된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 정부는 2015년부터 ‘중국 제조 2025’ 목표를 세우고 첨단 산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우리의 기술력을 넘어서는 분야가 속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은 세계 1위로 껑충 뛰어올랐고, 이에 탄력을 받아 중국 최대 전기차 기업 BYD(비야디)도 이젠 자국 시장을 넘어 유럽과 일본 전기차 시장 진출에 힘쓰고 있는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은 반도체 산업의 한국 의존도를 낮추고 2025년까지 자급률 70%를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같은 중국의 기세에 밀려 한국의 경제 위상도 떨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13년 19.7%로 1위를 기록했으나, 지난 2021년엔 점유율이 0.6%로 추락했다. 또한 지난 28년간 연속 흑자였던 대중 무역 수지도 지난해 5월부터 적자 기조로 전환됐다. 이에 A씨는 “고성장하던 중국 경제에 올라타 호황을 누리던 시절도 이젠 끝났다”며 “가격 경쟁력, 기술력, 품질 측면 모두에서 중국에 따라잡히고 있는 만큼 중국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신성장 동력을 개발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