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팩웨스트 뱅코프 파산 위기 직면, ‘시스템 리스크’ 우려 재점화

사진=팩웨스트 뱅코프 홈페이지

미국에서 또 하나의 지역은행이 무너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LA에 본사를 둔 팩웨스트 뱅코프(PacWest Bancorp)가 회사 매각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3일(현지 시각) 시간 외 거래에서 53% 넘게 주가가 폭락했다. 이날 미 연준이 또 한 번의 기준금리를 인상을 단행한 가운데, 은행권 부실로 촉발될 ‘시스템 리스크’ 우려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불과 2개월여 만에 -76% 가까이 폭락

CNBC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팩웨스트 경영진이 은행 매각을 포함한 전략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CNBC는 “(팩웨스트는) 매각을 포함한 옵션과 장기 비즈니스의 계획을 평가하기 위해 자문 업체를 수소문하고 있다”고 밝히며 팩웨스트 관계자가 실제로 발언한 내용임을 강조했다.

다만 팩웨스트가 공식적으로 매각을 준비 중인 것은 아니다. 블룸버그는 “팩웨스트 뱅코프는 은행을 온전히 매각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지만, 구매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팩웨스트를 매입하는 경우 기존 대출의 부실에 따라 인수자가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다면서 은행을 온전히 매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설명했다.

해당 소식이 전해지고 이어진 야간거래(시간 외 거래)에서 팩웨스트 뱅코프 주가는 53.44% 하락했다. 지난 3월 초 26달러 근처에 머물던 주가가 76%에 가까이 폭락하면서 현재 시가총액은 약 7억7,200만달러로 내려앉았다. 지난 3월 8일 지역은행 파산 사태 시작 이후 불과 2개월여 만이다.

스타트업과 VC 고객 많아, SVB·FRC와 닮은 꼴

팩웨스트 뱅코프는 44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보유한 미국 내 53위 은행(자산 기준)이다. 1999년 설립 이후 캘리포니아주를 중심으로 70여 개 점포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 나스닥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이기도 하다.

이 은행의 전체 예금은 281억 달러에 달하며, 이 가운데 95억 달러는 예금자보호를 받지 못하는 무보험 예금이다. 더 큰 문제는 팩웨스트의 순이익이 올해 적자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팩웨스트는 지난 1분기 실적발표에서 4,950만 달러의 순이익을 냈으나, 올해 1분기에는 11억9,542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전체 예금액 또한 동일 기간 339억3,633만 달러에서 281억8,756만 달러로 20% 가까이 감소했다.

올해 손실이 크게 늘어난 점과 더불어 벤처캐피털(VC)과 스타트업 고객이 많다는 특징으로 인해 실리콘밸리뱅크(SVB)나 퍼스트리퍼블릭뱅크(FRC) 사태와 유사한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로이터에 따르면 팩웨스트의 전체 대출액 중 약 25%는 미국 내 스타트업과 VC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팩웨스트의) 전체 예금액 가운데 무보험 예금액 비중은 약 30%로 높은 수준”이라며 “예금액에 대한 보장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기존 고객들은 예금 인출 더욱 적극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3일(현지시간) 정규장 마감 후 시간 외 거래에서 53% 가까이 폭락한 팩웨스트 뱅코프 주가/출처=구글

통화 긴축 정책의 누적 효과 가시화 되는 중? 되살아나는 시스템 위기에 대한 우려

3일 저녁 팩웨스트의 주가가 폭락하기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은행권 부실로 비롯된 금융 불안에 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은행과 예금은 안전하다고 답변했다. 그는 “신용 여건은 좀 더 긴축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은행권 상황은 개선되고 있다”며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단 태도를 보였다.

미국 재무부도 은행 시스템이 여전히 건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3월 의회 청문회에서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이 단행된 이후 미국 은행 시스템이 “건전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또 지난 2일 개최된 밀컨 콘퍼런스에 참석한 브렌트 매킨토시 재무부 정무직 국장도 “여러 불안 요인에도 미국의 중소 지역은행들의 예금은 안전하다”고 주장하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은행권 불안이나 경제지표 둔화 등의 현상은 그간 통화 긴축 정책의 누적된 효과가 실물경제에서 가시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 은행권 불안이 심화되면서 은행들이 신용을 축소하고 대출기준을 더욱 강화한다면 예상보다 경기침체가 더 빠르게 현실화되고, 나아가 금융 시스템 위기로 번질 우려가 있다”고 평가했다.

월가에서는 SVB와 마찬가지로 스타트업 및 VC 고객이 많았던 팩웨스트의 붕괴가 VC 업계에 또 다른 혼란을 불러올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중소형 은행의 지원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은행들의 건전성 문제를 재차 부각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관련한 VC와 스타트업들의 자금조달이 개선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장의 우려가 미 경제 전반을 뒤흔들 위기론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이번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