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세법 개정안에 밸류업 공시 참여율도 ‘저조’, 중장기적인 정책 동력 필요할 듯

주주친화 경영 의지 내보인 기업들, 정작 밸류업 자율공시는 '외면'
경기 침체 등 외부 요인 불안정, 세제 혜택마저 좌초 위기
중장기적 추진력 필요성 증대, 단기적 지표 두고 부화뇌동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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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정작 이 정책의 핵심인 밸류업 자율공시 참여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 요인이 불안정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 탓에 밸류업 공시를 서두르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유인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가겠단 입장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회의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정부의 계획안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핵심 밸류업 정책이 빠져 있어서다.

밸류업 계획 자율공시 참여율 0.3%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기준 국내 상장회사 수는 유가증권시장 844개사, 코스닥시장 1,743개사 등 총 2,587개사다. 이 중 밸류업 계획을 자율공시한 건 키움증권, 에프앤가이드, 콜마홀딩스, 메리츠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신한지주, DB하이텍 등 7곳이다. 당국이 밸류업 프로그램 자율공시를 시작한 지 세 달이 흘렀음에도 참여율이 0.3%에 그친 것이다. 그나마 자율공시를 하겠다고 예고(안내공시)한 상장사 8곳을 합쳐도 참여율은 0.6% 수준에 불과했다.

기업들이 주주친화 경영 의지가 없는 건 아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2조2,000억원으로 1조8,000억원을 기록한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했다. 자사주 소각 역시 8월 현재까지 9조원에 근접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자사주 소각 규모가 약 2조원에 불과했음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 발행 주식 수가 줄면서 주당 가치는 올라간다.

이런 가운데 자율공시만 유난히 외면받는 건, 미국발 경기 침체 등 외부 요인이 불안정해 밸류업 공시를 서두르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확산해서다. 이에 기업들은 세제 혜택이 담긴 세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만 바라보고 있는 모양새다. 앞서 지난달 25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년 세법 개정안’엔 밸류업 자율공시를 이행하고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환원을 늘린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의 법인세를 감면하는 안이 포함됐다. 직전 3년 평균 대비 주주환원 증가액 중 5% 초과분에 대해 5%의 세액공제가 적용된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밸류업 자율공시 참여율이 크게 늘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밸류업 정책의 성패를 결정한 세제 혜택마저 거대 야당에 가로막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단 점이다. 세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열쇠를 쥔 더불어민주당은 이 개정안에 부정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기업 내부의 투명성을 높여 ‘1인 지배’라는 후진적인 지배구조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이런 현실은 덮어둔 채 대주주 특혜 감세를 밸류업 프로젝트로 내밀었다”며 “주주환원 촉진세제라며 내놓은 법인세·배당소득세 감면 등의 세법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법안을 심의해야 할 기획재정위원회의 조세소위원회도 아직 구성되지 않은 상태다. 법안이 국회에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살펴볼 수도 없는 상태라는 뜻이다. 조세소위위원장 자리를 두고 여야의 치열한 다툼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조세소위가 정부에서 제출하는 새법 개정안 등을 일차적으로 심의해 영향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결국 여야 간 ‘기싸움’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마저 눌리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 발표 등 유인책 마련 나섰지만

정부는 우선 유인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보겠단 입장이다. 한국거래소는 오는 9월 중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수익성, 자본효율성, 주주환원 성과 등을 토대로 편입 종목을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4분기엔 이와 연계한 밸류업 상장지수펀드(ETF)도 출시한다. 통상 새 지수와 이를 추종하는 ETF가 등장하면 기관·외국인 자금이 유입돼 편입 종목 주가는 상승 탄력을 받는다.

이를 위해 앞서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 등 자율공시 지침을 마련하기도 했다. 가이드라인은 상장사들이 거래소의 상장공시시스템을 통해 3∼5년 단위 중장기 목표치와 사업전략 등을 담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연 1회 등 주기적으로 공시하도록 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밸류업 공시는 기업 개요, 현황 진단, 목표 설정, 계획 수립, 이행 평가, 소통 등으로 이뤄진다. 핵심 지표로는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수익비율(PER)·총주주수익률(TSR) 등 재무지표와 더불어 지배구조 등 비재무지표를 함께 활용할 수도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 지배구조 관련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도록 창구를 마련한 것이다.

이외에도 한국거래소는 외국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마케팅, 공동 IR(기업 설명회)를 추진하는 등 밸류업 공시 지원을 강화했다. 공시책임자·담당자를 대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교육 및 찾아가는 지역설명회를 개최하고 중소 상장기업에 일대일 맞춤형 컨설팅 및 공시 영문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사회의 적극적인 참여 독려를 위해 상장기업 이사(사내·사외이사) 대상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안내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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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방책 마련해야, 밸류업은 중장기 과제”

다만 업계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지원 방안에 다소 회의적인 반응이다. 개별 기업의 밸류업 계획 공시를 독려하는 것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실질적인 밸류업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밸류업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전폭적이진 않은 상황”이라며 “(이런 가운데) 정부의 세법 개정안에 상법 개정과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핵심 밸류업 내용이 빠진 건 뼈아픈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우려는 이미 무료 공시 컨설팅 신청률 저조 등을 통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업가치 제고 계획 수립을 위한 컨설팅에 신청한 상장사는 총 52개사에 불과했다. 당초 목표치였단 100개사의 절반에 그치는 수준이다. 특히 코스피 기업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시장별로 컨설팅에 신청한 기업은 코스피 상장사가 8개사, 코스닥에서 44개사였다. 코스피 상장사가 927개사, 코스닥 상장사가 1,630개사임을 고려하면 컨설팅에 참여한 기업이 전체의 0.8%, 2%에 그쳤다는 얘기다.

이에 시장 관계자들은 일관되고 꾸준한 추진력을 유지하는 것만이 밸류업 프로그램 성공의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실질적인 기업 밸류업을 이루기 위해선 제도적 지원과 인재 양성 등 중장기적인 과제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시선에서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밑바탕이 된 일본이 중장기적 밸류업 정책으로 성공적인 가치 제고를 이뤄낸 바 있단 점도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최근 발간한 ‘일본 자본시장 개혁의 성과 동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일본은 지난 10여 년 동안 아베노믹스 정책, 기업 지배구조 개혁, 거래소 시장 개편 등을 한결같이 추진해 왔다”고 설명했다. 결국 당장의 자율공시 참여율 등 단기적 지표만 보고 부화뇌동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