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사업장도 다시 들여다본다” 금융 당국, ‘부동산 PF 연착륙’ 압박 강화

금융당국, '부동산 PF 사업장' 내달 말 사업성 재평가
6월 평가서 ‘정상·보통’ 등급 만기연장 진행 사업장 대상
경기 침체 및 건설사 부실 우려 확대, 예외 없이 보수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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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에 대한 추가 사업성 평가를 주문했다. 경제 불확실성이 심화하고 있는 만큼 상반기 사업성 평가에서 정상 등급을 받은 PF 사업장도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지난 6월에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등을 고려, 부동산 개발업계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주는 방향으로 평가했지만 이번에는 대주단의 평가도 보수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정상 등급 PF 사업장, 9월 말 사업성 재평가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각 금융사는 오는 9월 말께 3분기 PF 사업장 사업성 평가에 착수할 예정이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6월 PF 사업성평가 기준 최종안을 마련해 각 금융사에 전달했다. 당시 금감원은 새로운 기준에 맞춰 분기별로 PF 사업장의 사업성과 건전성을 분류하고 사후 관리를 진행하라고 주문했다.

PF 사업성은 양호·보통·유의·부실 우려 등 4단계로 분류된다. 이 중 ‘유의’ 또는 ‘부실 우려’에 해당하는 사업장의 재구조화·정리 계획을 금융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금융사들은 이날까지 금감원에 PF 사업장 재구조화·정리 계획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이 지난달 계획 제출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정리 계획 이행을 완료하라는 지침을 내린 바 있는 만큼, 이날 사업장의 재구조화·정리 계획 제출을 완료했다면, 내년 2월 9일까지는 구조조정을 완료해야 한다.

3분기 사업성 평가에서는 앞서 양호 또는 보통 등급을 받아 구조조정에서 제외된 사업장이 재평가를 받게 된다. 이전 평가에서 정상 등급을 받았더라도 공사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분양률이 답보 상태에 있다면 유의나 부실 등급을 받을 수도 있어 안심하긴 이르단 의미다. 특히 이번 평가에선 향후 경기 침체 가능성까지 반영하기로 했다. 이달 초 미국 고용지표 부진을 도화선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하고 있어서다. 당국은 이같은 불확실성까지 반영한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을 솎아내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유의·부실 우려 등급을 받은 사업장 가운데서도 PF 대출 원리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한 경우 즉시 경·공매에 착수해야 한다. 기존에는 6개월 이상 연체된 경우 경·공매 대상이었다. 또 공매 진행 기간은 1개월 이내로 하고, 유찰될 경우 1개월 이내에 다시 공매를 진행해야 한다. 기존에는 공매 유찰 때 재공매까지 3개월 간격을 둘 수 있었으나 2개월 축소된 것이다.

3분기 평가에서는 예상 공정률과 분양률 진척 상황 등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지난 3개월 동안 얼마나 분양률을 끌어올렸는지, 예상 공정률을 맞추고 있는지 등을 평가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3·4분기의 만기연장 여부도 갈릴 전망이다. 최근 PF 사업장의 만기연장은 대부분 3~6개월 단위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3개월 단위로 만기연장된 PF사업장들은 다시금 긴장해야 할 상황이다.

또한 대주단들의 보수적인 평가도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진 만큼 제2금융권의 리스크 관리가 강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제2금융권의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어 최대한 부실 PF사업장을 솎아내고 경·공매와 청산을 통해 제2금융권으로의 부실 전이를 막자는 취지다. 저축은행 부동산 PF 연체율은 지난해 3월 말 기준 4.07%에서 올해 3월 말 11.26%로 1년 새 무려 7.19%P 급등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말 6.96%에서 3개월 만에 11.26%로 4.30%P나 뛰어오르며 부실 우려가 커졌다. 이에 따라 평가에서 유의와 부실우려 등급을 받은 사업장은 경·공매 등을 진행하고 2~3회 이상 유찰될 경우 손실상각 등 ‘청산’ 단계로 이어진다. 청산 단계에서는 최대한 대주단의 손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PF사업장의 부실채권을 매각하거나 자산을 분리매각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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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대상 사업장 지속 증가 추세

금융당국의 이번 재평가 방침은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부실 사업장이 급증하면서 경·공매 대상이 예상보다 늘어날 수 있단 우려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당초 당국은 전체 부동산 PF 사업장 5,000여 곳 중 90% 이상이 정상 사업장으로, 2~3% 사업장만 경·공매로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대다수의 사업장은 지금도 정상 사업장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위험’ 등급을 받은 건설사가 3월 기준 1,000곳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HUG 상시 모니터링 현황을 보면 공사 보증거래 업체 가운데 위험성이 있는 관찰·주의·경보 판정을 받은 업체는 모두 986개다. 이는 지난해 3월 870개보다 116개(13.3%) 많고 2022년 3월(679개)과 비교하면 무려 307개(45.2%)나 증가한 규모다.

특히 부실 위험이 가장 높은 ‘경보’로 분류된 업체는 86개(대기업 4개, 중기업 30개, 소기업 52개)로 2년 전(35개)보다 2.4배 늘었다. ‘주의’ 단계 업체도 250개(대기업 12개, 중기업 82개, 소기업 156개)로 2년 전 137개의 1.8배로 늘었고, ‘관찰’ 단계 역시 650개(대기업 119개, 중기업 161개, 소기업 370개)로 같은 기간(542개) 1.2배로 증가했다. 정상으로 보기 힘든 위험 업체가 지속적으로 불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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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건설·신세계건설, 부동산 침체에 유동성 위기까지

실제로 부동산 PF 사업장들은 2년여에 걸친 시장 침체로 대부분 부실 위기에 놓여 있는 상태다. 2020년 전후로 부동산 시장의 호황이 계속되자 자본만 투입해도 금융사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부동산 PF를 통해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2022년 이후 △금리 인상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 △레고랜드 사태발 유동성 공급 경색 △물가 인상으로 인한 공사비 급등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사업 리스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는 중소형 건설사에만 국한된 양상이 아니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대형 건설사들도 부동산 PF 리스크 부담이 상당한 모습이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6월 시공능력평가 상위 50대 건설사 중 39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부동산 PF 차입금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전체 대출 잔액은 46조3,633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6조1,479억원(15.3%) 늘어났다.

같은 기간 자본총계 대비 부동산 PF 차입금 비중이 100%를 넘은 건설사도 9곳으로 2022년 말보다 2곳이 더 추가됐다. 이 중 코오롱글로벌(351.7%), 두산건설(300.8%), SGC E&C(289.6%), 신세계건설(208.4%), 롯데건설(204%) 등 6곳은 부동산 PF 차입금 비중이 200%를 넘었다. 규모만 살펴보면 지난해 말 기준 대출 잔액은 현대건설이 9조9,067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롯데건설 5조3,891억원, GS건설 3조3,015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올해 만기 도래 차입금도 현대건설이 7조2,79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롯데건설(4조5,351억원), GS건설(2조393억원)이 뒤를 이었다.

특히 미분양과 부동산 PF 문제로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신세계건설은 지난해 태영건설에서 시작된 부동산 PF 위기와 건설 경기 침체 이후 주택공급이 많은 대구에서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면서 재무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지난해 미수금은 전년 대비 121% 증가한 137억원에 달했고 같은 기간 미청구공사액도 23억원 넘게 늘면서 부도설까지 돌았다. 이에 모기업인 이마트의 지원을 등에 업고 급한 불은 껐지만 PF 부실이 계열사 및 모기업에도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는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롯데건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롯데건설은 지난 2월 금융사 및 롯데 그룹사와 함께 2조3,000억원의 PF 펀드를 조성, 총 5조4,000억원의 PF 우발채무 중 2조3,000억원을 만기로부터 3년 연장했다. 또 지난해 호텔롯데와 롯데물산 등 롯데그룹 일부 계열사들이 자금보충 약정을 통해 롯데건설을 지원하며 유동성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그룹 계열사가 건설 기업 살리기에 동원되면서 릴레이 부진에 빠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더욱이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22년 롯데건설은 강원중도개발공사가 기업회생신청을 했던 레고랜드 사태 당시 5,000억원을 단기차입을 한 바 있다. 한 달 뒤에는 롯데케미칼과 호텔롯데 등 주주사를 대상으로 2,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했고, 은행권 대출과 담보 차입 등으로 1조원 이상의 자금조달도 추진했다. 국내 5대 그룹사인 롯데그룹이 뒤에서 지원하는 건설사가 유동성 위기에 수차례 긴급 자금 수혈을 했던 상황임을 고려하면 PF발 건설사들의 위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반기 전망도 ‘먹구름’

이렇듯 건설사들은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 속에서 △공사비·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미분양 심화 △고금리로 인한 자금조달 어려움 등 3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분양은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6월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4,037가구로 전월(7만2,129가구)보다 2.6% 증가하며 7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사업 주체가 지자체에 보고하지 않거나 축소 등 거짓으로 신고해도 보고를 강제하거나 검증할 방법이 없는 만큼 업계에선 미분양 주택이 이미 10만 가구를 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하반기에도 경영 여건이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신규 수주 감소 및 건설투자 위축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건설 수주는 감소세가 지속돼 전년 대비 10.4% 감소한 170조2,000억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건설투자도 전년 대비 1.3% 줄어 302조1,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의 PF 사업장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경우 경영난에 처하는 건설사들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건설업체들은 대부분의 PF 사업장이 연대보증으로 얽혀 있는 만큼 일부 사업장이 부실로 판명 나면 연쇄적으로 다른 사업장까지 악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높아 우려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