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 꺾인 ‘회사채 시장’, 9월 기점으로 소강 상태 전망

1~2월 SK·LG '역대급 물량'에 회사채 활황
8월 들어 선행지표 '여전채 스프레드' 확대
불확실성 증대에 기업 자금 조달 부담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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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역대급 물량이 몰리면서 호황을 누렸던 회사채 시장이 다음 달부터는 주춤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이달 들어 회사채 수급 여건을 가늠하는 여신전문금융회사 발행 회사채(여전채)와 국고채 간 금리 격차(스프레드)가 조금씩 벌어지는 가운데 하반기 공사채 공급 확대로 인한 구축효과 및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증대 등이 감지되고 있어서다.

여전채 스프레드 오름세, 통상 한 달 후 회사채 영향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8일 기타 금융채(여전채)와 국고채 스프레드(3년물, AA- 기준)는 55.9bp(1bp=0.01%P)를 기록했다. 연초 100bp까지 벌어졌던 여전채 스프레드는 지난달 19일 48.4bp까지 하락했다가 최근 다시 오르는 추세다. 여전채 스프레드 확대는 캐피탈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가 회사채를 발행할 때 자금 조달 부담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스프레드 확대 요인으로 최근 국고채 금리가 급락한 점과 올해 상반기 채권 투자가 급증하면서 스프레드가 빠르게 줄어든 것에 대한 시장 내 조정 흐름이 생겨난 영향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여전채 섹터의 움직임이 일반 회사채인 크레딧 시장까지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통상 여전채 스프레드가 확대되고 약 한 달 후에 회사채 스프레드도 벌어지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휴가철과 반기 보고서 제출이 마무리되는 9월에 주목하고 있다. 매달 발행되는 여전채는 수급 여건을 민감하게 반영하는데 7~8월까지는 회사채 스프레드가 수급적 우위로 벌어지지 않았지만, 9월에는 발행량이 늘면서 스프레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회사채 발행을 서두르는 분위기가 더해질 경우 발행량이 늘면서 스프레드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분기 말과 추석이 겹치는 9월은 전통적으로 매수 여력이 급감해 자금 시장이 타이트해지는 데다 당분간 거시 경제 변수의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해 올해 강세를 보였던 크레딧 시장의 투자 심리가 9월을 기점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신용도가 높은 공사채 발행도 회사채 스프레드를 더 키우는 요소다. 통상 신용도가 높은 공사채 발행은 다른 회사채에 대한 수요를 빨아들이는 구축효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3분기 한국자산관리공사는 9,0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하반기, 석유화학·건설·유통업종 등 회사채 약세 전망

이러한 흐름 속에 한국은행도 올해 상반기 회사채 스프레드가 이미 상당 수준 하락해서 회사채 시장의 추가 개선은 제약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공공주택과 건설투자 관련 정책 수요로 공사채를 중심으로 초우량채 순발행이 확대되고 은행도 CR(유동성커버리지비율) 규제, 정책금융 지원 등으로 자금조달 필요성이 커져 회사채의 금리가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채권업계는 국내외 통화정책 전환(피벗) 기대로 하반기 회사채 시장에서는 개별 기업과 업종에 따라 차별화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회사채 약세가 불가피한 실적 저하 우려 업종으로는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석유화학 업종과 △건설 경기 부진, 유동성 리스크, 수익성 악화, 신규 부실채권(NPL) 우려까지 겹친 건설업종·부동산신탁업종 △중국 이커머스와의 경쟁이 치열한 유통업종 등이 꼽힌다.

반면 실적 개선 기대 업종으로는 최근 폴란드 특수를 누리며 수주 잔고가 대폭 늘어난 방산업종이 거론된다. 조선업종의 경우 올해부터 본격적인 수익성 개선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자동차 업종은 코로나 시기에 누적된 대기 수요를 바탕으로 생산 증가가 매출 증가로 원활히 이어지고 있다. 이어 반도체 공급난이 풀리며 고트림, 고사양 중심으로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수익성 개선세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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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 스프레드 추이, 주: 국고채(3년) 금리 대비/출처=한국은행

2분기 회사채 시장 소강상태, 타깃으로 NPL에 관심

회사채 시장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중위권 증권사를 중심으로 NPL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부실채권은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채권으로, NPL 투자사는 금융사 등으로부터 회수가 어려워진 NPL을 싸게 매입해 구조조정 뒤 되파는 방식 등으로 이익을 실현한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 침체, 금융당국의 PF 구조조정, 제2금융권의 NPL 공동 매각 등의 영향으로 NPL 물량이 급증하면서 NPL 투자사의 자금 조달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 NPL 투자사들은 올해 들어 회사채 발행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자산관리(유암코)는 올해 1월 4,000억원에 이어 지난 6월에도 5,000억원 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했다. 하나금융 산하의 하나F&I도 지난 2월 2,970억원에 이어 6월 4,000억원을 회사채 시장에서 조달했다. 키움증권 산하 키움F&I는 5월에 1,000억원, 대신증권 산하 대신F&I가 3월에 1,44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NPL 물량에 대비해 이를 사들일 실탄을 미리 마련하는 차원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NPL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NPL 시장의 거래액은 전년 대비 51% 증가한 44조원을 기록했다. 올해 주요 NPL 공급자인 국내 시중은행의 NPL 매각 물량은 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반기에만 유암코, 하나은행, 우리은행, 키움증권, 대신증권 등 5개 회사가 4조원의 회사채를 조달할 것으로 관측되면서다. 업계 관계자는 “NPL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NPL 투자사들도 4%대 중반 금리로 회사채 조달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 관련 회사채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