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헐값’ 철강 공세에 무너진 칠레 CAP, 국내 철강 업계도 실적 하락세

'밀어내기식' 철강 수출 이어가는 중국, 칠레 제철소 결국 폐업 수순
중국서도 규제책 내놨지만, 중국발 저가 철강 공세는 여전
국내 철강 업계에도 타격 불가피, 포스코 영업이익 '반토막'
china steel dumping FE 20240808

중국산 철강의 헐값 공세에 칠레 유일의 제철소가 폐업 수순을 밟게 됐다. 반덤핑 관세 부과 등 정부 차원의 노력에도 중국발 철강 공급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국내 철강 업계도 중국의 저가 공세에 실적 하락을 면치 못했다. 철강 업계 입장에선 수익성을 끌어올릴 만한 방책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업계 전반이 침체하고 있는 탓에 현상 유지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칠레 최대 제철소 운영 무기한 중단

7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칠레 철강 제품 회사 CAP는 칠레 중부 비오비오에 위치한 칠레 최대 규모의 후아치파토 제철소 운영을 오는 9월까지 무기한 중단한다고 밝혔다. CAP는 지난 2년 동안 중국산 제품 유입으로 5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봤다고도 전했다.

최근 중국은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철강 소비력이 부쩍 줄었다. 이에 중국은 자국 내에서 소화되지 못한 철강을 수출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칠레 등 중남미 시장에 헐값의 중국산 철강이 대거 유입됐다. 라틴아메리카 철강협회 알라세로에 따르면 지난해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중국산 철강을 총 1,000만 톤 수입했다. 이는 전년 대비 44%나 증가한 수준이다.

칠레 정부의 대응 수단은 반덤핑 관세였다. 반덤핑은 정상 가격과 덤핑 가격(채산에 맞지 않는 싼 가격)의 차액만큼을 관세로 부과해 수입을 억제함으로써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무역규제 조치다. 칠레 정부는 지난 2016년부터 중국산 철강 제품에 여섯 차례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지난 3월 중국산 철근에 최대 24.9%, 단조용 강구(공 형태로 둥글게 말아놓은 강철)에 최대 33.5%의 잠정 관세를 매긴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반덤핑 관세 부과에도 중국산 철강의 공세는 막을 수 없었다. CAP 관계자는 “시장 상황으로 인해 관세에도 불구하고 강철 가격을 인상할 수 없었다”며 “현재 상태로 칠레에서 제철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china Export cheep FE 20240808

중국발 철강 과잉 생산, 중국 정부도 못 막았다

문제는 중국 정부마저 철강 과잉 생산 사태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단 점이다. 앞서 지난 5월 말 중국 국무원은 자국 철강 기업의 생산 능력 및 생산량에 전반적인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기계 가공, 주조, 합금철 생산 등을 명목으로 하는 신규 철강 생산 능력 확대를 엄격히 금지하고 저품질 봉형강류 생산설비 재가동을 규제하는 식이다.

신규 건설 중인 제철소들이 에너지 효율 기준과 환경 성과 수준에서 모두 ‘A’ 등급을 받아야 영업이 가능하도록 규제하겠다고도 밝혔다. 규제 시행 이후 첫 3년 동안 에너지 절약 및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이후 2년 동안 신규 철강 생산 능력 확대를 전면 금지하는 게 규제책의 골자다.

다만 규제책 발표 이후에도 중국의 밀어내기식 철강 수출은 여전히 이어졌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입 철강재는 모두 788만3,000t인데, 이 중 중국산만 약 60%인 472만5,000t에 달했다. 전년 대비 수입량이 7만6,000t 증가한 수준이다. 가격도 여전히 저렴한 수준이다. 중국산 철강재의 상반기 평균 단가는 t당 863달러로 전 세계 평균인 977달러에 못 미친다. 교량 건설이나 선박 건조에 사용되는 후판(두께 6㎜ 이상의 철판) 역시 국산이 t당 90만원 중반일 때 중국산은 70만원대였다. 중국 정부가 자국 내 철강 업계의 고삐를 제대로 쥐지 못하고 있단 방증이다.

국내서도 철강 기업 고난사 이어져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철강 기업들의 실적도 하락을 면치 못하는 모양새다. 포스코홀딩스의 철강 자회사 포스코는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4,18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3% 감소했고, 현대제철은 980억원으로 전년 대비 78.9% 줄었다. 동국제강 역시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23% 줄어 405억원에 그쳤다. 건설 경기 침체로 수요 자체가 줄어든 상황에서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이 직격타를 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철강 공급 가격도 하락했다. 상·하반기 매년 두 번씩 갖는 조선업 후판 공급가 협상에서 조선 업계와 철강 업계가 하반기 공급 가격을 90만원 초반대까지 낮추기로 협상하면서다. 표면적인 이유는 철광석 가격 하락이지만, 실제론 중국산 덤핑에 대응하기 위한 고육지책에 가깝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내 철강 기업의 고난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 조선 업계가 중국산 철강 제품의 수입 확대를 시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앞선 지난 2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중국에서 많은 덤핑이 일어나 자사에서도 중국산 조선용 후판 비중을 20%에서 25% 이상 늘려가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용 후판은 철강사 후판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제품 중 하나다. 철강 업계 입장에선 수익성 저하를 반전시킬 만한 여지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