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 ‘역대급 주가 폭락’에 일주일 만에 태세 전환 “당분간 금리 인상 없을 것”

지난달 31일, 일본은행 금리 0.25%p 인상
금리 인상 당시 연내 추가 인상 시사하기도
강력한 매파 메시지에 엔저에서 엔고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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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Bank of Japan, BOJ)이 금리 인상 신중론으로 선회했다. 전격적인 긴축을 단행하며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지 1주일 만이다. 지난 6월 금리 인상 결정 당시 일본은행이 국채 매입량 감소 등 매파적 기조를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가속화됐고 이로 인해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은행의 판단 미스를 지적하는 국내외 비판에 일본은행이 한발 물러서자 최근 반등세를 보이던 엔화 가치가 다시 하락했고, 일본 증시도 장중 3% 가까이 오르며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일본은행, ‘비둘기파’ 발언에 아시아 증시 훈풍

7일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홋카이도에서 열린 금융경제간담회 강연에 참석한 우치다 신이치 일본은행 부총재는 이어 진행된 기자간담회를 통해 “금융·자본시장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추가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현재 금리가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실질적으로 매우 낮다”면서도 “일본은행은 완화적인 금융 조건을 유지해 경제를 계속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은행이 지난달 31일 기준금리를 연 0~0.1%에서 0.25%로 인상하고 아시아 증시가 폭락 사태를 겪은 후 나온 첫 공식 발언이다. 일본은행발 ‘비둘기파’ 발언에 아시아 증시에는 곧장 훈풍이 불었다. 닛케이225가 전일 대비 1.19%, 코스피는 1.83% 상승했다. 대만 자취엔은 TSMC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효과까지 더해져 3.87% 급등했다. 이날 코스피에서는 외국인이 206억원 순매도해 전일 1,677억원 순매도에서 매도 규모를 크게 줄였고 개인은 2,952억원 순매수로 지수를 끌어올렸다.

외환시장도 회복세를 보였다.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값은 이날 오전 144엔대 중반에서 거래되다가 우치다 부총재 발언 이후 약세로 돌아선 뒤 이날 오후 3시 146.95엔에 거래됐다. 지난 5일 엔-원 재정환율은 100엔당 965.63원으로 지난해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지만, 이날 우치다 부총재의 발언 이후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며 엔화당 원화값은 전일 950원에서 937원 수준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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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금리 인상에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속화

우치다 부총재의 발언 이후 시장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일본의 금리 변동과 맞물려 변동성 장세가 지속될 것이란 투자자의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금리 인상 당시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경제 및 인플레이션 데이터가 예상과 일치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0.5%를 금리 인상에 벽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며 “연내 추가 금리 인상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추가 금리 인상의 가능성을 시사하며 매파적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직후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한 달 전만 해도 달러당 162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140엔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지난 5일 닛케이평균은 12.4% 하락하여 역대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금융시장 안팎에서는 지난 5일 주요국 증시가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한 ‘블랙 먼데이’의 배경 중 하나로 ‘엔화’를 꼽았다. 금리 인상으로 엔화 가치가 높아진 상황에서 증시가 개장하자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글로벌 증시 하락세가 본격화했다는 분석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싼 엔화를 빌려 더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고금리 통화나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만 세계적으로 20조 달러(약 2경6,700조원)로 추산된다. 그동안 일본이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일본의 완화적 통화정책에 따라 제로 금리를 장기화하면서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초약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이 변곡점이 됐다. 당시 일본은행은 금리 인상과 함께 국채 매입량을 점진적으로 절반까지 감축하는 ‘양적 긴축’까지 단행했고, 이는 엔화 강세를 가속했다.

문제는 엔화의 가치가 오르면 엔 캐리 트레이드의 수익률이 감소할 수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더욱이 엔 캐리 트레이드의 규모가 역대 최대인 데다 그 대상도 헤지펀드, 패밀리 오피스, 민간 자본, 일본 기업 등 매우 폭넓고 다양했지만 이에 대해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실제로 그동안 세계 주요국 가운데 제로 금리를 유지해 온 일본이 거의 유일하게 공짜로 돈을 빌려줬기 때문에 엔화 대출을 받아 미국의 국채와 부동산, 미국·대만의 기술주, 멕시코 페소화 등 신흥시장에 투자한 사례가 많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에 따른 엔고 흐름에 더 이상 엔화를 싸게 빌릴 수 없게 되면서 시장에서는 해외 자산을 처분하고 엔화를 갚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고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자의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일주일간 주요국 증시에서 빠져나간 청산 자금이 2,0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증시 폭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8년에 엔 캐리 자금 이탈의 여파로 코스피의 하락 폭이 41.3%에 달했다.

금융시장 요동치자 일본은행의 ‘판단 미스’ 지적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일본 안팎에서 일본은행의 ‘판단 미스’와 갈지자 행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지난 5일 블룸버그통신은 “글로벌 자산 폭락 사태를 두고 섣불리 기준금리를 인상한 일본은행의 책임론이 부상하고 있다”며 “추가 금리 인상을 시사했던 기존 정책 기조에서 한 발 물러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라쿠텐 증권도 “일본은행은 경제 지표와 시장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며 “지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했다는 것은 통계자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매파적 기조가 시장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다. 엔화 약세에 베팅하고 기술주는 매수하는 기조를 유지해 온 헤지펀드들이 엔화가 강세를 보이자 기술주를 처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량 자체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2~3년간 엔 캐리 트레이드의 자금 흐름이 많이 늘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최근의 금융시장 변동은 엔 캐리 트레이드의 직접적 청산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엔달러 환율과 연동된 추종형 펀드 자금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관건은 앞으로의 엔화 추이다. 미국이 추가적인 금리 인하에 나서거나 일본이 금리를 인상하면 미·일 금리차가 축소돼 ‘엔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엔고’가 되면 엔화와 연계된 자금의 이탈이 일어나면서 주요국 증시에서 매도세가 확대되고 매수세가 급감해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에 대해 FT는 “헤지펀드에 이어 다른 투자자도 처분에 나서면 더 많은 거래가 청산될 수 있다”며 “여기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오는 9월 빅스텝에 나설 경우 엔화 강세로 이어져 청산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