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리 내려야 할 타이밍을 놓치게 만든 부동산 정책 실패

한은, 7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 필요 있지만 부동산 거품 우려에 따른 불확실성 언급
부동산 관계자들, 정부 정책 실패로 일부 지역 부동산에만 거품 생기는 중 지적
건설사들 수익성 고려없이 단순히 규제 완화에만 초점 맞춘 탓, 수익성 높은 지역에만 공급 이뤄져
공급 축소에 신규 분양 물량에만 수요 몰리는 시장 왜곡 해결해야 금리 인하 가능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하 계획을 늦추기로 결정하면서 8월 들어 본격적으로 미국 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간 생성형AI 개발 등으로 투자금을 끌어갔던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빠지는데다, 7월 실업률이 예상치 4.1%보다 높은 4.3%를 기록하면서 경기 침체가 이미 시작됐다는 말도 나올 정도다. 일각에서는 9월로 금리 인하를 늦추는 것이 정책 실수라는 평가도 나오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7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금리 인하를 결정했어야 하는 시점에 부동산 거품 우려로 실기(失期)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코로나-19에 이어 장기간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소상공인들이 이미 생존의 기로를 넘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는데다, 주요 건설사들마저 위기설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부동산PF를 넘기 위한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이 되려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한 금리 인하를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발목을 잡았다는 평들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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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양극화, 원인은 서울·경기 지역 공급 부족

부동산 전문가들은 최근 부동산 시장의 주요 키워드로 ‘탈 동조화’ 혹은 ‘양극화’를 지적한다. 부동산 시장이 전국에서 고르게 상승, 하락을 반복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 들어서는 서울 및 경기 일부 지역에만 수요가 몰리고 그 외 지역에서는 대규모 미분양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원의 실거래 가격 조사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각각 3.1%, 1.8% 상승했다. 지난해 내내 서울 10%, 수도권 6.6%의 상승세를 보였으나, 지방은 0.3% 상승에 그쳤다. 서울도 외곽지에서는 경매 낙찰가율이 70~80% 근처를 오가는 반면, 용산구, 성동구 등에서는 100%를 넘기고 있어 실질적으로 서울 주요 지역의 체감 아파트 가격은 10% 이상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관게자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양극화가 극심하게 된 주 원인으로 공급 부족을 지적한다. 서울 시내에서 상대적으로 낙후 지역으로 평가받는 금·관·구, 노·도·강 지역에서도 계속해서 신규 아파트 물량 공급이 이어졌다면 베드 타운이 형성되는 것을 넘어 인근 지역의 주거 환경을 바꾸는 효과를 내면서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 강서구의 마곡 지역 일대도 LG사이언스 파크 등의 주요 대기업 입주와 더불어 15단지 이상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지난 2015년부터 2018년 사이 대세 상승기를 겪은 바 있다.

최근 들어 서울 강남 일대를 비롯한 ‘상급지’에만 수요가 몰리는 것은 공급 물량이 줄어든 상태에서 가격 방어 확률이 높은 곳, 기존 주거 환경을 그대로 이어 받을 수 있는 곳에 대한 시장 수요만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7월 신규 발주 물량 감소로 2025년에 서울시내 전체에 실질적인 신규 아파트 공급 물량이 3만5천세대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2023년 대비 물량 감소를 지적받는 2024년 중에도 월 3만 세대의 신규 분양이 이어지고 있는 것에 비해 충격적일만큼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에 닥친 것이다.

부동산 살리려 쓴 정책이 되려 부동산 시장을 죽인다?

부동산 관계자들은 부동산PF로 인한 위기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정부의 각종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이 되려 서울·경기 지역 공급 부족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관련 규제를 풀기만 했지, 시장의 공급 활성화를 위한 지원이 전혀 없었던 탓에 수익성이 뛰어난 일부 지역에만 지원 효과가 났고, 그 외 지역은 규제 완화의 이득을 사실상 보지 못했다는 논리다.

전문가들이 꼽는 공급 활성화 정책의 핵심은 과다하게 치솟한 건설 비용 축소를 위한 비건설 부분 정책이다. 대외 변수인 고금리, 고유가, 고 원자재 가격 등은 정부도 제어가 불가능한만큼 건설사들이 수익성 악화를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노동력 공급 감소에 따른 건설 비용 상승 부분만큼은 정부 차원에서 대응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건설 현장이 사실상 불법체류 인력들을 채용해야 할 만큼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추가 인력 확보를 위해 건설 현장에 배정될 수 있도록 현재의 고용 허가제를 확대 개편했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비용 문제로 인한 수익성에 대한 고민이 큰 건설사들에게 수익성 개선책 대신 건설 규제만 풀어줬기 때문에 공급 불균형이 야기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금리 내리기 위한 부동산 정책 공조 필요

한국은행은 지난 7월 금통위의 금리 동결을 발표하면서 국내 내수 침체에 대한 대응으로 금리 인하가 유효한 정책이 될 수 있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금리 인하시 야기될 부동산 폭등에 대한 우려가 큰 탓에 금리 인하를 결정할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정부는 사실상의 관치 금융을 통해 대출 규제를 통한 부동산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지난 7월에만 가계대출 잔액이 7조2천억이나 늘었다. 39개월 만에 최대치다. 대출 문턱을 높여도 가계 대출 증가세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꺾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과거 2008년~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탈출하던 2012년, 이명박 정권은 대규모 토지, 미분양 물량 매입 정책을 통해 지방은 미분양 물량 해소, 수도권은 대규모 아파트 공급 전략으로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일궈냈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권이 2013년 이후 재정 안정화 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이명박 정권에서 구축한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꼽는다. 최근 가계 대출 잔액 증가, 상·하급지로 양극화된 부동산 시장, 일부 지역 부동산 거품 우려도 내수 진작을 위한 금리 인하까지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린 것은 지난 2012년과 정반대로 공급 부족을 낳은 정부의 부동산 실패 탓이라는 분석이다.

국무회의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향해 기자들이 “정부의 입김이 중앙은행 의사 결정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자 이 총재는 “거꾸로 한국은행의 입장을 정부 정책 결정에 고려해달라는 요청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나”는 반박을 내놨다. 과거 한국은행에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깨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떨치지 못했으나, 향후 1년간 금리 인하 결정은 거꾸로 정부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금통위에서 이미 금통위워들이 부동산 거품이 더 커지지 않는 상태에서 단계적으로 금리를 내리는 정책 조절은 한국은행 혼자 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불편함을 표현했다. 이제는 한국은행이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합리적인 지원을 해 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