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 트릿지에 우군 자처한 FI들, 애그테크 업계 침체·투자자 추가 이탈 가능성 등 위기는 여전

완전자본잠식 상태 빠진 트릿지에 FI, "트릿지 지속 성장 지원하겠다"
투자자 지원 아래 최악 면한 컬리, 트릿지도 비슷한 수순 밟을까
애그테크 업계 침체에 부정적 시선도, "추가 투자 유인 부족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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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애그테크(Agtech·농업기술) 유니콘 기업 트릿지(Tridge)의 자금난이 심화하자 일부 재무적 투자자(FI)들이 직접 지원사격에 나섰다. 지원을 시사한 FI들은 트릿지의 사업모델 전환 방책에 신뢰를 표하며 우군을 자처하는 모양새다. 이에 트릿지의 미래 전망에 빛이 드리웠단 평가가 나오지만, 시장에선 여전히 회의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애그테크 업계 전반이 침체기에 빠져 FI들이 추가 투자를 이룰 동기가 부족한 만큼 향후 투자자 이탈이 가속할 수 있단 이유에서다.

트릿지 위기설에 FI ‘지원사격’ 본격화

5일 업계에 따르면 앞서 지난 2일 일부 트릿지 FI들이 공동 입장문을 내고 트릿지에 대한 지속 성장을 지원하겠단 입장을 내놨다. 이날 입장문 발표에 함께 이들은 포레스트파트너스, SBVA(옛 소프트뱅크벤처스), 브릿지인베스트먼트 등이다.

FI들이 트릿지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건 최근 트릿지가 자금난에 처하는 등 상황이 어려워져서다. 실제로 트릿지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영업손실을 낸 바 있다. 지난해 말에는 자본총계가 -57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이에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은 지난 4월 감사보고서에서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불확실성을 제기했고, FI 중 하나인 DS자산운용은 트릿지 지분가치를 0원으로 전액 감액했다. DS자산운용은 2022년 트릿지에 500억원을 투자했지만 엑시트(투자금 회수)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 아래 모두 손실 처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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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식 트릿지 대표/사진=트릿지

FI 측 “트릿지 성장 이어 나갈 것”

트릿지는 2015년 설립된 농식품 스타트업으로, 해외 농산물을 직접 트레이딩하는 것을 비롯해 글로벌 농·축·수산물 무역 데이터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트릿지는 전 세계 약 120억 건에 달하는 농·축·수산물 무역거래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해 푸드테크 분야에 혁신을 일궈냈단 평가를 받으며 약 4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2022년에는 500억원 규모의 시리즈 D 펀딩을 성사시키면서도 기업가치 3조6,000억원을 인정받은 바 있다. 그동안 트릿지가 유치한 누적 투자 규모는 시리즈 D 펀딩을 포함해 총 1,418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최근 위기가 가시화하자 트릿지는 사업모델을 바꿔 흑자 전환을 꾀하기 시작했다. 농수산물 플랫폼으로서의 특성을 줄이고 데이터 서비스로 사업을 강화하겠단 게 골자다. 이에 대해 트릿지는 “기존 거래액(GMV) 중심의 ‘이커머스 모델’이 아닌 데이터 기술력에 기반한 ‘B2B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구독 모델’로서 훨씬 더 수익성이 높은 사업모델을 구축할 것”이라며 “사업모델의 지속적 강화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농식품 부문 글로벌 B2B 데이터 솔루션 기업이 되겠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동 입장문 발표에 참여한 FI들은 트릿지의 새로운 사업모델 및 성장 가능성에 신뢰를 내비쳤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투자를 지속해 온 포레스트파트너스와 SBVA는 “각종 지표의 지속적 성장과 더불어 전 세계를 상대로 본격적인 세일즈가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트릿지 기업가치는 거듭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낙관한다”며 “지난해 선보인 인텔리전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가 올 상반기에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만큼 트릿지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브릿지인베스트먼트도 “트릿지는 사업적 성숙도를 끌어 올리고 수익성 제고를 위한 작업을 병행해 왔다”며 “당장의 영업손실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트릿지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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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 등 유사 사례도 있지만, 일각선 회의적 의견도

이에 트릿지의 IPO(기업공개)에 대한 기대감도 확산했다. 앞서 트릿지는 올해 흑자 전환을 이룬 뒤 이를 기반으로 내년부터 IPO에 주력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트릿지는 국내와 미국 시장 모두에서 상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의 지원으로 최악의 상황을 면한 컬리의 전례도 기대를 키운다. 앞서 지난해 5월 컬리는 기존 투자자인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와 아스펙스캐피탈로부터 각각 1,000억원, 200억원의 신규 투자를 받았다. 자금시장 경색으로 기업가치가 1조원 아래로 떨어지는 등 위기가 가시화했음에도 투자자들이 자금을 마련해 준 것이다.

다만 최근 들어 컬리에서도 투자자 이탈이 심화하는 분위기다. 기업가치가 6,000억원대까지 떨어지면서다. 이는 지난 2021년 말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에서 인정받은 4조원 대비 무려 85% 떨어진 수준이다. 이에 업계에선 적자가 이어질 경우 컬리 투자자들이 기한이익상실(EOD)을 통한 투자금 일부 회수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언급이 나온다. 유통업 특성상 점유율 유지를 위해선 지속적인 자금 투입이 필요한데, FI 입장에선 컬리에 추가 투자할 요인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시장 일각에서도 트릿지의 IPO 계획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트릿지가 컬리와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경우 위 같은 부정적인 흐름도 그대로 따를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DS자산운용 등 이미 트릿지를 이탈한 FI가 나타난 만큼 불확실성이 높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DS자산운용의 뒤를 이어 트릿지 이탈이 가속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부터 애그테크 업계 전반이 침체기에 빠져 있단 점도 악재다. 실제 글로벌 투자 전문 연구기관 피치북(Pitchbook)이 공개한 ‘애그테크 보고서(Agtech Report)’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애그테크 스타트업들의 자금 조달 규모는 직전 분기 대비 39% 감소했다. 동기간 엑시트에 성공한 건수도 14건에 불과했다. 트릿지가 당장 흑자 전환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향후 FI가 추가 투자를 단행할 유인 동기가 부족할 수 있단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