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가는 고금리 시대, 美 연준 ‘9월 금리 인하’ 유력

美 연준 파월 의장 "금리 인하에 적절한 시점 가까워져"
연내 3차례 인하 시사, 9월 0.5%p 인하 '빅컷' 가능성도
유럽, 中 이어 英 기준금리 인하, '고금리 시대' 막 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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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 달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앞서 유럽, 캐나다, 중국, 영국 등 주요국이 올해 들어 이미 기준금리를 인하한 데 이어 미국도 연내 추가 인하를 준비하는 등 지난 2022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고금리 사이클이 2년 반 만에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한국도 한·미 금리 차, 물가 상승률 둔화, 내수 부진 등을 고려할 때 10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다만 부동산 가격 상승세와 가계부채가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준금리 동결한 연준, 9월에는 인하 가능성 시사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5.25∼5.50%로 동결했다. 그러나 연준은 경제 상황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경우 9월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FOMC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경제 상황을 볼 때 금리 인하에 적절한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며 “고용 시장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인플레이션이 하락한다면 9월 회의에서 금리 인하가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파월 의장은 “오늘 회의에서 이번 달 금리 인하를 진지하게 논의하기도 했다”며 “연준은 최근 경제 상황이 제약적 금리를 되돌리기(dial back) 시작할 여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금리 인하 횟수에 대해서도 “경제가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따라 ‘0회’에서 여러 차례 인하까지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올해 9월, 11월, 12월 세 차례의 FOMC가 예정돼 있어 최대 3회의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전반적으로 보면 파월 의장의 발언은 시장에 섣부른 기대감은 불어넣지 않되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피벗(정책 기조 전환)을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월가에서도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금리 선물 시장 지표로 연준의 금리 정책을 전망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CME Fedwatch)에 따르면 1일(현지시간) 오후 4시 기준 시장 참가자는 연준이 9월에 금리를 0.25%p 내릴 확률을 86.5%로 보고 있다. 특히 9월에 금리를 0.5%p 한꺼번에 인하하는 ‘빅컷’의 확률도 13.5%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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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주요국 경기 부양 위해 금리 인하 이어져

연준이 시장의 예상대로 다음 달 금리를 인하하게 되면 2020년 3월 이후 4년 6개월 만이 된다. 당시 연준은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을 위해 기준금리를 ‘제로 금리’인 0∼0.25% 수준까지 낮췄다가 인플레이션이 악화되자 2022년 3월부터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한 번에 0.5%p를 올리는 ‘빅스텝’과 0.75%p를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반복하면서 지난해 7월에는 2001년 닷컴 버블 이후 최고치인 5.25∼5.50%까지 올랐고, 현재까지 1년 넘게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은 이미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에 돌입한 상태다. 먼저 캐나다는 주요 7개국(G7) 중 최초로 올해 6월과 7월에 2개월 연속으로 0.25%p 금리 인하를 단행하며 기준금리를 5.0%에서 4.5%로 낮췄다. 유럽중앙은행(ECB)도 6월 기준금리를 연 4.5%에서 4.25%로 인하했고, 예금 금리와 한계 대출 금리도 0.25%p씩 내렸다. 중국도 지난달 22일 대출우대금리(LPR)를 0.1%p 내렸고, 1일 영국 중앙은행(BOE) 역시 2020년 3월 이후 4년 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5.25%에서 5.0%로 0.25%p 인하했다.

시장에서는 주요국의 금리 인하 흐름을 두고 2년 넘게 이어진 고금리 사이클이 막을 내릴 것으로 보는 의견이 우세하다. 1일 블룸버그통신은 “각국의 금리 인하가 빠르거나 동시에 진행되지는 않을지라도 결국 금리를 내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블룸버그의 집계에 따르면 세계 23개 주요국 가운데 향후 18개월 이내에 금리 인하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곳은 일본뿐이다.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는 연내 인하에 들어갈 예정이다. 글로벌 기준금리도 내년 말까지 평균 1.55%p 내려갈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팬데믹 이후 빠르게 금리를 올렸던 것과 달리 금리 인하는 완만한 내림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각국의 움직임도 저마다 다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은 예금 금리를 향후 두 차례 더 인하하며 현재 3.75%에서 연내 3.25%까지 내리고 영국은 연말까지 한 차례 더 인하해 기준금리가 4.75%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캐나다는 연내 익일대출금리를 0.5%p 인하해 4.25%까지 내릴 것으로 추산되며, 중국인민은행은 1년 중기 대출금리를 현재 2.5%에서 연내 2.3%까지 내릴 것으로 관측된다.

한은 통화정책 변곡점 맞아, 10월 인하 가능성 높아

연준이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도 변곡점을 맞았다. 현재 시장에서는 내수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세 둔화로 한은의 10월 금리 인하설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내려 한국과의 금리 차가 2.0%p로 줄어들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자본 유출에 대한 우려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치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차선을 바꾸고 방향 전환할 상황은 조성됐다”며 “금리 인하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의 경기와 물가 지표도 한은의 금리 인하를 가리키고 있다. 실제로 그간 금리 인하의 가장 큰 걸림돌이던 물가 상승률은 지난 4월 이후 3개월 연속 2%대에 머무르면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올해 2분기 성장률이 내수 부진 등의 여파로 마이너스(-0.2%)로 전환하면서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 필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한은이 공개한 7월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도 “물가상승률 하락 추세가 지속된다면 미약한 내수 경기를 감안할 때 기준금리 인하를 고려할 만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판단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세와 가계부채가 10월 금리 인하의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한은은 2021년 8월 금리 인상을 시작한 뒤 지난해 1월 3.5%까지 높이고 1년 6개월 이상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은의 긴축은 고물가·고환율 등 코로나 이후 경제위기 국면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고금리가 이어지는 동안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이 늘어 내수 및 부동산 경기가 둔화하고 자영업자의 연체율이 치솟는 등 부작용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기준금리 인하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한은에 있어 큰 부담이다. 불어난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될 경우 최근 불붙은 아파트 가격 상승세를 더욱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7월 다섯째 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주 대비 0.28% 오르며 19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도 약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르는 등 서울에서 시작된 집값 상승세가 경기 등 주변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같은 부동산값 상승은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을 늘려 가계부채 규모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낳는다.

여기에 미국 대선과 중동 전쟁, 달러화 강세로 인한 환율 상승, 국제 유가 급등 등으로 인해 국내 물가가 다시 불안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에 전문가들은 한은이 이르면 10월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면서도 한은이 미국의 금리 인하에 기계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정부의 대출 규제 등 부동산 대책 효과 등을 살핀 뒤 움직일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