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액 1조원 늘었다” 여전한 캐피탈사 부동산 PF 리스크, 당국은 구조조정에 박차

부동산 PF 연체에 허덕이는 여신전문금융업계
자구책 'PF 정상화 지원 펀드'는 그저 부실 이전 수단?
"구조조정 속도 내자" 금융감독원의 부실 PF 정리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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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캐피탈사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관련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 중·후순위 비율이 높은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이 크게 상승하며 부실 위기가 본격화한 것이다. 캐피탈사를 비롯한 제2금융권의 자구 노력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직접 부실 PF 사업장의 경·공매를 유도하며 구조조정 압박을 강화하고 나섰다.

위기의 캐피탈 업계

25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업무 현황 보고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여신전문금융업계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5조4,000억원이다. 연체율은 5.27%, 연체액은 1조3,4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여신전문금융사 중에서도 특히 캐피탈사가 부동산 PF 대출 사업에 무게를 싣고 있다는 점을 고려, 약 1조원 이상의 연체액이 캐피탈 업계에서 발생했을 것이라 추산하고 있다.

부동산 PF 대출 연체 규모 확대는 차후 캐피탈 업계에 있어 치명적인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캐피탈 업계의 부동산 PF는 여타 2금융권 대출 대비 중·후순위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부동산 PF 사업의 중·후순위 출자자는 선순위 출자자의 자금 회수가 모두 이뤄진 후에야 돈을 받을 수 있다. 중·후순위 비율이 높을수록 대출 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나이스신용평가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캐피탈 업계의 전체 부동산 PF 대출 중 중·후순위 비율은 30% 수준이다.

부실 리스크가 확대되며 캐피탈사의 신용등급도 줄줄이 미끄러지는 추세다. 한국신용평가는 올 상반기 엠캐피탈(A-/안정적→A-/부정적)과 롯데캐피탈(AA-/안정적→AA-부정적), 오케이캐피탈(BBB+/부정적→BBB/안정적) 등 캐피탈사 세 곳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고수익 위험자산 신규 취급 제한과 부채 조달 비용 상승, 부동산 PF 대손 부담 확대로 업권 내 수익성 저하 추세가 뚜렷하다는 판단에서다.

여전업계 ‘PF 정상화 지원 펀드’의 허점

위기에 내몰린 여신전문금융업계는 자구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앞서 지난해 9월 업계는 ‘여전업권 PF 정상화 지원 1호 펀드’를 조성해 부실 PF 사업장의 정상화를 지원한 바 있다. 당시 9개 캐피탈사(신한·하나·KB·우리금융·IBK·메리츠·BNK·NH농협·DGB)가 총 1,600억원을 출자했고, 해당 금액은 반년 만에 모두 소진됐다. 이후 올해 상반기 중 조성된 2,000억원 규모의 2차 펀드 역시 현재 대부분 소진된 것으로 전해진다.

운용사인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캐피탈사들이 조성한 펀드를 활용해 각 사가 보유한 PF 대출 채권이나 개발 부지를 사들였다. 펀드로 넘어간 부실 PF 사업장은 대출 건전성 분류에 따라 부실 우려가 있는 ‘고정이하’ 여신에서 ‘정상’ 여신으로 탈바꿈한다. 캐피탈사는 부실 PF 채권을 적당한 가격에 펀드로 넘겨 연체율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한 위험 사업장을 장부에서 떼어내 충당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문제는 해당 펀드의 악용 가능성이다. 최근 업계에서는 매도자(캐피탈사)가 한국투자리얼에셋에 넘겼던 사업장들을 부동산 시장 회복 이후 다시 매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같은 예측이 현실화할 경우, 해당 펀드는 위기를 일시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돌려막기’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캐피탈사들이 PF 정상화 펀드를 일종의 ‘파킹 통장’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정상화 펀드가 부실 이전 수단으로 이용되면 PF 부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장은 펀드를 통해 부실을 이연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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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공매 적극 유도하는 금융감독원

여신전문금융업계를 비롯한 제2금융권의 PF 부실 리스크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부실 PF 사업장에 대한 구조조정 압박을 본격화하고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22일 1·2금융권에 다음 달 9일까지 ‘유의’나 ‘부실우려’ 등급을 받은 부동산 PF 평가 대상 사업장에 대한 정리 계획을 제출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아울러 금감원은 ‘유의’ 등급 사업장은 재구조화 또는 자율 매각, ‘부실’ 등급의 경우 상각이나 경·공매를 통한 매각 계획을 각각 제출하도록 했다. 당국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경·공매를 유도, 정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당국의 지침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부동산 PF 대출이 3개월 이상 연체된 사업장은 경·공매에 즉시 돌입해야 한다. 공매 진행 기간은 1개월 내로 하되 유찰 시 1개월 이내에 다시 공매해야 하며, 경·공매 착수 시점부터 6개월 안으로 최종 완료 목표일을 설정해야 한다. 기존 경·공매 대상은 부동산 PF 대출이 6개월 이상 연체된 사업장이었으며, 유찰 시 재공매까지의 기간은 3개월이었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사실상 저축은행, 캐피탈 등 2금융권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평이 흘러나온다. 이들 업권이 부실 PF 정리에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 4월 금감원이 2금융권 경·공매 규정을 별도로 만들어 시행한 이후 약 200건의 경·공매가 진행됐으나, 낙찰된 것은 1건에 불과했다.

금융당국은 앞서 지난 5월 구조조정(유의·부실우려 등급) 대상 사업장이 전체의 5∼10%, 경·공매가 필요한 사업장이 전체의 약 2∼3%일 것이라 추산한 바 있다. 작년 말 기준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 규모가 약 230조원임을 고려하면, 재구조화를 포함한 구조조정 물량 규모는 최대 23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감원은 내달 9일까지 금융권의 정리 계획을 제출받은 뒤 미비점이 발견되면 즉각 현장 점검과 경영진 면담에 착수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