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회사채 발행 133조원 ‘역대 최대’ 기록, 그중 99조는 빚 갚는 데 사용

기업 직접금융 조달, 전년比↑ 회사채 발행 역대 최고
시설자금 용도는 상반기 최저 수준, 대부분 차환 목적
기업대출도 최대폭 증가세, 연체율 관리에도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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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올해 상반기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내 금리 인하 기대감에 크레딧 채권이 강세를 보이자 차환 또는 신규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에 우호적인 시장 분위기가 조성된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시설자금 용도 비중은 최근 5년간 최저 수준으로, 대부분 빚을 갚는 ‘차환’ 목적에 쓴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최근 기업 대출 연체율이 눈에 띄게 치솟으면서 건전성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반회사채, 금융채 중심 9.4% 증가

23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기업 직접 금융 조달실적’에 따르면 상반기 회사채 발행 규모는 133조2,47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121조8,016억원)보다 9.4%(11조4,454억원) 증가했다. 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주로 대기업이 발행하는 일반 회사채 발행 규모는 33조5,195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3.1% 늘었다. 이 가운데 채무 상환 목적 발행량이 24조9,623억원으로 전체 회사채 발행의 74.5%를 차지했다. 만기가 도래한 채권이나 은행 빚을 갚는 데 회사채를 사용했다는 의미다.

시설자금 목적 회사채는 2조4,560억원으로 전체 회사채 발행의 7.3%에 그쳤다. 발행 규모와 비중 모두 최근 5년간 상반기 기준으로 최저 수준이다. 특히 일반 회사채의 경우 AA등급 이상 우량물의 발행 비중이 68.2%로 전년 동기 대비 14.9%포인트 줄어 최근 5년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금융채 발행은 92조4,91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1% 증가했다. 금융지주채가 0.6% 감소한 가운데 은행채(1.9%)와 기타금융채(22.7%)를 중심으로 늘었다. 이 중 기타금융채는 신용카드사(27.5%), 할부금융사(14.3%), 증권회사(47.2%), 기타금융사(40.2%) 등 모든 업종에서 발행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운영자금 목적 발행은 18.2%로 집계됐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제조업·건설업 이외 유통 등 기타 업종에서 회사채 발행이 크게 늘면서 비중이 확대됐다. 2022년 금리 상승 이후 급격히 위축됐던 석유·화학업, 건설업의 회사채 발행은 지난해부터 점차 회복되는 모습이다. 자산유동화증권(ABS)은 7조3,083억원 발행돼 전년 동기 대비 3.5% 줄었다. 다만 신용보증기금 등이 신용을 보강해 발행하는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의 경우 발행액이 2조4,347억원으로 1.9% 늘었다.

같은 기간 주식 발행액은 5조754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2조7,354억원)보다 85.5%(2조3,400억원) 증가했다. 이는 대규모 기업공개(IPO) 영향으로 풀이된다. 상반기 IPO 규모는 1조5,662억원으로 57.1% 늘었는데, 1년 전에는 없었던 유가증권(코스피) 상장 목적 IPO가 2건(HD현대마린솔루션, 에이피알)이 이뤄졌고, 코스닥 상장을 위한 IPO 건수와 규모(52건, 1조1,178억원)도 1년 전(48건, 9,969억원)보다 증가했다.

상반기 유상증자는 23건, 3조5,092억원으로 전년 동기(16건, 1조7,386억원)보다 7건, 1조7,706억원(101.8%) 뛰었다.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 모두 전년 동기 대비 각 45.1%, 281.9% 증가했다. 기업어음(CP)과 단기사채 발행 실적은 597조3,63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1% 감소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이 14조3,050억원으로 12.3% 줄어든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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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 발행 열풍, ‘높은 신용스프레드’가 투자 유인으로 작용

전문가들은 시장 금리가 하락세를 나타내면서 투자 심리가 개선된 점이 회사채 발행 규모 증가를 견인한 것으로 분석한다. 아직 시점은 불명확하지만 한국은행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가 연내 시작될 것이란 시장 기대감에 채권 투자 수요가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현재 시장에서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에 발맞춰 한국은행 역시 하반기에 적어도 한 차례 기준금리 인하(3.50 → 3.25%)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자본시장연구원(KCMI)에 따르면 통상 연초에 기관투자자의 자금 집행 등으로 회사채 발행이 증가한다. 상반기 회사채 발행 규모로 그해 회사채 투자 심리를 가늠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연초 효과를 고려해도 올해 회사채 발행 증가 추이는 급등세가 뚜렷하다. 여기엔 기관투자자의 회사채 투자 수요가 이어지면서 신용등급 AA- 이상과 A+ 이하 그룹 역시 당초 발행 예정금액의 각각 163%, 177% 증액해 회사채를 발행한 점이 주효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회사채와 국고채 간 금리 격차가 커지면서 국고채 대비 투자 수익이 증대된 점도 인기 요인으로 작용했다.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신용 스프레드(하이일드 채권 수익률과 국채 수익률의 금리격차)가 크게 확대됐던 2022년 10월 이후 회사채 표면금리(coupon rate)가 높은 수준에서 결정됨에 따라 회사채 투자를 통해 무위험채권에 해당하는 국고채 대비 추가적인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KCMI에 따르면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채권 시장 불안이 진정되면서 투자 심리가 개선돼 회사채 신용 스프레드가 빠르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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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대출도 증가 추세, 건전성 비상등

다만 회사채 발행 규모가 늘어나면서 기업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회사채뿐만 아니라 최근 기업대출까지 폭증하고 있어 고금리 기조 속 기업 부채 관리에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에 따르면 이달 15일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823조9,105억원으로 6월 말 대비 무려 12조5,624억원 늘었다. 불과 보름 만의 증가폭이다. 5대 은행의 기업대출은 지난 4월 말 전달 말 대비 10조8,940억원 늘며 근 2년 새 처음으로 10조원이 넘는 증가폭을 보였다. 7월이 아직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업대출 증가폭은 2년 새 최대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은행 연체율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 0.69%로 전월(0.61%) 대비 0.08%포인트(p) 상승했다. 은행 원화 대출 연체율도 0.51%로 전월 말(0.48%) 대비 0.03%p 올랐다. 지난 2월 0.51%까지 상승하며 2019년 5월(0.51%)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3월 은행이 연체 채권 관리를 강화하는 분기 말 효과 덕에 0.43%로 떨어졌지만 두 달 만에 다시 0.5%대로 올라선 모습이다.

같은 기간 기업대출 연체율도 0.58%로 전월 말 대비 0.04%p 상승했다.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72%로 전월 말 대비 0.06%p 올랐고, 중소법인 연체율은 0.75%로 전월 말 대비 0.05%p 뛰었다. 대기업 대출(0.11%→0.05%)을 제외한 모든 대출의 연체율이 오른 것이다. 올해 수출이 증가하면서 수입신용장 및 운전자금 등 대기업 여신 수요가 증가한 것도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적 부진과 재무 지표 악화가 겹치면서 국내 기업 신용도도 줄줄이 하락하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가 올 상반기 신용등급이나 전망을 내린 기업은 총 74곳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중국, 중동 등의 거센 추격을 받는 석유화학,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에 흔들리는 건설과 건축자재 업종 기업 다수의 신용도가 강등됐다. 금융, 유통, 게임 업종에서도 하향세가 나타났다. 신용도가 올라간 기업은 44곳에 그쳤다.

이에 시중은행은 하반기부터 기업대출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연체 우려가 작은 우량 기업과 건실한 중견·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영업을 확장하며 건전성을 관리한다는 구상이다. KB국민은행은 ‘잠재부실자산관리 TFT’를 통해 매월 잠재 관리 등급과 관련한 리뷰를 실시하는 방안을 수립했다. 기업영업 전담 조직인 ‘S.O.L 클러스터’를 만든 신한은행은 기업여신 심사 프로세스를 자동화·간소화하며 기업 여신 관련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중소기업특화채널 ‘비즈(Biz)프라임센터’ 점포를 8월 중 추가로 신설해 건실한 중소기업 대상의 영업을 확대할 계획이며, 하나은행은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는 기업대출은 자제할 것을 권고하는 속도 조절성 지침을 내리고 건전성을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