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제 생산성 저해 우려” 금융당국, 비트코인 현물 ETF 반대 입장 견지

민주당, 공약 이행 위해 '비트코인 현물 ETF' 논의 촉구
금융당국, 금융 시장 안정성 저해 및 투자자 피해 우려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에 금융사 건전성 악화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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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야당을 중심으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국내에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가상자산이 기성 금융에 빠르게 파고들고 있어 업권법 준비가 시급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변동성이 심한 가상자산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제도권 편입 시 금융시장 안정성이 저해되는 부작용이 수반될 수 있는 만큼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금융당국 역시 법률상 근거 부재와 투자자 보호를 강조하며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민주당, 비트코인 현물 ETF 제도화에 속도

19일 정계에 따르면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의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 승인을 위해 금융당국에 관련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지난 4월 총선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현물 ETF의 발행과 상장, 거래를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를 포함, 총 300석 가운데 175석을 차지하는 등 압승을 거두며 당시 제시한 공약들도 대부분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캐나다, 스위스, 미국, 영국, 홍콩 등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을 제도권으로 편입시키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국내 시장에도 ETF가 승인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앞서 지난 1월 미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승인한 데 이어 홍콩에서도 지난 4월부터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 ETF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금융위원회 산하에 공식적으로 가상자산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는 ‘가상자산과’가 신설된 점도 기대를 높이는 요인이다. 가상자산과는 19일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법)에 따라 마련한 것이다. 해당 부서의 주된 임무는 가상자산 관련 불공정 거래는 물론 거래소와 같은 사업자들의 이상 징후를 상시 감시하는 것이지만 가상자산과 관련한 전반적인 업무도 함께 다룰 것으로 예상돼 현물 ETF를 포함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권해석에 따라 가상자산이 ETF 기초자산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서는 기초자산에 대해 △금융투자상품 △통화(외국 통화 포함) △일반상품(농산물·축산물·수산물·임산물·광산물·에너지 등) △신용위험 △그밖에 자연적·환경적·경제적 현상 등에 속하는 위험으로서 합리적이고 적정한 방법에 의해 가격·이자율·지표·단위의 산출이나 평가가 가능한 것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중 금융투자상품에 가상자산을 포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경우 별도의 법안 개정 없이도 현물 ETF를 승인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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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금융 시장 불안정’ 부작용 우려

다만 금융당국은 이미 비트코인 현물 ETF가 금융투자상품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상태다. 또한 당국은 여전히 가상자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최근 금융위가 민병덕 의원에게 제출한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 영향 분석’ 자료에서 금융위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부정적 영향으로 △금융 시장 안정성 저해 △실물경제 생산성 저해 △투자자 피해 등을 꼽았다.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하면 비트코인 현물 ETF 발행에 참여하거나 투자한 금융사에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이 일어날 수 있으며, 개인 투자자들이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어 패닉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물경제 생산성이 저해될 수 있다고도 분석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거래될 경우 증권사 계좌로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게 되는데, 이로 인해 주식‧회사채 등에 예치됐던 자금이 비트코인으로 쉽게 이동하고 실물경제에 기여하는 기업의 자금조달이 위축될 것이란 지적이다. 이는 가상자산 시장으로 유입된 자금이 비생산 부문으로의 저축에 그칠 수 있다는 의미로, 기성 시장의 기능은 단순히 투자 수요를 만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이 유가증권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을 연구개발(R&D) 등에 활용해 고용·성장 등 실물경제에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감안한 논리다.

금융위는 비트코인 거래 증가로 국경 간 자본 이동 관리에 난관이 생기거나 정부의 외환시장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또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 시 가상자산을 ‘정부가 인정한 안전한 상품’이라고 오인하게 해 투자자 피해를 촉발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가상자산의 내재 가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을 제도권으로 포섭하는 것은 자칫 시장 참여자에게 검증된 자산이란 인식을 심어줘 각종 리스크에 노출 시킬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

반면 긍정적 영향으로는 비트코인 거래 절차 간편화와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금융사 수수료 수익 증대 등을 꼽는 데 그쳤다. 부작용 측면에서 국가 단위의 거시적 영향을 거론한 것과 비교하면 긍정적 영향은 개인이나 일부 기업 단위의 미시적 범위에 그치는 모습이다. 그간 금융위는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가 불가하다는 방침을 강조하며 법률상 근거 부재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증권 상품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기초자산’에 가상자산이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에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예측하고 거래 금지에 힘을 실어 왔다는 주장에 무게추가 쏠린다. 해당 사안은 금융시장의 안정성, 금융회사의 건전성, 투자자 보호와 직결된 만큼 금융당국 입장에선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는 22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지난 5일 “비트코인 현물 ETF는 짚어봐야 할 부분이 많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피력한 상태다.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 S&P500의 5배

가상자산업계는 금융위의 견해에 날 선 반응을 보이며 반박했다. 금융 시장 안정성 저해 관련 분석이나 비트코인이 전체 금융 시장을 좌우할 것이란 전망 등이 모두 지나치게 비약적이라는 것이다. 한 가상자산 리서치기업 관계자는 “국내 자본시장 전체 규모에 비해 비트코인 현물 ETF가 미칠 영향력은 미미하다”며 “비트코인 폭락에 따른 뱅크런 우려는 삼성전자 같은 대형 주식이 하락했을 때 전체 자본시장에 패닉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와 같다”고 말했다.

민 의원도 “비트코인의 현물 ETF가 도입된다면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보다 다양한 투자 옵션을 갖게 돼 투자 환경의 개선 및 국내 자본시장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며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에 대해 찬성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민 의원은 비트코인 현물 ETF 인가 문제를 포함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2단계 입법을 위해 전문가들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민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이후에도 당국의 유권해석 답변이 부족할 경우 자본시장법 개정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상자산 연계 상품을 도입할 경우 득보다 실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된다. 가상자산 채굴이나 발행으로 만드는 경제적 편익이 불분명하거나 크지 않기 때문에 AI(인공지능)나 로봇, 대체에너지 등 첨단 기술에 대한 투자에 비해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이뤄질 수 있어서다.

월가 일각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를 두고 ‘독이 든 성배’라는 평도 나온다. 원래 비트코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기존 금융기관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발판 삼아 탄생한 ‘대안 화폐·자산’의 성격이 짙었다. 그런데 올해 초 비트코인이 펀드라는 전통적 금융 상품의 투자 대상이 되자 비트코인을 탈중앙화된 화폐 체계로 만들겠다던 목표가 무너진 것이란 비판이 커졌다. 더욱이 비트코인은 안전자산으로서의 기능도 기대하기 어렵다. 개당 가격이 비싸고 가격 변동 폭이 크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약 5배, 코스피의 약 4.5배로 위험성이 상당히 크다. 실제로 지난달 초 1억200만원을 돌파한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비트코인 가격은 19일 오후 3시 기준 9,003만원에 거래 중이다. 이는 예금의 변동성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해 은행의 유동성 관리에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크다. 샘 뱅크먼 프리드(Sam Bankman-Fried)가 창업한 전 세계 3위권 암호화폐 거래소 FTX가 지난해 파산하면서 가상자산 산업을 적극 지원했던 실버게이트 은행도 함께 문을 닫은 것이 단적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