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4년 만에 물가 하락, 연내 2차례 이상 금리 인하 기대

지난달 고용시장 둔화에 이어 물가상승률 크게 꺾여
美 연준 통화정책 중심이 '물가'에서 '고용'으로 이동
금리 인하 시기 무르익어, 9월 기준금리 인하 확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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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예상치를 하회하며 전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향해가는 가운데 통화정책의 양대 지표인 고용 둔화가 나타나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재무부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9월 기준금리 인하 전망에 한층 더 힘이 실리고 있다.

CPI 전월 대비 0.1% 하락, 연간 기준 3년 만에 최저치

11일(현지시각) 미국 노동부 통계국에 따르면 6월 헤드라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월 기준으로는 0.1% 하락했다. 당초 다우존스가 발표한 물가상승률 전망치 평균은 전월 대비 0.1%, 전년 동월 대비 3.1%였다. 전월 대비 물가상승률이 하락한 것은 2020년 5월 이후 4년여 만으로, 연간 기준 3.0%의 물가상승률 역시 3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 가격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1%,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시장 전망치 평균은 전월 대비 0.2%, 전년 대비 3.4% 수준으로 실제 값이 예상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품목별로 보면 식품 가격과 주거비가 각각 0.2% 상승했지만, 휘발유 가격이 3.8% 하락하면서 이를 상쇄했다. 특히 주택 관련 비용은 인플레이션의 가장 완고한 요소 중 하나로 CPI 가중치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데 지난달 관련 비용이 크게 늘지 않은 것이 월별 물가상승률 하락의 단초가 됐다.

이에 대해 CNBC는 “6월 인플레이션 보고서는 미 연준이 9월 금리 인하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평했다. CPI는 지난 2022년 6월 9%를 넘어서며 최고치를 기록했고, 연준은 이에 지난해 7월까지 11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대응했다. 이후 1년간 물가상승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했지만, 기준금리는 5.25~5.50% 범위에서 계속 동결돼 왔다. 지난달 회의에서 연준이 연내 25bp 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오는 9월 기준금리 인하 후 연말까지 한두 차례 더 인하가 이뤄질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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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물가 하락 소식에 엔·달러 환율 등 외환시장도 동요

미국의 물가 하락 소식에 외환시장도 동요했다. 11일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61엔 중반대였던 엔화 가치는 미국 정부의 CPI 발표 직후 160엔 후반까지 상승하며 3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후 급격히 엔 매수·달러 매도세가 유입되자 157엔40전까지 단숨에 엔고(高)가 진행됐다.

시장은 미국 CPI 하락으로 미국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며 달러 매도세가 나타난 것을 계기로 일본 정부가 개입한 것이라 분석한다. 이와 관련해 칸다 마사토 일본 재무성 재무관은 11일 “외환시장 개입 여부에 대해선 언급할 사안이 없다”면서도 “미·일 간 금리 차가 축소되는 경향이 있음에도 엔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경제 펀더멘털에 비춰봤을 때 합리적인 움직임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엔화 가치 하락에 개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일본 금융 당국은 올해 4월 26일부터 5월 29일까지 약 한 달간 9조7,885억 엔(약 84조7,000억원) 규모의 시장 개입을 단행했는데, 당시 엔화 가치는 잠시 상승세를 보였다가 지난달 말 다시 하락했다. 문제는 엔화 가치가 계속 상승할 수 있을지다. 전문가들은 이미 올 연말까지 두 차례 금리 인하 가능성이 반영돼 있어 추가적인 달러 하락을 유도하려면 금리 인하 속도를 올릴 추가 요소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이 외환시장의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닛케이는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정책을 전개할 가능성이 있다”며 “일본도 새로운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로 해외자산 투자가 늘어나면 엔 매도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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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연준 의장이 6월 1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 동결 이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美 연준, 금리 인하 시사 “인플레·고용 간 균형 이뤄야”

한편 물가 보고서 발표 전날인 지난 10일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 하방 압력이 강해 아마도 향후 물가상승률이 2% 아래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며 “연준은 물가상승률 목표치뿐만 아니라 고용 안정을 양대 책무로 하는 만큼 양쪽이 균형을 이루지 않고 그저 물가상승률만 하락하는 상황은 바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연준이 물가 지표로 활용하는 6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한 데 반해 같은 기간 미국의 비농업 부문 신규 일자리 수는 전월 대비 20만6,000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다우존스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 평균 20만 개를 상회하지만, 최근 1년간 평균 증가 폭인 22만 개에 못 미치는 규모로 일자리 증가세 둔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6월 실업률도 시장 전망치보다 0.1%p 높은 4.1%를 기록했다. 지난 2021년 11월 이후 2년 7개월 만에 최고치다.

앞서 지난해 9월 미 상원 상반기 통화정책 보고에 출석한 파월 의장은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노동시장 상황은 2년 전과 비교해 상당히 냉각됐다”며 “정책적 제약을 너무 늦게 또는 너무 적게 완화하면 경제활동과 고용이 과도하게 약화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파월 의장은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물가 안정을 강조했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여러 차례 물가 상승과 고용 둔화 사이의 균형을 강조하면서 예상치 못한 노동시장 위축이 완화적 통화정책의 이유가 될 수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같은 날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도 파월 의장과 비슷한 입장을 내놨다. 하원에 출석한 옐런 장관은 “고용시장이 이제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야기할 압력이 낮아졌다”고 지적하며 한 달여 만에 정반대의 평가를 내렸다. 미국 경제 정책을 이끄는 두 수장이 미국의 고용시장 둔화에 대해 한목소리를 낸 것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준금리 등 통화정책의 무게 중심이 물가 안정에서 고용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미묘하지만 중대한 전환”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