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주에 휘둘리는 한국 증시, 개미들 ‘국장 엑소더스’ 본격화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 역대급 'Buy 코리아', AI 슈퍼사이클 영향
국내선 한국 증시에 대한 불신 확산, 결국 국장 떠나는 한국 개미들
테마주에 부화뇌동하는 국내 투자자들, "수혜주에 시장이 끌려다니는 꼴"
Stock market korea FE 20240701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불신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 증시에서 돈을 빼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건 예삿일이 됐고,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선 한국 증시 하락에 베팅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증권가에서 ‘하반기 코스피 3,000 돌파’ 전망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개인투자자들의 불신은 여전한 모습이다.

외국인 투자자 몰리는 한국 증시, 정작 국내 투자자는 ‘미국행’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올해 상반기 유가증권시장에서 22조7,981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1998년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사상 최대 규모다. 외국인의 역대급 ‘Buy 코리아’ 배경엔 AI 산업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이 있다. 외국인은 올 상반기 삼성전자(우선주 포함)를 9조1,427억원어치 순매수했다. SK하이닉스(3조8,039억원)까지 합치면 전체 순매수 금액의 57%를 ‘반도체 투톱’에 쓴 셈이다.

반면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한국 증시에서 오히려 발을 빼는 모양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 동안 개인투자자가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KODEX 200선물 인버스2’였다. 코스피200지수가 하락할 때 낙폭의 2배 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다. 소위 ‘곱버스’라고 불리는 해당 ETF에 몰린 개인 자산은 총 4,370억원에 달한다. 상당수의 개인투자자가 코스피200지수 하락에 베팅했단 의미다.

순매도 상위에서도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장 많이 순매도한 종목은 국장(한국 주식 시장)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였으며, 두 번째는 코스피200지수가 오를 때 두 배의 수익이 나는 ETF인 ‘KODEX 레버리지’다. 삼성전자와 코덱스 레버리지의 순매도 규모는 각가 2조4,345억원, 4,737억원이다. 이외에도 현대차(순매도액 4,599억원), SK하이닉스(4,329억원), 알테오전(2,980억원), 기아(2,365억원), 제이시스메디칼(1,874억원 등 올해 상반기 큰 폭으로 오른 주도주들이 개인의 순매도 상위를 채웠다.

국내 주식을 처분한 개인투자자들은 앞다퉈 미국 증시로 떠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 금액은 862억2,001만 달러(약 119조원)으로 2011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올 초 673억6,297만 달러(약 93조원)와 비교해 반년 만에 27.99% 늘어난 수준이며,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인 2019년 말(84억1,565만 달러)과 비교하면 4년 반 만에 10배 넘게 늘었다.

테마주에 흔들리는 국장, 단타 매매 비중도 높아

이처럼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국장 ‘엑소더스(대탈출)’에 나선 건 한국 시장에 테마주의 악영향이 넓게 드리운 영향이다.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고위험 투자에 집중하는 경향이 짙다. 널뛰는 테마주에 빚을 내서라도 올라타야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단 인식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0조2,431억원에 달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란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후 갚지 않고 남은 금액으로, 흔히 ‘빚투(빚을 내 투자)’라고도 불린다. 이는 주가가 오르면 큰 문제가 없지만 주가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반대매매가 실행되기 때문에 고위험 투자 전략으로 분류된다.

이들 빚투 자금이 향한 곳은 대부분 테마주다. 투자자들이 먼저 몰린 건 HB테크놀러지였다. 지난 19일 기준 HB테크놀러지의 신용거래 비율은 9.0%로 전체 상장사 중 가장 높았다.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인 HB테크놀러지는 아이폰16 시리즈의 수혜주로 언급되며 주가가 급등했다. 동해 유전 관련주로 엮이며 주가가 급등한 디케이락(9.0%)에도 빚투 자금이 집중됐다.

단기 고수익을 지향하는 테마주에 자금이 몰리다 보니 단기 투자 빈도도 높게 나타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 13일까지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데이트레이딩(당일 매매) 거래량은 전체 거래량의 58%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주식을 구입한 날 바로 되파는 ‘단타 매매’가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겼단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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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혜주’에 끌려다니는 국장, “신뢰도 낮아질 수밖에”

문제는 이 같은 테마주의 위험도가 매우 높다는 데 있다. 특히 한국 시장에선 특정 사건에 ‘수혜주’란 소문이 돌면 해당 기업의 주가가 급격히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2012년 ‘안철수 테마주’였던 써니전자나 2022년 4.7 재보궐 선거 당시 ‘오세훈 테마주’로 이름을 날린 진양산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들 테마주의 주가 상승세는 한순간에 꺾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안철수 테마주 써니전자는 안철수 당시 대선 후보가 창업한 안랩 출신의 직원이 재직 중이란 이유로 주가가 한때 50배나 폭등했으나, 이내 고점 대비 88% 대폭락했다. 오세훈 테마주 진양산업 역시 이 회사의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과 대학 동문이란 이유로 투자세라 몰렸으나 재보궐 선거 다음 날 주가가 약 24% 급락했다. 결국 부화뇌동하는 국내 투자자들이 테마주에 몰려들었다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한국 증시 혼란을 가중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선 ‘국장을 한다는 건 태풍 노루가 올 때 노루 페인트를 풀매수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란 우스갯소리까지 돌고 있다. 한국 증시에 대한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단 방증이다. 국내 투자자들의 발길을 다시 돌리기 위해선 테마주에 끌려다니는 시장 분위기 전반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