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채권 돌려막기’ KB·하나증권에 중징계, CEO도 징계 처분

하나·KB증권 운용 담당 임원 중징계
KB증권은 대표까지 징계 대상에 포함
CEO 징계에 예고된 후폭풍, 남은 제재도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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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일부 기관·기업에 약속한 수익률을 보전하기 위해 랩어카운트(랩), 특정금전신탁(신탁) 계좌에서 위법 행위를 저지른 증권사들에 일부 영업정지 등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해당 증권사들은 대형 법인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이른바 ‘채권 돌려막기’로 손익을 다른 고객들에 수천억원씩 전가하는 위법적 영업 관행을 지속한 것으로 적발됐다. 랩·신탁 관련 첫 징계가 나온 만큼 타 증권사에 대한 제재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업계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금감원, ‘채권 돌려막기’ 증권사 제재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전날 오후 제재심의위원회에서 KB증권과 하나증권에 대한 일부 영업정지 제재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 제재는 △기관주의 △기관경고 △시정명령 △영업정지 △등록·인가 취소 등 5단계로, 기관경고부터 중징계다. 채권 돌려막기에 직접 가담한 운용 담당 임직원에게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이홍구 KB증권 대표를 포함한 감독자에 대해서는 감독을 소홀히 했거나 의사 결정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 조치를 결정했다.

이번 제재심에서는 크게 두 가지 위반 사안을 논의했다. 손실 보전의 한가지 방법은 기업어음(CP) 등 계좌 내 채권을 다른 계좌로 고가 매수해 주는 방식으로 돌려막기 해 수익률을 짜맞추는 방식이다. 지난해 금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 증권사의 경우 총 6,000회의 연계·교체거래를 통해 특정 고객의 CP를 다른 고객의 계좌로 고가 매도해 5,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고객 간에 전가했다. 채권 금리가 급등한 시기 만기가 먼저 도래한 고객들의 수익률을 위법하게 보전해 주고 그 손실을 만기가 좀 더 늦은 계좌로 돌린 것이다.

다른 한 가지 사안은 회사 고유 자산을 이용한 손실 보전 행위다. 일부 증권사들은 고객 계좌 간 연계·교체거래 등 방식만으로 수익률을 보장해 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두 번째 방식으로 고유 자산을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유 자산으로 자사 펀드에 가입해 이 펀드로 고객 랩·신탁에 편입된 CP를 고가에 매입해 주는 방식으로 환매 대금을 마련한 것이다.

고유자금으로라도 고객 손실을 보전해 주는 것은 명백한 위법 행위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업자가 금융투자상품의 매매, 그 밖의 거래와 관련해 손실·이익을 보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한편 징계 수위는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를 거쳐서 최종 확정된다. 금감원은 이번 제재를 시작으로 한국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 SK증권, 교보증권, 키움증권,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나머지 증권사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제재심을 열 계획이다.

CEO도 징계 주목, 증권가 ‘긴장’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징계에 CEO도 포함됐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이 CEO 징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무게를 실은 건 지난해 말부터다. 금융위원회가 사모펀드 관련 증권사 CEO의 제재 수위를 확정하면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정례회의를 열고 7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법 위반에 대한 조치를 의결했다. 당초 제재 수위 경감을 기대했던 증권업계는 금융당국의 중징계 기조가 유지되자 이에 대한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각에서는 지배구조는 물론 맨파워가 중요한 금융투자업계 성격상 자칫 증권사 판도 변화가 불가피하리란 전망까지 나왔다. 실제로 당시 금융위가 박정림 KB증권 전 대표이사에게 당초 금감원 제재심의 결정을 한 단계 상향 조정한 ‘직무 정지’를 사전 통보한 것으로 두고 관련 업계는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문책 경고)와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주의적 경고)의 처분을 두고도 우려가 상당했다.

금융위는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을 통해 금융사 임원의 제재 단계를 정의하고 있다. △해임 권고 △업무 집행의 전부 또는 일부 직무 정지 △문책 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순이다. 이를 기반으로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은 금융사 임원의 취업제한 기한을 규정하고 있다.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 경고 이상은 향후 각각 3~5년간 금융사 취업이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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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사진=금융감독원

빠져나갈 구멍 없는 금융사지배구조법

하지만 CEO 징계 수위를 두고 책임 소재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소송으로 넘어가는 등 논란이 장기화됐다. 실제로 직무 정지 처분을 당한 박정림 KB증권 전 대표는 직무정지 3개월 징계 처분을 취소하라며 금융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징계처분의 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도 신청했다. 박 전 대표는 징계 취소소송을 제기할 당시 “불명예 퇴직하는 모습을 직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재판부는 박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 재판부는 “박 전 대표의 청구에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고 보기 어렵고, 징계의 효력을 정지하지 않을 경우 박 전 대표는 상당 기간 금융회사 임원 취임이 불가하다”며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금융위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효력정지가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해당 소송 이후 금융당국은 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을 통해 CEO에 대한 처분·제재가 가능하도록 했다. 한 마디로 증권사 CEO를 제재할 근거를 충분히 마련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금융사지배구조법 위반사항에 대한 제재 규정이 마련돼 있는 상태로 대상은 회사 임원, 직원 불문 다 대상”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지배구조법 개정에 금감원장의 의지가 크게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이복현 금감원장은 수시로 엄중 조치를 강조해 왔다. 이 원장은 올해 초 증권사 CEO 간담회에서도 “리스크 관리보다 단기적인 이익 창출을 우선시하는 금투업계 성향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체질 개선도 필요하다”며 “성과보수 체계를 금융사 장기성과와 연동할 수 있도록 정비하고, 부동산 PF 쏠림, 과도한 단기자금 의존 등과 같이 리스크 관리의 기본이 망각되는 일이 없도록 CEO가 직접 챙겨주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최근 몇몇 사례와 같이 일부 회사의 리스크 관리 실패로 인해 금융시장에 충격 요인으로 작용할 경우에는 해당 증권사와 경영진에 대해 엄중하고 합당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피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