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쏠림에 몸값 뛰는 범용 D램, 삼성전자 ‘청신호’

모건스탠리, 범용 D램 쇼티지 본격화 시나리오 제기
HBM 투자 쏠림 현상에 범용 생산 확장 제약 가능성
D램 수요 회복 기대 속 삼성 2분기 전망도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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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정/사진=SK하이닉스

인공지능(AI) 붐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메모리 빅3사가 ‘범용 D램 딜레마’에 빠졌다. HBM 생산량을 늘리다 보니 범용 D램 생산능력이 반대로 줄어들어 팹 생산능력 안에서 이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하반기부터 범용 D램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쇼티지(공급부족) 상황이 발생할 것이며, 메모리3사가 지난해 반도체 불황으로 줄였던 D램 설비 투자까지 다시 늘릴 수도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범용 D램 부족사태 오나

28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전례 없는 메모리 수요-공급 불균형이 나올 수 있다”며 “이는 메모리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특히 D램의 경우 내년에 수요가 공급보다 23% 더 많은 극심한 ‘공급 부족’ 현상을 겪을 것으로 지목했다. HBM 공급 부족 비율(11%)보다 범용 메모리 부족이 훨씬 뚜렷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범용 메모리는 통상 명확한 규격이 정해진 제품으로, 최근 HBM 등과 구분해 일반 메모리를 범용 D램 메모리라고 부른다. 모건스탠리 측은 “D램 공급 부족과 지난 2년 동안의 자본 지출 부족, 새로운 웨이퍼 팹, 대규모 웨이퍼 부재로 인해 메모리 시장은 슈퍼 사이클(장기 호황)에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HBM 투자 쏠림 현상이 범용 D램 공급 부족을 더 부추길 것이라 진단했다. 실제 HBM은 같은 용량의 범용 D램보다 2배 이상의 웨이퍼를 사용한다. 또 공정 난도가 높아 생산 수율도 낮은 편이다. 이에 D램 생산 능력 확대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모건스탠리는 “메모리 공급망이 HBM으로 빠르게 전환됨에 따라 일반 D램에 대한 투자 부족 현상이 나오고 있다”며 “2025년부터 스마트폰 및 개인용 컴퓨터의 AI 업그레이드 주기에 추가 메모리 용량이 필요하며, 그때까지 시장은 심각한 공급 부족을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HBM 열풍의 풍선효과? D램 몸값 꿈틀

당초 HBM은 범용 D램 대비 최대 6배 이상 높은 수익성을 갖춘 고부가 제품으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고성능 D램으로 AI 반도체에 필수로 탑재되면서 새로운 시장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데다 높은 몸값으로 메모리업체들의 미래 먹거리로 부상한 지 오래다. 하지만 현실에선 단순히 HBM을 판다고 고수익을 얻는 게 아니라는 점이 서서히 드러나는 모양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수율이 나와야만 HBM 사업으로도 승산이 있다는 게 실적으로 증명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D램 가격은 전 제품군에서 오르고 있다. 최근 반도체 불황 당시 쌓인 재고가 빠른 속도로 소진되고 있어 가격도 함께 오르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의 지난달 현물가격은 2.1달러로 지난 1월의 1.8달러에서 16.6% 상승했다. 서버용 D램 제품 가격도 9~19% 올랐다. DDR3의 경우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생산 중단 수순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DDR3는 출시된 지 10여 년이 지난 구형 모델이지만 아직도 무선인터넷 공유기 등에 널리 탑재된다. 이런 이유로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하반기 DDR3 수요가 공급량을 20~30% 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HBM에 대한 캐파(생산능력) 할당이 늘어나다 보니 전통적인 D램을 원하는 고객사들 사이에서는 자기들이 갖고 갈 수 있는 제품에 대한 수급 우려가 점점 커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D램 가격 상승은 메모리 제조사들의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직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삼성전자에는 범용 D램 메모리가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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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12나노급 D램/사진=삼성전자

‘D램의 귀환’, 삼성전자 실적 개선 전망

이에 시장의 눈은 삼성전자의 D램 공급 전략에 쏠리고 있다. 특히 HBM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공급 규모는 전체 D램 시장의 수급을 좌우할 변수로 꼽힌다. 메모리반도체 제조사 중 가장 넉넉한 생산능력을 갖춘 삼성전자가 HBM용 선단공정에 생산능력을 집중할 때 범용 D램의 수급 개선을 더 당길 여지가 있어서다. 앞서 올해 1분기 실적발표회를 통해 삼성전자는 올해 내내 범용 D램의 생산능력 제약이 이어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 부사장은 “올해 업계의 생산 비트그로스(비트 단위 생산량 증가율)는 제한적”이라며 “D램은 생성형 AI 수요 대응으로 선단공정 생산능력이 HBM에 집중돼 이외 제품 생산 비트그로스의 제약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에는 범용 D램 물량 공급의 불확실성을 의식한 일부 서버 고객사를 중심으로 재고 확보 수요가 발생하며 가격 상승이 이어졌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지난해 감산 이후 쌓아 둔 재고 수준이 많이 감소했기 때문에 재고 확보를 위한 수요 보다는 실수요 위주로 판매를 진행했다”며 “1분기 양사 D램 판가가 전분기 대비 20% 이상 올랐는데 스마트폰이나 PC보다는 주로 서버를 중심으로 가격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반도체(DS)사업 부문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가 시장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적자를 기록하며 수십조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1년 만에 시장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또한 업계에서는 하반기 D램 가격이 상반기 예상치를 훌쩍 넘겨 두 자릿수 중반 이상대 상승을 점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D램 시장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삼성이 범용 D램 가격 상승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삼성전자는 최근 고객사들에 D램 가격을 15% 이상 인상하는 방안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앞서 시장 예상치를 두 배 가까이 넘어선 수치”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