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늘어날 텐데” 정부, 스트레스 DSR 규제 시행 돌연 연기

스트레스 DSR 2단계 규제, 시행일 7월에서 9월로 밀렸다
미끄러지는 주택담보대출 금리, 가계대출 증가세 가팔라지나
"급한 불부터 꺼야지", 건설업계 대출 부실 리스크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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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시행을 연기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를 중심으로 은행권의 부실 리스크가 확대되는 가운데, 당장의 가계대출 억제보다 건설업계 대출의 ‘교통 정리’에 무게를 싣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미뤄져

금융위원회는 25일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일을 7월 1일에서 9월 1일로 연기하는 내용의 ‘하반기 스트레스 DSR 운용방향’을 발표했다. 스트레스 DSR은 변동금리 대출 등을 이용하는 차주가 대출 이용 기간에 금리 상승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에 대비, DSR을 산정할 때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부과해 대출 한도를 산출하는 제도다.

앞서 정부는 올해 2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을 대상으로 기본 스트레스 금리의 25%를 적용하는 1단계 조치를 도입한 바 있다. 2단계 조치(은행 주담대와 신용대출, 2금융권 주담대에 스트레스 금리의 50% 적용)는 애초 올해 하반기 도입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운용방향 발표로 인해 시행이 미뤄지게 됐다. 전 금융권 가계대출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금리를 100% 적용하는 3단계 시행일 역시 내년 초에서 내년 하반기로 연기됐다.

금융위는 시행 계획을 돌연 연기한 배경에 대해 “범정부적 자영업자 지원 대책이 논의되는 상황이고, 이달 말 시행되는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 등 전반적인 부동산 PF 시장의 연착륙 과정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2단계 스트레스 DSR이 시행되더라도 DSR을 적용받는 모든 차주의 한도가 감소하는 게 아니라 ‘고DSR’ 차주들의 최대한도가 감소하게 된다”며 “제2금융권 주담대의 경우 대출이 줄어드는 차주가 약 15% 정도로 분석돼 이분들(고DSR 차주)의 어려움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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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대출 급증 우려

시장에서는 규제 시행 연기 결정과 부동산 시장 회복세, 주담대 금리 하락 추세 등이 맞물리며 가계대출 증가세가 한층 가팔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실제 최근 들어 주기형 주담대 하단 금리는 빠르게 미끄러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신한은행의 주기형(5년) 주담대 금리 하단은 2.94%로 2%대까지 내려왔다. KB국민은행도 24일부터 주기형 주담대 금리 하단을 2.99%로 조정했다.

주담대 금리가 하락한 것은 주기형 주담대 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융채 5년물 금리가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채 5년물 금리는 지난 13일 3.63%를 기록한 이후 3.60%(14일)→3.57%(17일)→3.53%(18일)→3.51%(19일)→3.48%(20일)→3.47%(21일) 등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연내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 등이 금리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동산 시장이 회복 기미를 보이면서 가계대출은 지난 4월부터 주담대를 중심으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20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07조6,924억원으로 지난달 말(703조2,308억원) 대비 4조4,616억원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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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PF가 최우선?

정부가 가계대출 증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스트레스 DSR 규제 시행을 연기한 이유는 뭘까. 업계에서는 정부 결정의 배경으로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한 건설사 부실 리스크를 지목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건설업계의 부실 리스크로 은행권의 고뇌가 깊어진 상황”이라며 “(정부가 규제 시행을 미룬 것은) 부실 위험이 한층 큰 건설업계 상황을 우선으로 정리하고, 이후 가계 대출에 손을 대겠다는 구상일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 올해 1분기 말 기준 5대 은행이 건설업체에 내준 대출에서 발생한 고정이하여신은 총 4,84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4.5% 늘었다. 금융사들은 자산을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다섯 단계로 분류하는데, 이 중 고정과 회수의문, 추정손실에 해당하는 대출을 통틀어 고정이하여신이라 칭한다.

은행별로 보면 건설업 대출 고정이하여신이 가장 많은 은행은 농협은행(1,394억원)으로 파악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78.2% 증가한 수준이다. 하나은행의 건설업 대출 고정이하여신은 같은 기간 68.6% 증가한 1,379억원을 기록했으며, 우리은행은 831억원으로 68.58% 늘었다. 이어 국민은행은 31% 증가한 816억원, 신한은행은 76.1% 증가한 428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