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자산을 불려드립니다” 슈퍼리치 자산 운용 ‘패밀리 오피스’ 급증

2019~2023년 패밀리 오피스 3배 이상 증가
재산 관리·상속·회계 등 모든 업무 수행 역할
글로벌 패밀리 오피스 운용 자산 8,300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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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초고액 자산가들이 가문의 재산을 잘 보존하고 운용하기 위해 만드는 ‘패밀리 오피스’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늘어나는 패밀리 오피스는 글로벌 금융 시장을 포함해 다양한 부문에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만능 집사’ 패밀리 오피스 증가세

미국 컨설팅 업체 프레킨(Preqin)에 따르면 2019년에서 2023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패밀리 오피스 수는 3배 이상 증가했다. 초부유층이 늘어나면서 패밀리 오피스도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연구그룹 웰스엑스를 인용해 1억 달러(약 138조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개인의 수가 2009년 4만6,400명에서 2023년 9만870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패밀리 오피스는 한 가문 또는 집안의 자산 운용을 위해 세워진 회사를 일컫는 말로 초고액 자산가들의 자금 운용뿐만 아니라 자선 활동, 세금 문제, 상속 및 가업 승계 등을 전담해 처리해 주는 만능 집사라고도 볼 수 있다. 가족 모임과 여행 준비, 별장 관리까지 패밀리 오피스에서 수행한다. 패밀리 오피스는 자산운용사, 자선재단, 헤지펀드 등 다양한 형태를 띤다. 다만 다른 고객의 돈을 받아서 운용하는 회사들과 달리 패밀리 오피스는 자기 계정의 돈으로 운용하기 때문에 공시 의무가 없고, 투자 전략도 광범위하다.

패밀리 오피스라는 개념은 19세기 유럽의 로스차일드 가문이 집사에게 체계적으로 자산을 관리하도록 한 것에서 시작됐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가 패밀리 오피스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JP모건이 가문의 자산과 미술품을 관리하기 위해 패밀리 오피스 형태를 발전시켰다. 빅테크 거물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등도 모두 패밀리 오피스를 보유하고 있다.

초고액 자산가들은 유능한 인재를 본인들이 설립한 패밀리 오피스에 스카우트하기도 한다. 지난 2017년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인 조지 소로스는 UBS자산운용 산하 헤지펀드인 오코너 임원급이었던 돈 피츠패트릭을 본인의 패밀리 오피스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임명했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전 세계 패밀리 오피스 운용 자산은 6조 달러(약 8,330조원)에 달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초부유층들이 그들의 재산을 철저히 보호하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고 설명하면서도 이미 추산된 규모만으로도 전체 헤지펀드 산업을 뛰어넘었다고 분석했다.

대규모 글로벌 자금 몰리는 싱가포르 ‘패밀리 오피스’ 활황

패밀리 오피스의 막대한 자금은 아시아의 ‘네 번째 용’ 싱가포르에 몰리고 있다. 싱가포르 금융중심지로 꼽히는 ‘래플스 플레이스(Raffles Place)’에는 패밀리 오피스 사무소가 즐비해 있다. 싱가포르 금융당국인 통화청(MAS)에 따르면 싱가포르 내 패밀리 오피스는 2020년 약 400곳에서 올해 2월 기준 872곳으로 2배 이상 크게 뛰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설립자이자 억만장자 투자자인 레이 달리오(Ray Dalio)도 개인자산 운용을 전담하는 패밀리 오피스를 싱가포르에 설립했다.

새로운 아시아 금융허브로 떠오른 싱가포르에 패밀리 오피스 설립 붐이 일어난 배경에는 ‘홍콩 사태’가 있다. 지정학적 우려가 불거지면서 금융 환경이 악화되자 홍콩에 있던 금융투자업계와 대규모 자산가들의 자금이 싱가포르로 몰린 것이다. 싱가포르의 외국인 투자자 친화적인 분위기도 대규모 자금이 싱가포르로 이동하게 된 결정적 요소로 꼽힌다. 싱가포르의 금융시장 규모는 홍콩에 비해 작지만 글로벌 기업 아시아 본부 수로 따지면 싱가포르가 우세하다.

더군다나 싱가포르는 해외 자산가 유치에 적극적이어서 패밀리 오피스 설립이 용이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지원방안이 마련돼 있다. 패밀리 오피스를 만들면 취업비자를 지원하고 자산가 가족들에게 영주권을 주는 점도 글로벌 부호들이 싱가포르로 모이는 요인 중 하나다. 실제 싱가포르는 개인 최고 한계 세율이 22%, 법인세 단일 세율이 17%로 한국(개인 최고 한계 세율 49.5%·법인세율 26.4%) 대비 세금 부담이 적다. 싱가포르 세법 규정에 따라 싱가포르 소재 펀드 관리 회사를 통한 펀드는 소득에 대해 세금이 면제되는 점도 패밀리 오피스가 성장할 수 는 경쟁력으로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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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삼성증권

韓 패밀리 오피스 수요도↑

한국 패밀리 오피스의 경우 미국, 싱가포르 등 해외 패밀리 오피스와 비교하면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최근 들어서는 고액 자산가의 자산 운용 수요가 늘며 이를 위한 수단으로 패밀리 오피스가 주목받고 있다. 이에 금융업계에서도 패밀리 오피스 서비스를 본격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나은행은 건강, 여행, 여가생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업체와 제휴를 지속 확장하고 하나은행 만이 가지고 있는 특화 서비스와 상품을 활용해 자산관리를 업그레이드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하나은행은 자산관리그룹 내에 연금사업본부가 연금사업단으로 승격돼 조직에서 분리되는 등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지난해 패밀리 오피스 고객을 위한 특화 공간인 ‘패밀리 오피스 전용 센터’를 오픈한 배경이다. ‘패밀리 오피스 전용 센터’는 가족이 모여서 교류하고 2세 금융 교육, 가문 맞춤형 세미나, 가문 네트워크 커뮤니티 등 다양한 특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슈퍼리치’ 고객을 잡기 위해 전담 조직을 설립한 삼성증권의 경우 패밀리 오피스 고객 자산이 3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증권은 지난 2020년 패밀리 오피스 전담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그간 모인 30조원의 자산은 우리나라 7대 공제회의 평균 자산을 뛰어넘는 규모다. 가문별 평균 자산은 3,000억원 수준이다. 100곳의 고객 중 전통 부유층은 50%, 스타트업 창업자 및 종사자는 20%, 보유 지분을 매각한 오너는 30%로 파악됐다. 최근 지분 매각 이후 현금을 보유한 오너의 숫자가 늘어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확보한 자산을 위탁해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삼성증권은 패밀리 오피스 고객의 장기투자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공동 투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 운용사의 사모대체펀드를 국내에 독점 공급하고, 국내 비상장 기업의 프로젝트 딜 등 전용 상품 30개를 마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상품에 몰린 고객 자산은 1조원 규모다. 이들은 투자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며 세무, 부동산 등 컨설팅 이외의 고도화 서비스에 대한 관심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금융을 전공하지 않은 패밀리 오피스 자녀를 위한 금융 교육 서비스가 큰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