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그룹 ‘팻핑거 참사’, 英·獨 금융당국 1,282억원 벌금 부과

씨티그룹 트레이더, 매도 주문 입력 실수
5,800만 달러를 4,400억 달러로 입력해
주요 주가지수 폭락, 유럽 증시 혼란 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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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글로벌 금융사인 씨티그룹이 일명 ‘팻핑거(fat finger)’ 실수로 영국과 독일 금융당국으로부터 1,282억원의 벌금을 물게 됐다. 지난 2022년 주식 매도 과정에서 직원의 실수로 금액을 잘못 입력하면서 시장에 혼란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실제 사건 당일 유럽의 증권거래소에서 주요 주가지수가 급락하고 일부 시장에서는 거래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獨 금융당국 “씨티그룹 팻핑거, 시장 교란 가능성”

22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독일 금융당국은 씨티그룹에 매도주문 거래시스템 관리 부실을 이유로 1,394만 달러(약 195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는 독일 연방금융감독청(BaFin)이 소비자 보호와 관련해 부과한 벌금 중 역대 최대 규모다. BiFan에 앞서 영국 금융당국도 같은 사건에 대해 7,824만 달러(약 1,09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씨티그룹은 이번 사태로 영국과 독일 당국으로부터 총 9,218만 달러(약 1,284억원)의 벌금을 물게 됐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22년 5월 2일 씨티그룹의 한 트레이더가 보유 주식 바스켓 내 5,800만 달러(약 806억원)를 매도하는 과정에서 주문 실수로 4,400억 달러(약 613조원)의 매도 주문을 입력하면서 발생했다. 씨티그룹의 금융거래시스템은 이런 비정상적인 규모의 주문이 실수인지 걸러내지 못한 채 그대로 시장에 매도 사인을 냈고, 씨티그룹이 다시 사인을 거둬들이기 전까지 14억 달러(약 1,950억원)어치의 주문이 성사됐다.

일 순간 매물이 쏟아지면서 중앙유럽표준시(CET) 기준 오전 10시경 수 분간 주요 주가지수가 급락했고 일부 시장에서는 거래가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주로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증시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고 네덜란드, 벨기에 등 다른 유럽 증시도 잠시 영향을 받았다. 사건 당일 씨티그룹은 성명을 내고 “오늘 아침 자사 트레이더 가운데 한 명이 거래를 입력할 때 오류를 범했다”며 “몇 분 안에 오류를 파악하고 수정했다”고 밝혔다.

BaFin은 “이른바 ‘팻핑거의 오류’로 씨티그룹은 잘못된 주문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다”며 “이러한 결함은 시장을 교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팻핑거는 ‘뚱뚱한 손가락’이라는 뜻으로 주로 금융권이나 증권시장에서 컴퓨터 키보드 조작 과정에서 잘못된 매매 정보를 입력해 엄청난 손실을 보는 경우를 말한다. 씨티그룹은 “시스템과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조처를 했으며 규제 준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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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단순 실수·작동 오류가 기업 파산으로 이어지기도

2010년 발생한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 사건은 대표적인 팻핑거 사례다. 지난 2010년 5월 씨티그룹 직원이 P&G 주식의 매도 주문을 내면서 100만 단위(Million·M)를 10억 단위(Billion·B)로 잘못 누르는 실수를 저질렀다. 사건 당일 다우지수는 15분 만에 9.2% 하락했고 P&G의 주가도 37% 급락했다. 시장은 리먼브라더스 사태의 재현이라는 우려와 함께 순식간에 ‘초강세’에서 ‘초약세’로 바뀌었다.

2012년 미국 증권사 나이트캐피탈도 팻핑거 참사로 40분 만에 4억6,100만 달러(약 6,500억원)의 손실을 봤다. 새 시스템을 들여오면서 컴퓨터 8대의 서버를 바꿔야 했으나 7대만 바꾸면서 1대가 오작동한 것이다. 당시 나이트캐피탈은 미국 최대의 자동화 주문 회사로 전체 나스닥 거래의 15%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날을 계기로 나이트캐피탈의 주가는 63% 폭락했고, 이후 고객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염려해 거래를 중단하면서 결국 나이트캐피탈은 파산 직전에 경쟁사에 인수됐다. 

골드만삭스도 2013년 주식 옵션거래 프로그램에서 오류가 발생해 17분 동안 시장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주문이 들어갔다. 골드만삭스는 이 사태로 최대 1억 달러(약 1,39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 증시에서는 2005년 일본 미즈호증권, 2013년 중국 광다증권의 팻핑거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최근에는 지난 2016년 31년 만에 처음으로 영국 파운드화가 직전 거래일 대비 6% 이상 하락했는데 외신들은 스위스 국제결제은행(BIS)의 팻핑거를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한맥투자증권 팻핑거, 파산에 법정 다툼까지 번져

국내 증권 시장에서도 팻핑거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지난 2013년 한맥투자증권의 한 직원이 이자율을 ‘잔여일/365’로 적어야 하는 것을 ‘잔여일/0’으로 입력한 것이다. 거래시스템에서 시장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매수와 매도가 이뤄지면서 한맥투자증권은 462억원의 손실을 봤다. 그 사이 이익을 거둔 외국계 금융기관이 수익 반환을 거부하면서 결국 한맥투자증권은 파산했고, 파산관재인 예금보험공사와 한국거래소 사이에서는 9년간의 법정 다툼이 이어졌다.

또 다른 국내 유명 사례로는 2018년 삼성증권 유령 주식 사태가 있다. 삼성증권은 당시 우리사주에 주당 1,000원의 현금을 배당하려다가 실수로 주당 1,000주를 입력해 배당하는 사고를 냈다. 당시 사고로 발행된 이른바 ‘유령 주식’은 삼성증권 발행 한도를 수십 배 뛰어넘는 28억1,295만 주(약 112조원)였다. 이에 당시 삼성증권 주가는 장중 큰 폭으로 하락했고, 수사 결과 내부 직원 21명이 주가가 잘못 입력된 사실을 알면서도 시정하지 않고 매도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팻핑거의 시작은 단순한 해프닝이지만 짧은 시간에 막대한 자금이 오가는 증권시장에서는 치명적인 파문을 가져온다. 게다가 ‘인간’이 저지르는 실수라는 점에서 언제 어떻게 터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위험하다. 지금은 팻핑거를 방지하기 위해 증권사별로 자체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안전장치와 구제 제도가 마련돼 있다. 일례로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 등 주요 증권거래소는 잘못 입력된 거래를 체크하고 차단하는 ‘킬 스위치(kill switch)’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