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채 투심 ‘한파’에 GS건설도 미매각, 결국 회사채 발행 미룬 DL이앤씨

건설업계 부동산 PF 리스크 '부각', 건설채 투자심리 뚝뚝
수요예측 미매각에도 개인투자자 겨냥한 출구전략 짜낸 GS건설
중소 건설사는 '울상', DL이앤씨도 회사채 발행 지연으로 리스크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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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이앤씨가 회사채 발행 일정을 연기했다. 2021년 6월 발행했던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는 데 따라 차환발행을 준비했지만, 건설채 투심이 회복되지 않는 탓에 일정을 미룬 것으로 보인다.

얼어붙은 건설채 투심, DL이앤씨 회사채 발행 계획 변경

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DL이앤씨는 이달 초로 잡아뒀던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 일정을 미뤘다. 수요예측 후 최대 2,000억원까지 발행 규모를 열어두고 조달 작업에 돌입했으나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건설채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은 데 따른 조치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태영건설 워크아웃 이후 건설업계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건설채 투심이 꺾이기 시작했다. 이후 약 반년이 지나도록 건설업을 향한 투자 수요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모양새다. 특히 최근엔 공모채 시장에 출격했던 GS건설이 수요예측 결과 대규모 미매각이란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기도 했다. 부동산 PF 부실에 대한 기관투자가들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았음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GS건설 측은 수요예측 미매각에서 당초 계획된 1,000억원어치 회사채 발행을 그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발행 준비 단계부터 미매각을 우려해 개인투자자들을 겨냥한 전략을 짜왔기 때문이다. GS건설은 금리 희망 범위(밴드)로 개별 민평금리(민간 채권 평가사들이 평가한 기업의 고유 금리)에 -30~100bp(1bp=0.01%p)를 가산한 금리를 제시했는데, 이는 밴드 상단 기준 이자율이 민평금리 대비 연 1%p 높은 수준이다.

전 거래일 GS건설 민평금리가 1년 6개월물 4.631%, 2년물 4.704%이므로 추가 청약 등을 통해 GS건설 회사채에 투자하는 투자자라면 연 5.7%대의 이자율을 기대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친화적 전략을 구사해 난관을 돌파하겠다는 게 GS건설 측의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GS건설 수요예측 미매각 사태, 중소 건설사의 깊어지는 고민

이처럼 GS건설은 나름의 출구전략을 내세우며 강행 돌파에 나섰지만, GS건설보다 덩치가 작은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 고민은 더욱 깊어지기만 한다. GS건설은 국내에서 시공능력평가 5위에 자리하고 있다. 신용등급도 ‘A’로, AA급의 현대건설(AA-)과 비교하면 낮지만 포스코이앤씨(A+), SK에코플랜트(A-)와는 같은 A급에 포진해 있다.

이들 기업은 악조건 속에서도 올해 공모채 시장에서 발행 규모 이상의 자금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 바 있다. GS건설은 투심 위축 속에서도 회사채 완판을 통해 저력을 보여준 건설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단 것이다. 이런 GS건설마저 수요예측 미매각을 기록한 상황에서 중소 건설사 회사채가 흥행을 이룰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업계의 시선이다.

실제 태영건설 워크아웃 이후 공모채시장에 출격한 건설사 및 유관기업들은 대부분 충분한 시장 수요를 끌어오는 데 실패했다. 중견 건설사인 HL D&I한라는 지난 2월 7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수요예측에서 주문이 1건도 들어오지 않았고, 4월 한국자산신탁은 회사채를 통해 1,000억원을 조달했으나 수요는 670억원에 그쳤다. 발행사의 시장 내 지위, 신용등급 등 요소에 따라 건설채 수요의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런 가운데서도 회사채는 수요예측 시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만기 도래 채권 상환 등 자금 조달이 급박한 상황인 탓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수요예측을 진행 중인 건설사는 HL D&I(BBB+) 등이 있으며, 건설사 외에도 쌍용씨앤이(A), KCC글라스(AA-) 등이 공모채 발행을 준비 중이다. 다만 공모채 발행에 나선 이들조차 소극적인 자세는 견지하는 모양새다. HL D&I와 쌍용씨앤이가 시장의 투심 위축을 고려해 증액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게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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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충분한 DL이앤씨, 미매각 리스크 피한 듯

DL이앤씨의 경우 당초 전망은 긍정적이었다. A급인 GS건설보다 우량한 신용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DL이앤씨는 지난 2021년 회사채 발행 당시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로부터 ‘AA-‘ 신용등급을 부여받은 바 있다. 그런데도 DL이앤씨가 회사채 발행 시기를 조율하고 나선 건, 건설채 투심 위축이 계속되면서 회사채 발행 시 완판을 장담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유동성도 아직 충분하다. 1분기 말 기준 DL이앤씨의 보유 현금 및 현금성자산의 규모는 모두 2조4,477억원, 전체 차입금 규모는 1조2,90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차입금에서 예금 등 금융자산과 현금을 차감한 금액인 순차입금 규모는 마이너스(-)1조1,570억원이다. 현금성자산을 차입금 상환에 모두 투입해도 1조원에 이르는 자금이 남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차환발행 예정이었던 회사채 2,000억원을 전액 현금으로 상환해도 DL이앤씨의 현금성자산은 2조원 이상 남는다. 차환이 아닌 현금상환도 유동성에 전혀 무리를 주지 않는 수준이다. 결국 충분한 유동성을 미리 확보해 둔 DL이앤씨 입장에서 우량 건설사의 회사채마저 외면받는 악조건 아래 미매각 리스크를 감내하면서까지 회사채를 발행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IB업계 관계자는 “주관사의 인수 확약 등이 있어 충분한 수요가 없어도 예정된 자금 조달은 가능하다”며 “다만 수요예측 결과 대규모 미매각이 발생하면 발행사에는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는 탓에 이를 피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