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디플레이션 경고한 월마트 “상품 가격 더 낮아지길 바라는 고객 늘어”

월마트 CEO “식료품 및 일반 소비재 가격 상승세 둔화 조짐”
유통업체 ‘타깃’은 전 분기보다 매출 줄어, 미국 소매업계 실적 둔화 확산
최근 산업 및 고용 지표까지 경기 둔화 시사하며 ‘고금리 장기화 전망’ 약화
사진=Walmart 홈페이지

미국 최대 고용주이자 최대 소매점인 월마트가 미국이 향후 수개월 내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월마트의 직전 분기 대비 식료품과 일반 소비재 가격 상승세의 둔화가 현저한 데 따른 전망이다. 유통업체 ‘타깃’ 등 다른 소매업체들 사이에선 매출 감소에 따른 실적 둔화까지 나타나고 있으며, 여기에 최근 발표된 산업과 고용 등 경제 지표마저 경기 둔화를 시사하면서 시장의 고금리 장기화 전망이 수그러들고 있다.

디플레이션 경고에 주가 폭락한 ‘월마트’

16일(현지 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월마트의 매출은 1,608억 달러(약 208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5.2% 증가했다. 주당순이익(EPS)도 1.53달러로 시장 전망치(1.52달러)를 상회하며 양호한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최근 인플레이션 압박에 따라 재정적 압박을 느낀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제품 가격이 저렴한 월마트를 이용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만 월마트는 향후 경기 둔화가 본격화할 것이란 진단에 따라 내년도 주당순이익(EPS) 가이던스를 시장 전망치(6.48달러)보다 보수적인 6.4~6.48달러로 제시했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실적 발표 이후 컨퍼런스콜에서 “고객들은 상품 가격이 더 낮아지기를 원하고 있다”며 “앞으로 몇 달 내 미국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에 빠질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월마트 내 식료품이나 치약 등 일반 소비재 가격 상승세 둔화는 심화하고 있다. 맥밀런 CEO는 “비식품 가격은 최근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공격적으로 하락했으며, 식료품과 일반 소비재 가격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다”며 “이미 일부 지난달부터 소비를 줄이며 블랙프라이데이 등 할인행사를 기다리는 소비자까지 늘었다”고 설명했다.

시장 예상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실적을 내놨음에도, 향후 소비둔화 우려를 표시한 영향에 월마트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날 월마트 주가는 8.09% 하락하며 지난해 5월 이후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제품 인플레이션으로 월마트를 찾았던 고소득층이 떠나가면서 매출에 큰 타격이 있을 거란 우려에 따라 매도세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제지표도 줄줄이 ‘경기 둔화’ 신호, 고금리 장기화 전망 약화

한편 미국의 유통업체 타깃은 앞선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직전 분기 대비 매출이 4.9%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음식과 음료, 일상용품 등 식료품과 일반 소비재 품목에서 제품 판매가 현저히 줄었다. 이처럼 미국 소매업체들의 실적 둔화와 디플레이션 경고가 확대될 경우 고금리 장기화 전망도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내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미국 경제 특성상 소비가 줄면 그만큼 물가 상승 압박도 낮아지게 되고, 중앙은행이 장기간 고금리를 유지할 명분도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경제 지표들도 물가 하락과 경기 둔화를 시사하고 있다. 물가지표의 경우 최근 인플레이션 상승률 둔화 추세가 두드러진다. 15일 발표된 10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3.2%로 전월(3.7%)과 시장 예상치(3.3%)를 모두 하회했다. 산업생산과 고용 지표도 소폭이지만 둔화되고 있다. 16일 발표된 10월 미국 산업 생산은 0.6% 떨어지며 전망치(-0.4%)보다 하락폭이 확대됐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에 따르면 전미자동차노조(UAW)의 파업으로 인해 자동차 및 부품 생산량이 감소한 것이 주효했다.

지난주(5~11일) 미국의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도 23만1,000건으로 전 주보다 1만3,000건 늘며 시장 전망치(22만2,000건)을 웃돌았다. 특히 계속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직전 주보다 3만2,000건 증가한 186만5,000건으로 집계되며 코로나19 팬데믹 직전과 비슷한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는 2021년 11월 27일 주간(196만4,000명) 이후 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국제유가의 하락세도 시장의 고금리 장기화 전망을 약화하는 주요 요인이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12월 인도분 WTI(서부텍사스산원유)는 전날보다 4.9% 하락한 배럴당 72.9달러로 떨어졌다. 이는 7월 6일 이후 4개월 만의 최저치로, 글로벌 성장 둔화에 따라 수요가 줄 것이란 우려가 작용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에 더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에도 원유 공급량이 충분하다는 평가까지 나오면서 국제유가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국내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미국의 원유 재고는 지난주에만 360만 배럴 증가했다. 이는 180만 배럴 증가할 거란 월가 전망치를 크게 웃돈 수치”라며 “이미 시장에선 러-우 전쟁 등 글로벌 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벤트를 모두 소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석유 공급을 중단시킬 거란 우려가 있지만, 전쟁 발발 이전보다 유가가 하락하는 등 최근 들어 해당 문제마저 크게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