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강세’에 무너진 코스피·코스닥, 외화부채 많은 국내 기업 재무 건전성엔 ‘경고등’

원·달러 환율 추이/출처=구글

원·달러 환율이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환율 급등에 원화와 채권 그리고 주가의 동반 하락세가 이어졌다. 주식시장은 올해 3월 중순 수준으로 하락했으며 국고채 장기물 금리는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 수준으로 급등했다. 환율이 치솟은 데는 국제 유가 오름세와 미국 정치권 불안에 따른 미 국채 장기물 금리의 급등이 주효했다. 향후 원·달러 환율 오름세가 지속될 거란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대외부채가 많은 국내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달러 강세에 주식·원화·채권 ‘트리플 약세’

4일 종가 기준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4.20원 오른 1363.50원으로 장 마감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10일 1377.5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환율이 치솟자 주가는 급락했다. 4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41%(59.38) 하락한 2405.69로 장을 마쳤다. 코스닥 역시 4%(33.62) 폭락하며 807.4로 마감했다. 시가총액 기준 두 시장에선 하루에만 무려 62조원 가까이 사라졌다.

코스피와 코스닥은 올해 3월 중순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이날 이차전지 관련주들의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코스피 시장에선 포스코퓨처엠과 LG에너지솔루션이 각각 -6.54%, 4.3%, 코스닥 시장에선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이 각각 -8.55%, -7.11% 하락했다.

국채 시장도 타격이 컸다. 특히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거래일보다 0.321%포인트 상승한 연 4.351%로 장을 마쳤다. 3년 만기 국채 금리 역시 0.224%포인트 상승한 4.108%로 뛰었다. 이는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경색 우려가 있었던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연휴 기간 달러 강세가 되살아나면서 원화와 채권 가격이 연중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고, 일주일 만에 개장한 주식시장 역시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세로 하락세가 컸다”면서 “미국 등 주요국의 고금리 장기화 전망에 장기금리 중심으로 시장금리가 상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채 10년물 금리, 16년 만에 최고치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된 배경에는 급등한 미국 국채 금리가 있다. 전 세계 채권금리의 기준이 되는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우리나라 국채 시장은 물론,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의 대출금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통상 미 국채 장기물 금리가 상승하면 우리나라 국고채 장기물 금리도 덩달아 상승할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3일(현지 시간)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4.803%로 마감했다. 30년 만기 국채 금리 역시 연 5% 선을 눈앞에 둔 4.927%로 마감했는데, 이는 2007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채권 금리 고금리가 예상보다 더 오래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급등한 것이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위 관계자들이 지속해서 매파적인 행보를 이어가면서 채권시장 참가자들의 우려를 샀다. 여기에 최근 발표된 고용 지표까지 미국 노동시장이 과열됐음을 시사하자 채권 금리 급등에 영향을 미쳤다.

고유가와 미 정치권발 불확실성 등도 국채 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은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지속하도록 만드는 만큼, 고금리 장기화 전망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원의장직에서 해임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정치권 불안이 심화된 상태가 금융시장으로까지 번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출 이자 갚기도 어려운 국내 기업들 많아

원·달러 환율이 치솟자 국내 기업들의 외화부채 부담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5일 한국은행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말 국내 비금융기업의 대외채무 합계는 1,549억9,800만 달러로, 약 209조512억원에 달한다. 이는 작년 말보다 9억6,980만 달러(약 1조3,090억원) 늘어난 수치로 반기 말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다.

대외채무의 증가는 기업들이 갚아야 하는 달러·유로화를 비롯한 외화 빚에 대한 이자 부담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일례로 외화부채 규모가 227억5,100만 달러(30조6,010억원)로 무려 31조원에 달하는 SK하이닉스의 경우 치솟는 환율과 맞물려 부담해야 하는 이자 비용 급격히 늘어난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환율 10% 상승 시 SK하이닉스의 순이익은 9,200억원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미 대출 이자를 갚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 기업들이 많다는 점이다.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금융지원을 받은 대기업 중 12곳이 지난해 한계기업으로 분류됐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영업이익보다 이자비용이 많이 발생해 잠재적 부실 위험을 가진 소위 ‘좀비기업’으로, 그 숫자는 2018년부터 꾸준히 늘고 있다. 2018년 1곳에서 2019년 7개, 2020년 12개, 2021년 10개, 2022년 12개로 늘었다.

한국은행 역시 국내 기업들의 자산건전성의 적신호가 켜졌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한은이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명목 GDP 대비 기업 대출은 124.1%에 달한다. 이는 외환위기(113.6%)와 글로벌 금융위기(99.6%) 때보다 높은 수치로 국내 기업들의 재무 상황이 크게 악화됐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