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 규제 완화 수순에 ‘리츠 키우기’ 돌입한 대기업들, 서초동 더 에셋도 삼성SRA가 품었다

더 에셋 가져간 삼성SRA자산운용, 한화리츠는 신규 자산으로 장교동 한화빌딩 편입
부진 못 면한 리츠 업계, 국토교통부 '리츠 활성화 방안' 업고 호황기 접어드나
대기업들도 알짜 자산 몰아주기, 선제적인 '몸집 불리기' 돌입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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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더 에셋 타워 전경/사진=코람코자산신탁

서울 서초동 ‘더 에셋(옛 삼성 서초사옥)’ 인수를 두고 다양한 운용사가 경쟁을 벌인 끝에 삼성SRA자산운용이 승자가 됐다. 이에 시장에선 삼성의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키우기’가 본격화한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정부의 규제 완화 조치가 본격화하면서 리츠 부문의 미래 전망이 밝아진 만큼 그룹 차원에서 ‘밀어 주기’에 나섰단 것이다.

더 에셋 타워 우협으로 삼성SRA자산운용 선정

29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삼성SRA자산운용은 지난 19일 더 에셋 타워의 우선협상대상자(우협)로 선정됐다. 더 에셋 타워 매각 자문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W)와 세빌스코리아가 삼성SRA자산운용에 우협 선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보낸 지 2일 만이다. 더 에셋 타워 인수 가격은 1조1,000억원으로 책정됐다. 더 에셋의 연면적이 8만1,117㎡(2만4,538평)인 점을 고려하면 3.3㎡(평)당 가격은 4,500만원 수준이다.

더 에셋 타워 매각은 올해 가장 큰 규모의 상업용 부동산 딜로 꼽혔다. 그런 만큼 코람코자산신탁이 실시한 본입찰에서부터 외국계 운용사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을 비롯해 미래에셋자산운용, 이지스자산운용 등 국내외 운용사 8곳이 참여할 만큼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이런 가운데 삼성SRA자산운용이 우협으로 선정되자, 시장에선 삼성이 리츠 부문 ‘몸집 불리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경쟁력 있는 자산을 몰아 줌으로써 경쟁력을 올렸단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한화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한화리츠)가 있다. 한화자산운용에 따르면 한화리츠는 29일 서울시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을 신규 자산으로 편입했다. 한화생명보험으로부터 8,080억원에 매입한 것이다. 장교동 한화빌딩 편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한화리츠의 총자산은 약 1조6,150억원까지 증가한다. 자산 규모가 커지면 배당 안정성과 지급 여력의 확대, 신용등급 추가 상승, 장내 유동성 증가, 향후 ‘FTSE EPRA Nareit’ 지수 편입, 주가 상승 등 다양한 이점을 누릴 수 있다. 한화 역시 그룹 차원에서 리츠 부문에 힘을 실어 준 셈이다.

리츠 사업 활성화 노렸지만, 지난해 도전은 사실상 실패

대기업이 리츠 사업 성장을 역점으로 잡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3월 한화리츠는 상장을 준비하며 대규모 자금 조달을 시도한 바 있다. 당시 한화리츠는 한화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정한 뒤 약 1,160억원(총 2,320만 주)를 모집할 계획이었다.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한화리츠는 향후 5년간 연 예상 배당률을 6.85%로 잡았다. 자금 조달 당시 고점에 가까운 변동 금리로 계약(5.57%)했기 때문에 향후 이자 부담은 지속 감소하고 배당 금액은 늘어날 수밖에 없어 상당히 투자자 친화적이라는 게 한화리츠 측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기관 투자자를 비롯해 공모 시장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편입자산이 경기 소재의 공실률 9%대 건물에 치중된 데다 당시엔 알짜 부동산으로 꼽힌 한화빌딩과 63스퀘어(여의도)가 빠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실제 여의도 한화손해보험 빌딩(매입액 4,560억원)을 제외하면 한화리츠에 편입된 자산은 ▲노원빌딩(298억원) ▲평촌빌딩(625억원) ▲ 중동빌딩(654억원) ▲구리빌딩(466억원) 등 모두 1,000억원 미만이었다.

거시경제 상황이 악화한 점도 리츠 투자 심리를 약화시켰다. 리츠는 기본적으로 부동산 대체투자 항목이기에 대출금리 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금리 인상기에 대출적용금리가 높아지면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고 이에 따라 리츠의 주가도 수직하락해서다. 이 때문에 한화리츠는 상장 이후 거듭된 주가 하락에 시달렸고, 청약도 미달 사태를 겪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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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완화 시사한 정부에 기대감↑, 리츠 ‘준비’ 시작한 대기업들

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가 리츠 규제 완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리츠 사업의 전망이 다소 밝아졌다. 앞서 지난 6월 국토교통부는 ‘국민소득 증진 및 부동산 산업 선진화를 위한 리츠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리츠 활성화 방안엔 ▲경매 위기 사업장 토지를 인수하는 ‘공공지원민간임대리츠’의 시공사 참여 요건 완화 ▲미분양 CR리츠(기업구조조정리츠) 조달금리를 낮추기 위한 모기지 보증 활용 지원 ▲신탁사가 수탁 보유 중인 미분양 주택도 미분양 CR리츠의 매입 대상에 포함하는 유권해석 공식화 등이 담겼다. 지방 미분양 및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리츠를 일종의 ‘구원투수’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프로젝트 리츠’가 도입된단 점이다. 당초 리츠를 활용해 부동산을 개발하려면 변경 인가와 공시, 주식 분산 등 복잡한 규제를 감내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통상 사업자들은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EV)를 설립해 부동산을 개발한 뒤 리츠가 개발 자산을 인수하는 방식을 활용해 왔는데, 프로젝트 리츠가 도입되면 리츠가 부동산을 직접 개발하고 임대, 운영할 수 있게 된다.

프로젝트 리츠의 안착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 우선 프로젝트 리츠의 사업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초기 등록제를 적용하고, 개발 단계에 한해 50%로 정해진 1인 주식 소유 한도의 적용을 제외하기로 했다. 또 개발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공시와 보고 의무를 사실상 유예하고 준공 후 주식 공모 기한을 현행 2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겠다고도 밝혔다. 부동산 개발 단계의 특성을 고려해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이다. 결국 대기업이 자사 그룹 소유의 알짜 자산을 리츠 부문에 넘기기 시작한 건, 이 같은 정부의 규제 완화 조치에 리츠 부문의 성장성이 높아질 것을 고려해 선제적인 몸집 불리기를 단행한 결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