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로 내린 주담대 금리, ‘2금융권 한도 역전·소상공인 폐업’ 후폭풍

규제 허점 파고든 시중은행, 장기 주담대 상품 줄줄이 출시
2금융권만 주담대 만기 30년 제한, 가계대출 '은행 쏠림' 심화
정부 개입으로 가계대출 잔액 증가, 자영업자 재정 부담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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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가 시행되면 2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은행보다 작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날 전망이다. 정부가 가계대출 확대를 방조하면서 시중은행 주담대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춘 것에 더해 2금융권만 주담대 만기를 30년으로 제한한 것이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함에 따라 서민·소상공인 등의 금리 부담만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DSR 규제로 대출 한도 줄어들자, 40년 만기로 우회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시중은행에서는 4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이 30년 만기 상품을 제치고 대세로 자리 잡았다. 만기가 길수록 개인에게 더 큰 금액의 주담대를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의 연간 대출 원리금 상환액을 소득의 일정 비율 이하로 제한하는 DSR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선 대출 만기가 길수록 유리하다.

실제로 만기가 길면 소득과 대출금리가 동일하더라도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줄어 대출 한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예컨대 연봉 1억원을 받는 직장인이 연 3.5% 금리로 주담대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스트레스 DSR 1단계’ 적용 시 만기 30년 상품은 최대 7억3,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지만, 40년으로 늘리면 8억5,000만원으로 한도가 1억2,000만원 증가한다.

국내 주담대 상품은 2021년까지만 해도 만기가 30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2022년 지방은행들이 40년 주담대를 새로 선보인 이후부터 시중은행들도 앞다퉈 4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해엔 만기가 50년인 초장기 주담대를 줄줄이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고금리 기조로 인해 개인에게 내줄 수 있는 대출 한도가 제한적인 상황이 장기화하자 만기를 늘려 최대한 많은 대출을 낼 수 있게 꼼수를 쓴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가계대출 폭증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월 1,000억원에 불과하던 50년 만기 주담대 대출액은 같은 해 8월 5조1,000억원으로 반년 만에 무려 50배 이상 급증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부터 만기가 50년인 주담대라도 DSR은 40년 기준으로 산정하는 규제를 신설하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이를 두고 당시 금융권에선 정부의 모순적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규제의 빈틈을 찾아 꼼수를 부린 것은 민간 은행들이지만 그 방법을 먼저 알려준 것은 정부였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금융당국은 공기업인 한국주택금융공사(HF)를 통해 정책대출인 ‘보금자리론’의 만기를 기존 30년에서 최대 40년으로 늘렸고, 2022년엔 50년 만기 보금자리론을 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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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부터 주담대 한도 역전, 은행 4.1억원 vs 새마을금고 3.3억원

은행의 탐욕과 체계적이지 못한 DSR 규제가 맞물려 40년 만기 주담대가 대세로 자리 잡은 현실은 농협, 새마을금고 등 2금융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는 9월 ‘스트레스 DSR 2단계’가 시행되면 지역농협과 새마을금고 등 대부분 2금융권의 대출 한도가 은행보다 축소되기 때문이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업권에 상관없이 50%로 동일하지만 대출 한도를 결정하는 DSR은 은행 40%, 2금융권 50%로 차등 적용하고 있어 그간 은행 대출만으론 자금이 모자란 차주들은 2금융권에서 추가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단계가 도입되면 이 같은 차등 규제가 무의미해진다.

예를 들어 연소득 5,000만원인 차주가 DSR 2단계 규제 상한선까지 주담대를 받는다고 치면, 시중은행에서는 4억1,400만원(가산금리 적용해 3.75%)을 받을 수 있는 반면 농협은 3억9,620만원(연 5.57%), 새마을금고는 3억3,500만원(연 6.30%)의 한도가 산정된다. DSR 40%를 적용한 은행의 대출 한도가 50%를 적용한 농협, 새마을금고보다 많게는 8,000만원 가까이 더 나오는 것이다.

이 같은 역전 현상이 벌어지는 원인은 금리에 있다. 시중은행은 2금융권 대비 조달 금리가 낮은 데다 정부의 금리 인하 압박까지 더해져 주담대 금리가 한때 최저 2%대까지 급속히 떨어졌다. 1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 때는 시중은행만 가산금리 0.38%포인트를 적용해 그나마 2금융권 대출 한도가 더 많았지만 2단계부터는 업권과 관계없이 모두 0.75%포인트를 일괄 적용하게 되면서 한도 역전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대출 만기 규제도 한도 역전을 견인한 요소로 지목된다. 현재 2금융권은 2017년 3월부터 시행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에 따라 주담대 만기가 30년으로 제한돼 있어 40년 만기 상품을 출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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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담대보다 높아진 중기대출 금리, 관치 금융에 벼랑 끝 몰린 자영업자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관치 금융의 폐해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주담대 금리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리는 등 시장 개입을 강화한 탓에 시중은행만 웃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관치 금리로 인한 가계부채 급증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피해까지 초래했다는 데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내준 중소기업대출(중기대출) 평균 금리는 지난 5월 신규 취급액 기준 연 4.85%였다. 같은 기간 은행권 전체 주담대 평균 금리(연 3.91%)보다 0.94%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2022년 5월까지만 해도 중기대출은 주담대보다 평균 금리가 낮았다. 하지만 정부가 가계 이자 부담 완화를 이유로 은행권에 주담대 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2022년 4분기부터 중기대출 평균 금리가 주담대 대비 1%포인트가량 높은 상황이 유지되고 있다.

주담대 금리 인하는 가계대출 폭증으로 이어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 주담대 잔액은 올 상반기에만 26조5,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투자가 한창이던 2021년 상반기(30조4,000억원)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이 같은 가계 빚 우려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의 걸림돌로도 작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집중됐다. 금융위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2021년 말 0.5%에서 올해 1분기 말 1.5%로 세 배가량 뛰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연체율이 0.56%에서 0.98%로 0.42%포인트 오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증가 폭이다.

빚을 갚지 못해 폐업하는 자영업자는 코로나19가 닥쳤을 때보다 더 많아졌다.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는 총 91만1,000명으로 전년(79만8,000명) 대비 무려 11만3,000명 늘었다.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2020년(82만7,000명)보다 10만 명가량 많은 수치다. 올해엔 폐업 자영업자가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낮은 금리로 인해 가계대출이 폭증하자 금융당국은 이달 들어서야 부랴부랴 은행권에 주담대 금리 인상을 압박하고 나섰지만 시중은행들의 주담대 금리 인상 폭은 0.1~0.2%포인트로 미미한 수준이다. 심지어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기 위해 이달 도입하기로 한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시기를 돌연 9월로 미루면서 또다시 빈축을 샀다. 자영업자 금리 부담 완화 등 다른 정책 목표와의 조화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해명했으나, 당초 목표인 가계대출 억제는커녕 막차에 올라타려는 수요를 자극해 이달 1일부터 15일까지 보름 새 시중은행의 주담대가 3조원 이상 늘어나는 결과만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