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대출 막혀 수익 낼 유인 없다" 저축은행 PF 정상화펀드는 시간끌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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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정상화펀드 통한 PF 대출 축소 재출자 구조에 따른 잠재 위험 확대 '시간끌기형 정상화' 분석

금융당국 주도 아래 저축은행 업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규모가 2023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 등, 전체 금융업권 중 가장 빠른 속도로 PF 부실이 축소되고 있다. 다만 PF정상화펀드 덕에 저축은행 PF 건전성 지표는 단기간에 개선됐으나, 이 펀드에 매각 정리된 PF대출의 상당수가 다시 똑같은 펀드에 재투자되면서 새로운 위험이 발현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업계 안팎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자산가치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여전해 PF 정리가 실질적 청산이 아닌 시간끌기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분위기다.
저축銀 PF 대출 규모, 2023년 대비 절반으로 감소
13일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PF 부실 정리를 위해 도입된 PF정상화펀드는 단기간에 대출채권 건전성 지표를 개선하는 가시적 효과를 가져왔다. PF정상화펀드는 PF 부실 정리를 위해 저축은행중앙회 주도로 조성됐으며 최근 2년에 걸쳐 1~4차까지 총 1조9,000억원 수준으로 조성됐다. 은행·보험·증권 등 다른 금융업권에 견줘 정상화펀드 매각으로 정리된 비중이 높다.
특히 4차 공동펀드에서는 은행과 보험의 자금이 투입되며 조성이 흥행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과 5개 보험사(삼성생명·한화생명·메리츠화재·삼성화재·DB손해보험)의 PF 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 자금이 4차 PF 펀드에 선순위로 투입됐다. 저축은행업권은 5차 PF 펀드의 클로징으로 중앙회의 PF 공동펀드를 통해 2조6,000억원이 넘는 PF 부실자산을 정리하게 됐다.
앞서 저축은행은 PF정상화펀드를 통해 2024년 1월부터 2025년 6월까지 2023년 말 PF의 52%를 상환, 일반담보대출 전환, 매각, 상각 등을 통해 정리했다. 올 3월 말 기준 저축은행 PF는 약 13조원으로 2023년 말 22조1,000억원 대비 41.2% 감소했으며 PF정상화펀드를 통한 추가 정리를 고려하면 현시점은 2023년 말 대비 절반 이하로 축소된 것으로 판단된다. 매각 방식을 보면, 고정이하 부실여신으로 분류된 PF대출 대부분이 PF정상화펀드에 매각(총 7,565억원, 182건, 대출원금)됐다.
매각액 대부분 정상화펀드에 재출자
그런데 저축은행들은 PF대출을 PF정상화펀드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매각금액의 대부분을 이 펀드에 재출자(6,774억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1~4차에 걸친 정상화펀드 매각에서 저축은행의 대출원금 대비 정상화펀드 매각가 비율은 평균 80%(즉 할인율 20%)고, 펀드에 재참여하는 비율(재출자액/매각금액)은 91%에 달한다. PF사업장의 사업성이나 회수 가능성이 미흡할수록 매각가율은 낮아지고, 펀드보수와 용역비 충당을 위해 재출자액이 오히려 매각금액을 웃돌기도 했다. 정상화펀드에 PF대출을 할인 매각하고, 다시 이 펀드에 재출자해 펀드 수익증권 취득을 병행하는 구조인 셈이다. 이에 따라 지난 6월 말 저축은행 업권이 보유한 수익증권은 6조3,000억원으로, 2023년 말(3조7,000억원) 대비 대폭 증가했다. 이는 총자산의 5.3%, 자기자본의 42.6%에 달하는 규모다.
이 때문에 기존 PF 대비 상환 순위가 불리해졌다. 실제 펀드에 매각된 PF의 중후순위 비중은 4%에 불과했으나 재출자로 취득한 수익증권 중 2종 비중은 38%로 높은 수준이다. 특히 3·4차 펀드의 트렌치 구성은 주로 1종 30%, 2종 70%로 2종 수익증권의 비중이 높다. 이와 관련해 한국기업평가는 “저축은행 부동산 PF 건전성 지표 개선에는 PF정상화펀드의 착시가 가려져 있다”며 “정상화펀드 덕분에 PF대출 잔액은 감소하고 있으나, 펀드 출자 규모와 구조를 감안하면 실질적인 PF 리스크는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저축은행이 재투자한 정상화펀드가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인데, 금융당국에 따르면 정상화펀드에 매각된 PF대출은 본PF 전단계인 브릿지론 비중이 75%로 압도적이다. 즉 사업 정상화를 위한 추가 자금여력이 부족한 탓에 정상화펀드가 투자금을 회수할 전략은 현실적으로 ‘사업장 매각’에 국한된다. 이 경우 추가 할인매각 가능성이 있고, 지방 사업장 비중이 높아서 낙찰가율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도 크다. 펀드 만기가 돌아왔을 때 사업장 매각에 최종 실패할 위험도 있다.
이 같은 '진성매각(True Sale) 논란'의 핵심은 펀드 운용사가 부실화한 PF 채권을 매입해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률을 올릴 유인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실제 저축은행 PF 정상화펀드의 경우 모자(母子)형 펀드를 활용하고 있다. 저축은행들이 모펀드에 자금을 출자하고 자펀드에서 PF 부실채권(NPL)을 사들이는 식이다. 출자자이자 PF 채권 매도자가 모두 저축은행들이니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사실상 NPL을 펀드로 잠시 옮겨두는 시간끌기를 통해 연체율을 낮추는 효과만 본다는 것이다. 훗날 부동산 시장이 회복하면 저축은행들이 펀드에 넘겼던 사업장을 다시 사오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을 것이란 의혹도 나온다.

PF 줄였지만 부실은 확대
실제로 저축은행업계에서는 신용대출 영업이 제한된 상황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부동산 PF는 사이클이 있어 시간을 두면 매입가 이상에서 거의 다 팔 수 있지만, 신용대출 영업 제한은 당장의 수익성 악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PF 대출을 줄였음에도 부실지표가 악화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저축은행은 지난달 부동산 PF 대출과 관련한 여신심사 및 사후 관리 전반에서 미흡한 점이 드러나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영유의 조치를 받았다. 금감원은 △조건이 악화된 PF대출 변경 시 위험관리위원회 심의 누락 △차주 자기자본 인정기준의 불일치 △부실 사업장에 대한 경·공매 착수 지연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신한저축은행은 그동안 PF 의존도를 낮추고 리테일 중심의 안정적 영업 구조를 구축해 왔다. 보증부대출과 햇살론 등 정책금융 상품을 확대하며 서민금융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한 결과, 업권 전반이 PF 부실로 흔들릴 때도 10년 연속 흑자를 이어가며 건전성을 유지했다. 실제 신한저축은행의 부동산 PF 잔액은 2023년 말 4,740억원에서 2024년 말 2,239억원으로 줄었고, 올해 1분기 1,545억원으로 감소했다. 2021년 32.8%였던 기업대출 비중도 올해 1분기 17.2%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자산 축소에도 불구하고 부실 규모는 기대만큼 줄지 않았다. 고정이하여신 금액은 2023년 말 394억원에서 올해 1분기 564억원으로 증가했다. 전체 대출 잔액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실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부동산 PF NPL 비율 같은 기간 8%에서 35.6%로 급등하며 잔액 축소 기조와는 대조적인 흐름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PF NPL비율 상승이 단순한 대출 축소 영향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신한저축은행이 지난 6월 150억원 규모의 부실 사업장을 정리하기 위해 4차 부동산 PF 공동펀드에 참여했지만, 전체 부실 정리가 속도를 내지 못한 점이 건전성 악화의 배경으로 꼽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운용사가 매입한 PF NPL을 빠르게 정리해야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가 돼야만 해당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며 "운용사가 부실 사업장을 고가에 매입해 담아두고 몇 년 후 다시 팔 요령이라면 시간끌기밖에 되지 않는 구조"라고 지적했다.